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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Feb 26. 2024

백화점 c 양 체험판_35

35화_허리디스크로 병가를 썼다.(2)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눈이 내려 쌓인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아 가로수나 도로 가장자리에 하얗게 띠가 생겼습니다.

하얀 띠를 보고 떠올린 라테가 먹고 싶어 져서 처음으로 라테를 마셨고,

따뜻해진 기온으로 잠시나마 얇아졌던 옷은 다시 옷장으로 들어가게 됐고, 다시 목도리를 둘렀고,

눈이 내렸지만 만지지 않았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진 날, 눈이 불러주는 포근한 노래 때문인지 대지각을 하였고 백화점 오픈 15분 전에 겨우 출근한 저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답니다.

오늘도 저와 출근해요!


이어지는->

35화_허리디스크로 병가를 썼다.(2)

그리고 2월의 첫 출근 날.

꼬박 밤을 새우고 출근했는데도, 지하철에서도 잠들지도 않았어요.

일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출근할 때면 지하철에서만이라도 자자 싶어서 좋아하는 노래를 귀에 꽂고 앉자마자 잠을 청하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그날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지하철 밖을 오랫동안 바라봤습니다.

아무래도 건너편에 계신 분은 부담스러우셨을지도 모르겠네요.


늦은 출근으로 햇살은 눈부셨고, 환승을 위해 서둘러 달리느라 빠른 화면으로만 보게 되는 환승역은 순식간에 배경 음악이 깔리는 특별한 공간처럼 느껴졌어요.

너무 오랜만에 집 근처가 아닌 곳으로 나와서인가 저에게는 마냥 상쾌하기만 했습니다.

출근할 때만 챙겨 입는 교복 같은 코트도, 텀블러와 아이패드가 든 책가방도 이토록 익숙한 느낌이니 일상의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빛나는 백화점의 금빛 손잡이를 밀며 사람들에게 보고 싶었다 인사하기 전, 지난 몇 년간의 이 출근길을 곱씹어보기까지 했습니다.

백화점 바로 앞 오피스텔에서 살던 몇 년 전부터,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지금까지 몇 년간의 봄여름가을겨울이 다시 그려졌습니다.

정년퇴직 후 다시 돌아온 길도 아닌데 왜 이리 많은 감정들이 오는 걸까요?


매장에서 한 달간의 이런저런 얘기와, 전달 사항을 듣고 캘린더를 뒤적이는데 영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어요. 어떻게 몇 년을 일하다가 고작 한 달을 쉬었는데 이리도 머리가 안 돌아갈 수 있을까요? 너무 신기하고 웃겨서 혼자서 큭큭 거렸습니다.


꺼두었던 회사 단톡방의 알람을 다시 열고, 이번달과 다음 달의 일정을 정리하려 의미 없는 새해인사부터 쭉 훑어내려옵니다.

쉬는 동안 일은 신경 쓰지 말라며 바이저님이 대화방이라도 나가서 쉬라 하셨지만 한사코 괜찮다 한건 이럴 저의 모습을 알아서였습니다.

사실 비슷비슷하게 흘러가는 한 달이지만, 그 낯섦은 곧 편안함으로 다가왔고 업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직원들과 교대를 하고, 그동안 나를 찾았다던 반가운 얼굴을 띈 고객님의 방문, 오며 가며 마주치지만 아는 사이는 아닌 직원분들이 말을 걸어주는 놀라운 일까지.


"안보이셔서 발령나신 줄 알았어요~"


"허리가 안 좋아서 한 달 쉬다 나오게 되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역시 생각 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말을 안 하고 있었을 뿐 …

이런저런 제품을 추천받기도 하고, 아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의 위로 속에서 힘을 얻었네요.

다만, 이런 격려의 말을 하는 따뜻한 순간이 화장실 안 이긴 하지만요?


자칭 아웃사이더 형인 저인데, 생각보다 백화점에서의 나를 기억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괜스레 뭉클했던 하루였습니다.



<오늘의 퇴근길>



어떤 일에 두려워 망설였던 것들이 막상 부딪히고 나니 별것이 아니었던 순간들이 정말 많습니다.

전공을 때려치우고 완전히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것,

몇십 년간 다녔던 달콤한 직장을 퇴직 후 새로운 사업에 눈을 뜨는 것,

자꾸만 마이너스되는 주식에 소위 존버하다가도 과감히 돈을 그만 잃을 결심,

늦은 나이에 다시금 불타오르는 학구열,

서로가 서툰 불안정한 사랑에서 안정적인 사랑이 오는 그 순간,

운전대만 보면 손을 벌벌 떨게 되는 장롱면허를 가진 사람의 운전 연수,

무대 공포증으로 힘들어하던 예술인이 일궈낸 편안한 무대,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것,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두려워했던 것, 자신 없어했던 것,

많은 생각은 더 지체할 시간만 늘게 되고, 무작정 부딪히고 보니 별것도 아닌데 괜스레 어떤 생각 때문에 걱정을 키웠던 건 아닌지.


나 자신이 용납하지 못할 것 같았던  상황도 막상 하고 나니 별것 아니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아서  그렇게 한걸음 나아가고 오늘도 배워갑니다.


먼저 이런 길을 걸으셨을 분들이 존경스럽고, 저도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고 싶어요.


해가 없어 보이지 않던 저 어두운 바다도
결국엔 늘 그 자리에 있었음을.
해가 비추고 달이 비춰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헤엄쳐보면,
해이든 달이든 앞길을 비춰주리라 믿어.


Q.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A.  ‘손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의미 없이 건넨 말이 저를 성장시키기도 했고, 일으켜주기도 했는데요, 누군가가 카메라 밖에서 저로 인해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면 받은 사랑을 갚는 것 같음과 동시에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저는 ‘손 내미는 사람’ 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번 주 오디션 멘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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