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집에서 산 경험이 이번 집터를 고를 때 도움이 되었다. 예전 집을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1. 언덕이 아닐 것
2. 지하 주차장이 있을 것
둘 다, 차로 이동하는 일이 많은 데도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익숙지 않은 나 때문이다. 언덕길은 괜히 미끄러질까 무섭고, 눈이 많이 온 날 아침 차창을 녹이는 것이 괴로워서, 딱 저 두 가지만을 생각하고 골랐는데 살다 보니 둘 다 탁월한 선택이었던 터라 이번에 집터를 고를 때도 똑같이 적용했다. 물론, 거기다 살면서 깨달은 다른 것도 추가했다.
3. 적어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편의점이 있을 것
4. 건폐율 20%인 전원주택용지(자연녹지)는 하지 말 것
수년 전만 해도 건폐율이 뭔지 몰라서, 그저 대지가 100평이라고만 하면 '우와 큰 땅이구나'하고 좋아했다. 하지만 대지 100평에 건폐율 20%면 한 층의 면적은 20평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80평은 마당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또 내가 마당 생활에 로망만 있을 뿐 별로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비록 대지는 작아도 큰 평수로 한 층을 만들 수 있는 주거지역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번에 땅을 고를 때도 주거지역만 골라 봤는데, 확실히 주거지역은 자연녹지에 비해 작고, 비싸고, 주변에 건물이 많다. 자연녹지처럼 사방이 확 트인 곳은 없다. 만약 있다면, 아직 주변 택지에 집을 짓지 않아서이거나, 분양 당시 가장 좋은 땅을 골랐기 때문일 것이다.
집을 짓기로 하고서는 출근길이 멀지 않으면서도 회사가 있는 분당보다는 집값이 싼 경기 용인에서 집터를 찾아봤다. 개중에 처인구나 요즘 뜨는 고기동은 거의 자연녹지지역이라 가보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본 한 군데는 자연녹지처럼 조용하고 평화롭고 새소리가 들려서 꼭 마음에 들었지만, 아쉽게도 지하 주차장을 만들기 어려운 형태여서 고민 끝에 포기했다. 또 한 군데는 대지는 넓은데 너무 언덕인 데다 갓 형성된 마을이라 주변에 편의점은커녕 변변한 가게 하나 없고, 또 한 군데는 이제 막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단지로 예쁜 집들이 많고 땅도 큰데 출근길이 지나치게 멀었다.
시간과 돈이 충분하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땅은 점점 사라지고 가진 돈으로는 위의 네 곳보다 더 좋은 땅은 엄두도 낼 수 없으니 어쩌랴. 제일 포기하기 싫은 것 몇 가지를 갖춘 곳을 찾아 빨리 사두는 것이 최선이겠거니 싶었다.
그래서 내가 고른 터는 구경한 곳 중에서 제일 작고 아파트에 둘러싸인 곳이다. 비록 빛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평지인 데다 지하주차장을 만들 수 있고 얼마쯤 걸어가면 편의점을 비롯해 상업시설이 잔뜩 있다. 더불어 앞서 어떤 곳보다도 출근길이 짧은 곳이기도 했다.
친지 중 한 분은 집터를 고르는 데만 수년을 쓰셨다. 내가 예전 집, 타운하우스에 들어갈 때도 땅을 찾고 계셨는데 거기서 나올 때까지 찾으시다가 얼마 전에야 터를 고르고 집을 지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급하게 땅을 산 셈이지만, 집 짓기를 시작하는 지금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가진 예산으로 이만한 터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시작부터 완벽한 터를 골라 완벽한 집을 짓겠다는 희망에 부풀지는 않겠다. (그러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 주어진 터에서 욕심내지 않고 내 삶에 꼭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