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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te Apr 02. 2022

음악과 권력2

레닌그라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는 권력(파시즘) 을 위한 모든 형태의 테러, 예속, 감금, 비판 등 모든 형태의 정치적 폭력을 고발하고 거부하려는
인류의 보편적 정신을 반영한다



레닌그라드


레닌그라드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지명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도시입니다. 

과거 러시아 제국의 수도 였던 만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는 모스크바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도시이고 '네바 강' 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어 '러시아의 베네치아' 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곳이기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고향이기도 한 이 도시는 20세기 중반까지 각종 러시아의 혁명, 세계2차대전 등 주요 역사적 사건의 중심이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한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인 독일과 소련 전쟁의 주요 도시가 바로 레닌그라드였는데 바로 이 즈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이 작곡되었습니다.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고 독일과 핀란드의 군대가 레닌그라드로 침공할 당시 쇼스타코비치도 여느 젊은 청년들처럼 의용소방관 으로 의무복무를 하고있었습니다. 복무 중간에 틈 나는 대로 7번 교향곡을 작곡했고 당시의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곡에 녹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심지어 공습 경보가 울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곡을 써내려갔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로 당시의 참상을 곡을 통해 전하려는 그의 의지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전쟁 전에 안그래도 늘 새로운 음악적 시도로 여러 비판을 받았던 작곡가였지만 자신이 감내하고 있는 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전통적인 교향곡의 형태를 포기하고 3번째 테마를 넣고, 행진곡 리듬과 빈번한 타악기 사용등 또다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통해 전쟁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후에 그의 회고록에서 교향곡7번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쟁은 우리에게 말로 다 할 수없는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전쟁은 우리의 삶을 매우 궁핍하고 어렵게 만들며 우리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옵니다. 나는 음악가로써 죽어가는 생명들과 고통을 위한 '레퀴엠' 을 써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 멸망을 가져다 주는 기계들(전쟁기술)을 묘사해야 하며 그것들에 대한 저항을 표현해야 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레닌그라드'는 당시 독일을 상대중인 연합군, 영국, 미국, 소련의 자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고 심지어 타임지의 표지모델로 장식되는 등 특히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연합군들은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를 앞세워 국민들에게 전쟁 승리에 대한 희망을 고취시켰고 사기를 복돋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1942년 타임지를 장식한 쇼스타코비치


레닌그라드는 사실 나치독일에 대항하여 조국과 연합군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기 보다

전쟁의 적나라한 민중의 고통, 그뿐 아니라 혁명을 앞세우는 독재와 압재에 의한 고통과 억압을 노래했다고 보는것이 더 합당할 것 같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의도와 달리 소련 당국은 여전히 전쟁 전에도 그랬듯 이미 세계적으로 특히 미국에서 유명했던 쇼스타코비치의 명성을 국가의 이미지를 위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죠.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전쟁광이자 독재자들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판단으로 인해 희생되는 무고한 민중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죽음을 불사하고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전장으로 내몰리는 젊은 청년들을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애통하는 심정으로 곡을 썼을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에 작곡되는 교향곡 8번은 전쟁 막바지의 소련의 승기를 잡아가는 시점에 쓰여진 곡이라고 하기에 너무 어두운 음악으로 비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앞선 곡 7번 교향곡의 작곡 의도를 좀더 설득력있게 만들어 줍니다. 이 해석은 그 당시 솔로몬 볼코프 등 망명음악학자들의 의한 것으로 교향곡 8번을 당시 전쟁의 참화와 스탈린 정권의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곡이라고 정치적 해석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쇼스타코비치의 7번 이후의 교향곡들은 (8번, 9번) 또다시 당국과 소련문화예술계의 권력자들의 비판에 직면하여 연주금지 조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가는 어느쪽에 비중을 두는가에 따라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철저히 국가의 이미지로 소비되어져야 했는가, 아니면 음악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엿본것인가. 완전한 어용작곡가로 살아갔다면 그의 삶의 전반에 당했던 검열과 통제로 인한 고통은 불필요했기에 완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했던 그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되기도 합니다. 


세계2차대전 이후 냉전을 지나 또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곳이 하필이면 다시 러시아가 배경이며 같은 국가의 한 독재자에 의한 전쟁이라는 것이 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수많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지만 또다시 희생되는 것은 아무 힘없는 민중들이며 전쟁에 내몰린 젊은 청년들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는 전시 중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종전의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곡 의도만큼은 순수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전쟁의 시대에 참상을 지켜 보며 썼던 그의 레퀴엠이 오늘날에도 들려져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전쟁의 종식과 무고한 희생과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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