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upportloca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미하다 May 05. 2021

6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다

코로나 19시대, 영국의 O은 영국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난 12월부터 영국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백신 접종이 이루어졌습니다. 고 위험군, 의료진, 노령자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23%의 국민이 2차 접종을 완료했습니다. 저도 얼마 전 백신 접종 대상자임을 알리는 편지와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영국 국가 의료보험(NHS)에서 날아온 백신 접종 안내문 ©음미하다


이에 힘입어 2021년 4월 중순부터 영국의 펍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작년 10월  말 두 번째 락다운으로 모든 펍의 영업이 중지된 이후 약 6개월 만의 일입니다. 6개월에 걸친 영업 정지, 상상이 가시나요? 2020년 영국에서는 2번의 락다운이 있었습니다. 5월 첫 번째 락다운 기간 동안에만 미처 팔지 못한 생맥주 약 7천만 잔이 버려졌다고 합니다. 한 잔에 약 3파운드 (5,000원)으로 계산하면 약 3천500억 원어치의 맥주가 사라져 버린 샘입니다. 락다운의 여파로 작년 한 해 평년에 비해 약 2배에 달하는 2,500여 개의 펍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다시 문을 열긴 했지만, 아직 완전한 정상 영업은 아닙니다. 여전히 실내에서의 음주는 금지되어있고, 펍 야외에서만 맥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한국 언론을 통해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간 펍을 그리워했던 사람이 쏟아져 나온 영향도 있지만, 실내에서는 맥주를 마실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락다운 해제 이후 다시 펍을 찾은 사람들 ©음미하다


그렇다면 펍은 영국인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아직 쌀쌀한 실외에서 술을 마셔야 하는데도 굳이 펍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연장, 박물관, 공원만큼 중요한 존재 


2021년 3월, 영국 정부에서는 문을 닫은 지역의 펍, 스포츠 클럽, 극장, 공연장, 박물관, 공원 등을 운영하고자 하는 지역 시민단체에게 총 2,200억 원 (1억 5천만 파운드)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영국의 펍이 극장, 공연장, 박물관, 공원만큼이나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문을 닫은 펍을 되살리기 위한 목적의 펀드도 있습니다. 정부와 자선 단체가 힘을 모아 조성한 ‘펍 그 이상의 펍 (More than a pub)’ 는 총 33억 원 (220만 파운드)의 기금을 바탕으로 지난 5년간 40여 개가 넘는 펍이 지역 공동체의 품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영국 정부의 '지역 사회 공유 펀드' 안내 공고. 프로젝트당 약 4억원 (25만 파운드)까지 신청 가능하며, 공연장, 박물관과 함께 펍 공간 운영 프로젝트로도 신청 가능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영국의 펍은 지역 사회의 주민 센터입니다. 다들 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역 소식을 듣고, 하루의 위안을 얻습니다. 펍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도, 펍을 운영하는 이도, 그리고 정부도 펍을 단순한 유흥시설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펍은 커뮤니티 센터이다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국의 맥주 잡지 ‘Ferment’에 게재된 기사로,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펍의 역할과 코로나 19로 인한 변화를 다뤘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에는 굳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마치 생존 신고를 하듯 1주일에 1-2번 펍에서 눈인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락다운으로 인해 장기간 손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단골의 안위가 걱정되어 연락처를 물어물어 안부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도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지 않는 도시의 삶에서,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공간이 바로 영국의 펍입니다. 


'Where community lives' -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펍, 그리고 #서포트로컬 기념 맥주잔 ©음미하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영국의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는 지역 사회를 위해 공헌합니다. 노던 몽크 브루잉은 2020년 한 해 약 3,000만 원 (23,000 파운드)를 지역 사회 운동 단체와 자선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이렇게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커나가는 존재가 바로 영국의 펍과 크래프트 맥주입니다. 


지역 청소년을 후원하는 단체에 약 700만 원 (5,000 파운드)를 기부한 영국의 노던 몽크 브루잉 ©음미하다



우리 크래프트 맥주의 선한 영향력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놀랍게도 우리의 크래프트 맥주 또한 사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해를 넘겨가며 이어진 호주 산불로 고통받는 야생 동물 구조를 돕기 위해 19개의 한국 브루어리와 펍 등이 함께 <핼핑 핸즈> 맥주를 양조,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브루어리와 바틀 샵에서는 해변 쓰레기를  주워오는 손님에게 시원한 맥주를 대접합니다. 전직 소방관이 운영하는 펍과 브루어리가 함께 <소방차> 맥주를 만들어 그 수익금을 화상 환자 치료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간을 열어주는 펍, 뿌리내린 지역의 농산물을 양조에 사용하는 브루어리, 로컬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로컬 송’을 만드는 브루 펍까지, 한국 크래프트 맥주는 지역 사회를 넘어 전 세계의 문제에 귀 기울이고 이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술, 맥주에 대한 인식은 영국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이미 부산은 맥주 도시로 유명하고, 브루어리를 방문하기 위해 강릉, 제주, 서산, 가평, 평창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도 여전히 술을 필요악이나 마냥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크래프트 맥주 펍은 러닝, 요가, 음악회, 자선 행사, 다양한 도서 소개 등 어느 상업 공간보다도 활발한 문화 행사를 진행하지만 단지 술을 파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 공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포트로컬 #크래프트맥주노포만들기


그래서 저는 국내 유일의 크래프트 맥주 무가지 <트랜스포터>와 함께 #서포트로컬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서포트로컬 캠페인 로고. 취지에 맞는 방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 크래프트 맥주의 다양하고 멋진 활동을 소개하고, 취지에 공감하고 함께하고 계신 전국 127개 크래프트 맥주 매장의 지도와 정보가 담긴 <스티커스>를 기획, 텀블벅 펀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300%가 넘는 후원 목표를 달성했지만, 더 많은 분이 크래프트 맥주의 매력과 진정성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십 년간 이어져온 노포가 흔치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 부모 세대가 이 공간을 지키고, 우리에게 물려주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어렸을 때 사랑하던 로컬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이 10년 후, 20년 후에도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편안하게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 지금부터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크래프트 맥주는 어떤 것인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세요. 마음에 드셨다면, 지킬 마음이 생기셨다면 함께 소중한 공간을 지켜주세요!




텀블벅 펀딩 링크:

https://tumblbug.com/sticktous/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에 소개된 관련 기사입니다:

https://blog.naver.com/designpress2016/22232731128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