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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룡 Jun 06. 2021

스케치업으로 집 기획하기

땅을 사고서 설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집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생각하느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오랜만에 스케치업을 찾아봤다. 지난 집 인테리어를 할 때도 큰 도움을 준 프로그램이다.

그때만 해도 구글이 인수해서 데스크톱 버전을 무료로 쓸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들어가 보니 Trimble사가 인수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일단 개인용 무료 버전은 웹 버전만 사용할 수 있고, 일부 기능 제한이 있다. 기능 제한이 있다지만 집 구조 그려볼 만은 하다. 


어차피 단순 구성 스케치만 할 거라면 손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는 딱히 필요 없는 툴이지만, 손으로 사각형 하나도 제대로 못 그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만큼 좋은 툴이 없다. 혹 관심이 있으면 스케치업 공식 웹사이트(https://www.sketchup.com/)에서 무료 버전을 사용해볼 수 있다. (상단 그림은 스케치업 공식 웹사이트 캡처본이다.)


나같이 단순한 용도로 쓸 거라면, 왼쪽에 나타나는 메뉴에서 동그라미 친 것만 쓰면 된다.

스케치업 메뉴를 회전한 모습

4번째, 6번째 메뉴로 사각형을 그리거나 줄을 그어 베이스를 만들고, 7번째 메뉴로 입체감을 준다. 9번째는 만든 요소를 움직이고, 12번째는 화면을 옮기거나 회전한다. 10번째는 치수선을 만들거나 가이드선을 그리는 데 쓴다.

3번째는 색칠 메뉴인데, 선택하면 이미 정의된 색상이나 매터리얼이 나타난다. 구글이 배포했을 때는 커스텀 매터리얼을 추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프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스케치업 오른쪽에도 메뉴가 있다. 색칠 메뉴를 누르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게 될 그 위치에. 거기서 3D warehouse에 들어가 보면 전문가나 회사에서 만든 모델이 잔뜩 있으니,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배치만 잘해도 예쁜 인테리어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대신 아무래도 렌더링 속도가 느려진다)

의자를 검색해서 하나 가져와봤다. 본래 만든 모델에 색칠도 했다.

우선 우리 땅 모양을 바닥에 그려보았다. 우리 땅은 동남쪽 귀퉁이가 살짝 잘린 모양이다. 건축법에 따라 인접 대지 경계선에서 정해진 너비로 이격해야 하는데, 점선으로 이를 표현했다. 상단인 북쪽에는 다른 집터가 있어서 일조권을 위해 다른 방향보다 더 많이 띄어야 한다. 

요렇게 해놓고 나면 이제 어떤 형태로 집이 들어갈지 상상해볼 수 있다. 건폐율 50% 땅이기 때문에 가장 단순한 사각형을 생각하면 이렇다.

북쪽 끝에 붙인 형태(왼쪽)와 서쪽 끝에 붙인 형태(오른쪽)

이웃들을 둘러보니 한 방향이 동산에 인접한 곳은 왼쪽이나 오른쪽처럼 집을 앉히고, 그렇지 않으면 집터 가운데 앉히는 듯했다. 요즘은 벽으로 사방을 거의 둘러싸는 형태에 중정을 두는 추세인 것 같다. 집안 공간이 널찍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중정이 공간을 조각내는 것 같아서 선호하지 않는데, 건축설계사 상담을 받아보니 작은 땅에서는 중정이 있으면 빛도 잘 들어오고 서로 마주 보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중정을 두는 걸까.


건축설계 상담받기 전에 내가 만들어본 집 형태는 이렇게 세 가지다. 


1안 트인 쪽으로 창 내기

우리 집터는 동남향으로 뚫려 있어서 동남향을 향해 돌아앉은 형태다. 이 첫 번째 안은 남편의 바람을 100% 반영해서 그려봤다. 한쪽면에 통창이 있고 1층보다 2층이 좀 더 넓어서 1층 마당에 자연스레 그늘이 지는 형태를 원했다. 그러려면 1층 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폐율은 전체 건물을 바닥에 반사했을 때 나타나는 면적이기 때문에 2층으로 가려지는 곳이 실내가 아니더라도 건폐율에 들어간다는 슬픈 사실) 이 때문에 입체를 쌓아보면 모양은 나쁘지 않은데 공간이 약간 아쉽다.


2안 프라이버시를 확보한 서쪽으로 마당 내기

1안을 그려놓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왜 꼭 동쪽에 마당이 있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터는 동쪽으로 도로가 있고 서쪽에는 아파트가 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도로가에 집이 붙어 있으면 안 되겠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바꿔봤다. 도로 쪽에 마당을 두면 프라이버시 때문에 잘 쓰지 않을 테니, 오히려 아파트가 있는 서쪽에 마당을 만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그려본 게 두 번째 안이다. 서쪽 마당을 크게 만들려다 보니 남북으로 공간을 꽉꽉 채웠고, 그래서 통통한 형태가 되었다. 서쪽에 있는 공간에서 밖을 볼 때 답답하지 않을 것 같아서 좋은데, 공간이 너무 통통해서 내부에 빛이 잘 들까 싶기도 하고, 제일 많이 쓰는 거실이 오각형이 되어 활용하기가 살짝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3안 거실만 따로 분리하기

우리는 주로 거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예전 집에서는 1.5층을 내 작업실, 3.5층을 남편 방으로 만들었는데, 그렇게 방을 갖고 싶다던 남편은 방에 에어컨이 없다며 거실로 컴퓨터를 옮겼고, 노트북을 주로 쓰는 나는 자연스레 노트북을 갖고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한 때 내 작업실이었던 곳. 파란 페인트 벽은 지금 봐도 예쁘다.

그러다 보니 둘 다 "거실이 넓어야 한다"에 동의했고, 그래서 그려본 것이 3안이다. 중정과는 반대로, 집 가운데를 넓게 빼서 거실로 삼고 날개 부분에 방과 욕실을 두는 형태인데, 막상 그려놓고 나니 거실 쪽에는 동서로 창을 둘 수 있어서 훨씬 밝고 시원해 보일 것 같다. 마당이 둘로 나뉘는 단점이 있지만, 뭐 어떤가. 우린 평소에 마당 생활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을.


몇 달을 들여가며 저렇게 세 개 안을 그렸지만, 어차피 실제 설계도는 건축설계사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그려야 하니 저 안을 쓰진 않을 것이다. 이만큼 시간을 들인 건, 건축설계사를 만나기 전에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실제 설계 단계에서 잘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그 시간이 아깝지 않게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본 덕분에 머릿속에 계획이 섰다. 뭣보다 공간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야지' 싶었던 쓸데없는 조건(예: 방은 3개)을 포기할 마음이 생겼고,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을 어디에 둬야 할지 감이 잡혔다. 본의 아니게 인접대지경계선이라든지, 내외벽 두께라든지, 내단열/외단열 내부 면적 측정 방법이라든지 하는 지식까지 얻었고.


이제 건축설계 1차 미팅을 앞두고 있다. 저 많은 그림을 그린 다음 얻은 결과는 이렇게 정리해 설계사님께 전해두었다. 

모든 공간에 내벽을 최소화. 스튜디오처럼 한 공간으로 만들 것

방은 1층에 하나, 2층에 하나면 충분

마당은 크지 않아도 됨

지하에는 차 2대 이상 주차 가능하되 서로 방해받지 않고 출입하게끔

상세한 요구 사항이 많지만, 일단 가장 큰 것만 나열해보았다. 1차 안에 이 내용이 잘 반영되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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