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견 Aug 25. 2023

가장 멋진 내 남편이 처음으로 고맙다고 했다.

도미니카 여사의 사랑이야기 1- '고 맚씀닌다'

"딸~ 내일 아빠 여행 가신다. "

"같이 가세요?"

"아니, 농협에서 대위원들 여행 보내주는 거라서 엄마는 안가."

"아빠 혼자 가는 여행은 처음이네요."

"아빠 여행 기분 좋게 보내드리면서 기 살려드릴 방법 좀 생각해 봐~"


역시, 친정엄마의 센스는 살아있다. 항상 두 분이 같이 다니던 여행이었는데, 처음으로 아빠 혼자서 모임에 속해 여행을 다녀오신다니 신경이 많이 쓰이셨나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아빠의 기 살려 드리는 방법은 여행 가셔서 사용하실 용돈 보내는 리는 것이었다. 용돈을 보내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어~"

"저녁은 드셨어요?"

"먹었지~"

"뭐 맛있는 거 드셨어요?"

"맨날 똑같지 뭐, 엄마가 만들어 놓은 거 챙겨 먹었어."

"아빠 여행 가신다면서요~ 좋겠다~"

"이.... 보내준다니까 가는 거야"

"아빠~ 통장으로 용돈 조금 보냈어요. 여행 잘 다녀오세요"

"그려~ 잘 갔다 올게."

"네~ 무릎 아프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그려, 약 먹어서 괜찮아. 가방에 약도 챙겼어."

"잘하셨어요. 잘 다녀오세요."

1분도 안 걸리는 아빠와의 통화가 끝났다. 10초짜리 안부만 묻던 통화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용돈도 챙겨드리고 아빠의 목소리도 듣고 나니 나도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았다.



퇴근길에 엄마한테 메시지가 왔다. 1박 2일 여행 떠나면서 처음으로 아빠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좋아하셨다. 그러면서 보내온 대화내용이 담긴 화면에는 '1. 가정 멋진 내 남편'이라고 아빠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혼자 집에 있는 아내를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 담긴 '내일 감니다' , '고 맚씀닌다' 두 문장이 적혀있었다. 평생 농사지으며 두툼해진 손가락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는 문장들이었다. 엄마는 결혼해서 처음으로 아빠한테 듣는 고맙다는 말이라며 마치 수줍은 새색시의 얼굴이 발그레지는 듯한 목소리로 "딸~ 엄마 너무 행복해"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다. 핸드폰 버튼을 누르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피치를 배우기 전 나의 목소리와 말투는 

농사일에 집중하고 힘듦이 쌓여도 해소할 여유도 없고,

자신을 돌보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아들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해 농사를 책임지는 농부로 살아가던 

나의 아버지의 크고 강한 목소리와 말투를 그대로 닮았었다. 


나의 아버지의 목소리는 항상 커야 했다.

그래야 논밭 여기저기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말은 항상 빠르고 급했다. 

그래야 해지기 전에 일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했던 말을 여러 번 하고 또 했다. 

농작물들의 특징이 다른 듯하면서도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피치 코치가 되어 아버지의 말투와 컸던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숨소리까지 관심가지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고 빠르고 숨가쁘게 들렸다. 통화는 단답형으로 10초를 넘기지 못했다. 평생을 크고 빠르게 말하던 아버지의 말투를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친절하게 걱정해 주며 공감해 주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말 한마디가 그리웠다. '고마워.', '잘했어.'라는 칭찬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 말을 아버지한테 듣고 싶었던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바로 45년을 부부로 살면서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하고 있는 아버지의 부인, 나의 친정어머니 도미니카 여사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남편이 나한테 고맙다는 말 한 번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도미니카 여사의 바람이 바로 오늘 이루어진 것이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얘기를 할 때는 마치 밭에서 일하고 있는 듯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손주들이 놀러 와서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배가 제일 맛있다고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최고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운 숨소리와 웃음소리도 들렸다. 내가 애들 학원 데려다주고 들어가면서 힘들다고 전화했을 때는 운전 조심하라고 걱정할 때는 아버지의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스피치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할 때 "네~", "아~"와 같은 감탄사 대신에 아버지의 말을 공감하면서 말을 길게 하기 시작했다. 5월이 되면 아버지는 고구마를 많이 심으셨다. 8명의 손주들이 마음껏 맛있는 고구마를 먹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렇게 좋으시다고 하셨다. 친정아버지의 고구마 농사 노하우의 절반은 손주들과 자식들을 향한 사랑의 결실이었다. 아이들과 고구마를 맛있게 잘 먹었다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의 목소리는 화가 잔뜩 나있었다. 

"아빠~ 고구마가 너무 맛있어서 먹다가 아빠생각나서 전화했어요."

"그려!"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왜 이렇게 화가 나신 거 같아요?"

"아녀!"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답답해서 그래."

"엄마랑 다투셨어요?"

"아녀, 엄마랑 사이좋아. 근데 내가 지금 유튜브를 보고 있걸랑...."

"엄마랑 같이 유튜브 보고 계셨던 거예요?"

"이, 같이 보는데 어떤 귀농한 초보 농부가 고구마를 심는 걸 찍어서 올렸어, 아 그런데 고구마 모종을 저렇게 심으면 안 되는데 다 죽게 심는 거야! 가서 말해줄 수도 없고 답답해 죽겠어!"

"고구마 모종을 어떻게 심었어요? 혹시 흙을 덜 덮었나?"

"너도 기억나지? 고구마 모종은 눕혀야 해. 그래야 고구마가 잘 크지. 아 근데 그 초보농부라는 애가, 고구마순을 무슨 고추모종 심듯이 세워서 심잖아. 저러면 고구마모종 다 죽어서 농사 망쳐!"


초보 농부의 고구마 심는 영상을 보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거칠고 화가 난 목소리로 표현되고 있었다. 고구마 모종을 심는 모습을 나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톤이 안정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듣고 있는 딸을 이해시키려는 아버지의 노력이었다. 감탄사 대신에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상황에 맞는 질문을 하는 나의 말을 아버지도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에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아버지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5년 결혼생활동안 남편의 말투와 무뚝뚝함에 서운함 가득했던 친정엄마 도미니카 여사도 가장 사랑하는 남편의 숨소리, 목소리 그리고 말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남편한테 듣고 싶은 말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해야겠다며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 작은 용기는 '고 맚씀닌다'로 표현되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도미니카여사는 오늘밤 잠을 못 잘 것 같다며 가장 멋진 내 남편이 여행에서 빨리 돌아오면 좋겠다고 했다. 오타도 아버지의 고마움의 표현은 막을 수 없었다. '고 맚씀닌다'



작가의 이전글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