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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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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룡 Apr 24. 2021

주택에 살고 싶은 마음

난 주택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외가와 큰 외가, 이모집이 주택이었는데, 셋 다 참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실상 그 나이 때 추위 같은 것은 큰 문제가 못 된다. 되레 좋은 점은, 그곳에는 언제나 숨을 다락방이 있다는 것이었다.

큰 외가는 애초에 시골 한옥이어서 다락방은 없었지만 사랑방이나 안뜰, 밭, 시내 등등 놀 곳이 무척 많았고, 외가와 이모집에는 다락방이 있어서 틈만 나면 사촌들과 그곳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놀이를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중에는 주택에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내 집을 마련해서 살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왜 주택일까

독립해서 타향살이를 하면서 처음 살았던 곳은 자그마한 오피스텔이었다. 경기도 외곽이라 적은 돈으로도 제법 큰 방을 구할 수 있었고, 그 정도면 내게 충분했다. 지인들 중에는 복층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도 있었는데 당시엔 그곳이 무척 좋아 보였다. 복층도 결국 다락방 같은 개념이기 때문일까. 나도 저렇게 세련되고 예쁜 집에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지인 중 한 사람이 단독주택을 지었다. 그 집에 놀러 가서부터 꿈이 생겼다. 나도 단독 주택에 살고 싶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든 나만의 예쁜 집에. 하지만 내겐 지인만 한 돈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 땅부터 사. 빚을 내더라도 일단 사. 좋은 땅 구하는 것이 제일 힘들어. 좋은 땅은 금방 나가니까 서울 근교에는 금방 땅이 없어질 거야.

나는 땅을 사지 않았고 오피스텔을 전전했다. 처음 살던 곳보다는 훨씬 좋고 넓은 오피스텔이었으니, 어쩌면 거기 만족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쉽다. 물론 그때는 빚이 무섭고 앞날이 걱정되어 시도조차 못했지만, 그때 땅을 샀더라면 어쩌면 내 꿈이 좀 더 빨리 이뤄지지 않았을까?


시험이라도 해보자

6-7년 전쯤, 어쩌다 보니 오피스텔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 단독주택을 찾아볼까 하고 값싼 동네를 알아보았다. 마침 가까운 지역에 빌라나 단독주택이 많이 들어섰지만 도시가 덜 발전해 값이 싸다는 것을 알고 몇 군데 소개를 받아봤다. 연예인 아무개 씨가 산다는 동네의 단독 주택을 비롯해서 서너 군데의 주택과 땅을 구경했다.


그 당시 내가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두 가지였다. – 지하주차장, 그리고 평지. (물론 가격도 중요했다)

한 단독 주택은 이제 막 짓기 시작했는데 부지도 넓고 집도 좋지만 심각한 경사가 진 언덕이었다. 연예인 아무개 씨가 사는 동네의 단독주택도 좋았지만 골목골목으로 깊이 들어가는 데다 지하주차장이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지하주차장이 있고 평지에 면한 타운하우스였다. 단독주택은 아니고 옆집이 붙어있는 빌라형 타운하우스. 다른 곳과 달리 어느 정도 내 의견에 맞춰 인테리어를 해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곳은 스킵플로어여서 층계를 이용해 공간을 여러 개로 분리한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인테리어를 시험해보기 좋고, 작은 앞마당이 있어서 마당 살이를 시험해보기도 좋았다.

스킵플로어(왼쪽), 작은 앞마당(오른쪽)

스킵플로어는 방과 방을 벽으로 나누는 대신 층계를 두어 반쯤 높여서 나누는 방식인데,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좋다고 한다. 내가 고른 집은 4층짜리니까 공간은 총 7개다. 앞마당까지 치면 8개 공간이 있는 셈. 나는 이 공간을 모두 다르게 꾸밀 계획을 세웠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써보겠다.


나는 주택에 맞는 사람일까?

마당이 있는 빌라형 타운하우스에서 사는 6년 간, 내가 주택에 잘 맞는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마당

단독주택을 꿈꾸는 사람이면 누구나 손꼽는 것이 마당 아닐까?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래서 큰 파라솔과 테이블을 샀고, 화분도 여럿 들였다. 그런데....

첫째, 나는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 마당에 나갈 일이 별로 없었다.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는 일은 손님이 올 때 만일뿐.

둘째, 공기가 나빠져서, 바깥의 따뜻한 햇볕에 빨래를 말리기보다는 그냥 건조기를 돌리는 편이 훨씬 안심된다.

셋째, 잡초가 왜 잡초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결국 데크를 깔았다.

결과적으로 내게는 마당 넓은 주택이 필요 없었다. 그냥 외부와 단절할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처음 입주해서 샀던 꽃, 꽃, 꽃

두 번째는 계단.

계단 있는 집은 다니기 힘들다고들 한다. 부모님이 오시면 불편해하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집은 스킵플로어여서 거실에서 주방을 가려고 해도 계단을 통해야 하니, 기본적으로 무슨 일을 하든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내게는 계단이 잘 맞았다. 늘 앉아서 컴퓨터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움직임이 별로 없는데 억지로나마 운동을 하게 만들어준 것이 계단이었다. 좀 더 나이가 들면 힘들지 모르겠지만, 복층 주택은 내게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벌레.

빌라나 주택이라서 벌레가 있다기보다는 1층이기 때문에 벌레가 있다고 해야 옳겠다. 우리 집의 벌레는 마당과 현관에서 들어오고 1층 주방에 서식(?)했다. 내가 주로 쓰는 2층 거실과 3층 방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주방이나 현관에서 벌레와 마주친다.

초반에는 정말 기겁했다. 날아다니는 녀석이 아니라 기어 다니는 녀석인지라 내가 더 빨라서 망정이지, 날벌레가 많았다면 몇 번은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윽, 또 들어왔잖아"하면서 침착하게 약을 찾아 뿌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도 손으로 때려잡거나 살려서 내보내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또다시 1층이 있는 주택에 가더라도 비명 몇 번 지르고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돈.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대세인 까닭은 뭐니 뭐니 해도 투자 가치 때문이다. 단독주택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데 반해 아파트는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오르는데, 누가 주택을 고르려 할까? 단독주택을 고르는 사람은, "구태여 사는 집으로 투자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넉넉한 사람"이거나 "그 어떤 희생을 치러도 주택에 살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단독주택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타운하우스인 우리 집도 6년이 지난 후까지 값이 별로 오르지 않았고, 사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건 은행이 빌라/주택에 대출을 잘 안 해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주변 지인도 단독주택을 팔고 싶은데 사려는 사람이 없어 고민이란다. 게다가 설령 팔더라도 토지값이나 쳐줄까, 건물 값은 거의 받지 못한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내가 좋은 집이라면 평생 살 거야"는 생각이어서 이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네 가지 조건을 따져봤을 때 세 가지는 문제가 되지 않고, 마당은 가장 손이 덜 가게 만들면 되므로 나는 주택에 맞는 사람이라 볼 수 있겠다. 뭣보다 윗집, 옆집의 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뭐든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땅 사기

결국 집을 짓기로 하고 땅을 보러 돌아다녔다. 친구에게 조언을 들은 후 약 10년, 이제야 그 조언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실감했다.

땅이 없다.

좋은 곳은 헉 소리 날만큼 비싸거나 생활권에서 멀거나 언덕 높이 있다. 적당한 가격대에 위치도 좋다고 느낀 곳은 지하주차장을 짓기 어렵다.


고민과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한 군데를 낙점했다. 비록 주변 환경이 완벽하게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위치나 가격이 적절하고 내가 짓고 싶은 집 모양을 낼 수는 있는 곳으로. 친구의 조언이 떠올라, 이렇게 계속 미루다가는 점점 더 외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도 한 몫 했다. 다행스럽게도 본래 저지른 다음에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내 삶의 원칙이라, 지금은 이 땅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흐뭇해하는 중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이제 슬슬 집을 지어볼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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