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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하다 Jul 28. 2019

맥주도 취미가, 문화가, 산업이 될 수 있나요?

음주를 ‘사회적 비용’으로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찾아가는 여행, 그것은 곧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는 너무나도 다르기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우리가 있다.


지난 2년 동안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를 기획하면서 제가 가졌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왜 우리는 당당하게 술을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가?’였습니다. 오페라, 뮤지컬, 독서, 영화 감상, 전시회 관람 등 우리에게는 수많은 취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음주량은 분명 전 세계 평균보다 많은데도 제 주변에는 ‘술을 좋아해서 마시나, 취하려고 마시지’ 라며 어딘가 술 좋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듯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술을 좋아한다 말하면 ‘그러다 알코올 중독에 걸릴지도 모른다’며 걱정부터 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는 분명 맥주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다룬 책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통해 술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살펴보고, 우리의 크래프트 맥주가 우리의 문화에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29일 월요일부터 와디즈 펀딩을 시작하는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의 에필로그를 통해 ‘우리의 술’에 대한 제 생각을 공유해봅니다.


https://www.wadiz.kr/web/wcomingsoon/rwd/40442



작가의 말: 맥주도 취미가, 문화가, 산업이 될 수 있나요?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수천 개의 브루어리가 모여있는 미국. 지금 미국은 전 세계 크래프트 맥주 열풍의 중심지다. 하지만 10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맥주를 비롯한 모든 술의 생산, 수입, 판매가 엄격히 금지되었던 금주 국가였다. 캐리 네이션은 그런 미국의 금주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특히 술집에 난입해 유리창과 술통을 깨고, 집기를 부수는 데 사용하던 도끼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런 난동으로 30회 이상이나 감옥에 갇혔던 그지만, 금주 운동가들의 후원으로 번번이 보석으로 풀려나곤 했다. 그만큼 미국의 금주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고, 결국 1881년 캔자스주를 시작으로 1920년에는 전국에서 금주령이 시행되기에 이른다. 금주령의 이유는 단순했다.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그리고 살롱이라 불리던 미국식 펍에서 벌어지던 범죄 등, 당시 미국이 겪고 있던 사회문제 대부분의 원인이 바로 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살롱은 정말로 평범한 시민들을 범죄자로 바꿔놓는 악마의 소굴이었을까? 1900년 시카고의 학생이었던 멜렌디는 이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살롱을 출입하며 이민 노동자, 사업가, 교수, 관료, 경찰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6개월간 연구를 진행한다. 그런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풀 한 포기, 가로수 하나 없이 일몰과 동시에 어둠이 가득 차버리는, 황량한 거리에 사는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멋진 가구가 놓인 따뜻한 살롱은 그들에게 전등불의 호사를 누리는 곳이자 다양한 계층의 사람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멜렌디는 학교에 다니지 못한 그들이 사회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는 장소로서의 살롱의 의미도 발견한다.


마치 전염병처럼 번지던 18세기 영국의 진 중독 사태와 20세기 초 미국의 살롱을 중심으로 벌어지던 여러 사회 문제. 그리고 진에 빠진 영국민을 비난하던 귀족들과 살롱을 표적으로 금주 운동을 벌이던 활동가들. 술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던 시기들은 서로 공통점이 있다.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죽음에 내몰리는 시대, 빈부격차가 극심했던 시대, 그리고 쌓이고 쌓였던 부조리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시대라는 점이다. 산업화로 인해 급격하게 일자리가 사라지던 18세기 영국은 인구의 절반이 빵과 감자로 겨우 연명하는 극빈층이었을 정도로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했고 20세기의 미국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가난이 부른 분노, 분노가 만든 범죄. 그러나 두 나라는 모두 간단하게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을 술로 돌렸다. 하지만 정말 모든 문제의 원인이 술이었을까? 혹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술은 이용당한 것이 아닐까?



10년이 넘게 이어진 금주령은 미국 사회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적어도 맥주에 있어서 미국의 술 문화는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금주령 이전에는 가족과 함께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비어가든이 상당한 인기를 누렸지만 금주령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는 어두컴컴한 뒷골목의 밀주 판매장이 차지했다. 미국에는 지금도 ‘다이브바’의 형태로 그 모습이 남아있는데,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대낮에도 칠흑같이 캄캄한 바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금주령 당시 밀주를 제조, 판매하면서 시작된 시카고의 폭력 조직은 훗날 마약 조직으로 발전해 영화 ‘대부’의 주인공들을 만들어냈다. 금주령이 시행되는 동안 수많은 브루어리가 파산했고, 해제된 후에는 몇 안 되는 대형 브루어리가 시장을 독점했다. 전통을 잃어버린 미국 맥주는 1990년대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맥주로 여겨지곤 했다. 크래프트 맥주가 미국을 휩쓸기 전까지는 말이다.


빅토리 브루잉은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에 위치한 인구 7000명의 작은 도시 다우닝타운에 있다. 1996년 론과 빌이 마을의 기차역에 맥주를 만들어 파는 브루펍을 열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양조장이 생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 도시이면서도 대도시를 오가기 편한 교통의 요지였던 이곳은 곧 양조장을 찾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다우닝타운 중심가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한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에선 다양한 지역 상품들을 판매하고, 콘크리트 건물은 점차 벽돌과 아치로 장식된 아름다운 건물로 채워진다. 현재 빅토리 브루잉은 180여 명의 주민을 고용하고 있고, 그들의 맥주는 전 세계로 판매된다. 맥주를 만들어 파는 레스토랑에서 시작한 빅토리 브루잉은 이제 다우닝타운의 상징이 되었다.


술을 ‘필요악’으로, 음주를 ‘사회적 비용’으로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맛있는 맥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맥주가 아니라면 아무도 몰랐을 지역의 이름에 새로운 빛깔을 입힌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작은 맥주, 수많은 빛깔로 매일 커다란 메뉴판을 수놓을 수 있는 맥주, 무심코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빛깔을 바라보고, 그것이 이야기가 되고, 맛에 대해 논할 수 있는 맥주. 좋아하는 것을 자랑할 수 있는, 취미가 되고 취향이 될 수 있는 맥주. 나는 우리의 맥주가 그런 맥주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해답의 실마리는 아마도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우리의 크래프트 맥주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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