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 과정이 끝난 지 이틀이 지났다. 정훈은 여느 때처럼 세광전자 부천 사업장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에는 품질 보고서가 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6주를 비웠던 자리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책상 위의 메모지 배열도, 모니터 화면 배경도 그대로였다. 적응이 안될까 걱정했지만, 몰려들어온 일들이 정훈을 적응하게 만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김 부장이 정훈을 불렀다.
"조 과장, 잠깐만 회의실에서 볼까."
차갑고 어두운 회의실 문을 닫고 김 부장이 말했다.
"지난번에 전화로 이야기한 호치민 주재원 건 말이야. 생각 좀 해봤어?"
"아직 고민중이에요. 아내랑 이야기를 더 해야하고..."
"근데 말야. 경쟁자가 한 명 생겼어. 영업팀 이강민 과장."
정훈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애써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며, 입을 열었다.
"어떤 분이에요?"
"작년에 들어온 경력직이야. 전 회사가 외국계 회사였는데, 그 쪽 베트남 법인에서 2년 있었다더라고. 베트남어도 유창하게 된다고 하고."
창밖으로 주차장이 보였다. 햇볕이 아스팔트 위에 따스히 퍼져 있었다.
"선발 기준은요?"
"2주 뒤에 상무님이 직접 결정하실 거야."
이강민을 처음 본 건 그 다음 날 복도에서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서른다섯이라고 들었는데 더 젊어 보였다. 정훈이 눈인사를 하자 이강민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조정훈 과장님이시죠? 이강민입니다."
정훈은 당황한 듯 손을 내밀며 악수를 했다. 그의 악수가 단단했다.
'날 어떻게 알지? 같이 일한적도 없는데.'
둘 사이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던 찰나, 정훈이 말했다.
"들었습니다. 베트남 계셨다고요."
"2년 있었습니다. 호치민 현지 법인에서요. 그래서 이번에 법인 주재원하고 싶다고 손 들었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호치민에서의 경험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자리가 더 끌리더라고요."
이미 준비된 사람의 말투였다. 이강민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과장님은 어학 과정 마치고 오셨죠? 어떠셨어요?"
"열심히 했습니다."
정훈이 대답했다. 스스로 듣기에도 밋밋한 대답이었다.
이강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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