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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Jan 28. 2021

4일 만에 운전 면허를 땄다

도로 위의 폭탄이 나가신다

대부분 운전 면허 따기를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그저 귀찮은 숙제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일단 면허 학원에다 고스란히 바쳐야 할 70만 원가량의 비싼 학원비를 지불할 생각에 엄두가 나지 않았고, 차를 굴릴 돈과 뒤따라오는 보험비도 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있거나, 아니면 집 근처에 산책만 다니는 내가 차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 낭비였다. 주식이야 가지고 있으면 오르거나 아니면 내리거나 하지만, 자동차는 구매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차와 면허에 대한 필요성을 내 마음속 구석으로 몰아넣는 데 한몫했다.


그래도 언젠가 내게 닥쳐올 운전의 순간을 위해 올해는 비로소 면허를 따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사실 이 결심도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예약한 학원이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 1월 초에 느닷없이 카톡방에서 '할 일도 없으니 면허 시험이나 보자'라고 하며 즉시 학원을 다 알아본 것이 내 면허 시험 준비의 시작이었다. 남자는 1종이라며 호기롭게 선언하려 하다가도, '내가 트럭을 몰 일이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혹시 떨어지면 돈이 깨지겠구나' 싶어서 2종으로 신청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그리고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무수히 많은 실격과 탈락 신호는 이러한 나의 결정에 더 많은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필기시험은 전용 앱으로 준비했다. 물론 학원에서 3시간짜리 의무 수업을 듣고 나서야 시험을 보러 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교실에 들어가 보니 유튜브 영상과 프레젠테이션만 나올 뿐 대부분 혼자서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강사가 나눠주는 문제집과 앱에 나오는 모의고사 몇 세트만 풀어보고 시험장에 가서 문제를 풀었다. 도로교통법 문제가 초반에 발목을 잡았지만, 결과적으로는 90점으로 합격이었다. 필기시험은 도덕 시험과 똑같다는 말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문제는 평이했고, 굳이 흠을 잡자면 시험장에서 사용하는 헤드셋이 너무 낡아서 영상 문제의 음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기능 시험도 예약 당일에 4시간 연습 후에 바로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사실 학원에 가기 전날에 유튜브로 다른 사람들의 기능 시험 영상을 보고 또 봤지만, T주차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운전 학원마다 공식이 다 다를뿐더러 선만 밟아도 10점씩 감점이라는 사실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막상 교육을 진행하면서 강사님의 말대로 진행하니 그대로 들어갔다. 운전대를 처음 잡는 날이기도 해서 긴장을 하고 들어갔지만, 3시간 정도가 지나자 지루함을 느낄 정도여서 강사님도 나를 혼자 돌게 하고 다른 교육생을 보러 가셨다. 결과적으로는 6분 30초 대에 100점으로 합격했다.


마지막은 도로 주행 시험이었는데 연습 면허는 하루에 운전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틀에 걸쳐 3시간씩 주행하고 시험을 봤는데, 마지막 날에 비가 오고 날도 어두워져서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교차로에서 사고까지 났다고 해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나간 도로는 의외로 이상한 사람이 적었다. 숄더 체크를 하고 차선을 변경하는 일, 정차할 때 기어를 중립으로 넣는 일, 그리고 핸들을 너무 팍 돌리지 말기 등을 배우고 바로 시험에 들어갔고, 점수는 알 수 없었지만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 면허증은 바로 다음 날에 받았다.


이 모든 일이 겨우 4일 동안에 이루어졌다. 다른 곳은 기능도 이틀씩 연습하고 도로 주행 연습도 많이 한다던데 나와 친구들이 간 학원은 이상하게 빠른 일정을 가지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깡패도 이것보단 더 운전시켜주겠다고 했지만 진짜 빠르긴 빨랐다. 나야 어차피 빨리 따고 다른 일하면 이득이긴 하지만. 조만간 가족들의 도움으로 근처 도로에 운전 연수를 나가기로 했다. 주변에 차가 별로 없는 도로여서 나 같은 초보 운전자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강사님은 3개월만 운전해도 테크닉은 다른 사람들이랑 거의 비슷해진다고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서 튼튼한 볼보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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