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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te Aug 04. 2023

선의 예술, 그리고 윤이상 2부

동양회화로 보는 동양의 선적예술

장우성作_無極 (무극)_59x64㎝_한지에 수묵_연도미상



"동양예술은 선적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붓으로 글씨를 그리거나 한 획을 긋는 표현은 광고에서 동양문화를 표현하는 아주 중요한 기법입니다. 그만큼 '선', 특히 붓으로 그리는 선은 동양의 정신을 잘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선으로 표현하는 동양회화는 당시의 정신을 다루는 철학사상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선'은 사실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회화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일종의 '드로잉 (drawing)이

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서양의 회화가 선으로부터 출발하여 선적요소를 감추거나 선적요소를 확대하여 입체적 효과를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과 달리 동양회화에서는 선 에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 의미를 더욱 확대시켜 나갔습니다. 또한 오늘날 회화에서 매우 중요한 색채조차 부차적인 것으로 돌렸습니다. 이처럼 “선”은 동양회화의 가장 핵심적인 조형언어로 선으로 대상을 긋는 것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동양회화에서 말하는 선의 본질을 '회화'의 한자를 보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회화에서 '회'는 색을 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것은 '화'라는 문자인데요, 



'화'는 붓율 자와 밭 전 자가 결합한 회의 문자로, '붓 율' 자가 마치 손으로 붓을 잡고 종이에 그리는 형상에 그 아래는 '밭 전' 자에 경계를 긋는 듯하여 '그리다' 혹은 '긋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회화에 있어 최초의 체계적인 이론서이자 역사서인 장언원의 저서 '역대명화기'에서는 이 '화'에 대해 정의를 나열하면서 동양회화에서 '선'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화'라는 문자 자체가 말 그대로 긋는 행위, 즉 선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아무 흔적이 없는 백지에 어떠한 흔적을 남긴다는 것, 혹은 밭의 경계를 긋는다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그 선(밭)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선으로 어떤 대상을 그려 그 대상의 경계를 아는 것, 선으로 밭의 경계를 그음으로 그 대상을 분리하여 대상에 대해 이해했다는 뜻인 것이지요. 즉 긋는 행위를 통해 대상을 형상으로 이해하는 '앎'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동양회화에 있어서 “선”은 인식의 도구 즉 언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언어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이름을 부여' 한다면 동양회화는 선을 사용하여 대상을 인식하는 예술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우리는 '이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고 밝힌 바가 있지요.


'무명, 이름이 없음은 시작, 유명, 이름이 부여됨으로 인식을 시작한다. 우리는 이름을 인식하는 순간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혼돈의 세계에서 사물을 구분하여 인식하게 해주는 인식의 세계로 인도한다. 회화의 선은 사물을 구분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동양예술에서의 회화의 중요성은 그의 예술적 가치의 지위적 격상을 통해 그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중세서양에서 보에티우스의 학문의 등급처럼 중국 주나라에서도 군자가 갖춰야 할 마땅한 교육 중 여러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서예'는 귀족의 자제를 교육시키던 국자감에서 당시 교육과정이었던 '육예'의 하나로 다루어졌습니다. 육예 개념은 예학(예법), 악학(음악), 궁시(활쏘기), 마술(말타기 또는 마차몰기), 서예(붓글씨), 산학(수학) 가 있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예가 단순한 조형적 의미의 예술이 아니라 인문학적 바탕 위에 누구나 알아야 할 예법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화에서 이야기하는 선을 긋는것, 즉 회화에서의 '획' 과 서예에서 주장하는 글쓰기에서 선을 긋는 것, 서예에서의 '획'이 형식적으로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화'보다 예술적 지위를 먼저 확보했던 서예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했던 동양의 회화는 서예와의 친밀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이라는 형식적 유사성을 내세운 것이지요. 동양의 회화는 상형으로부터 출발한 한자의 특성을 이용하여 선적요소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서예에 위탁하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동양예술에서 특히 선을 사용한 대표적이고 예술적 절정에 이르른 회화가 바로 문인화 입니다.


수묵화를 대표하는 문인화는 글씨와 그림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하는 독특한 표현 양식 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서양 회화에서 볼 수 없는 양식으로써 주목됩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글과 그림이 하나(書畫一致)’라 하여 글 과 그림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였죠. 이러한 한자의 뛰어난 회화성 때문에 선비들은 ‘글을 쓰는 일’과 ‘그림을 그리는 일’을 구분하지 않았으므로 선비들에게 글은 뜻을 전하는 문자인 동시에 뜻을 새기는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학문과 수양이 깊은 선비의 것일수록 깊은 우주적인 철학이 들어 있어 서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뜻이 심오하기도 했지요.


문인화는 주로 자연을 표현합니다. 자연을 그리는 일은 동양예술에서 가장 근본적인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화가가 많은 경험을 하고 충분히 유람하며 충실히 수 양을 쌓아 아름다운 산과 강이 '가슴속에 역력해지면', 그것을 깊은 차원에서 그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려낸다면 어떤 산수든 우주정신과 일치하는 정신을 표현해 낼 수 있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김정희, 〈세한도〉, 조선 1844년, 두루마리, 종이에 먹, 23.9×108.2cm, 2020년 손창근 기증, 국보, 증10000



동양음악은 이런 동양회화의 철학적 개념을 빌린 선적인 표현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음 피드에서 '동양음악이 선적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을 서양음악과 비교를 통해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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