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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Jan 14. 2021

배려는 하수도관을 타고 흐른다

겨울마다 터지는 집 안의 작은 홍수

하수도관이 터져 집 안에 물이 가득 차있었다.
한파로 인해 하수도관이 얼어 현재 수리 중이므로 주민 여러분께서는...


   눈이 내리고 한강이 얼 정도로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면, 아파트 관리실도 슬슬 이런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아무리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이라지만, 요 몇 년 사이에는 여름과 겨울의 자기주장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름은 더 뜨거워진 햇살로 우리의 정수리가 녹아내리게 만들 심산으로 이글거리고, 겨울은 뇌수마저 얼어버릴 정도의 추위를 북극 바람과 함께 한반도 위로 쏟아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의 계절 변화 페이스라면, 언젠가는 마치 동남아시아의 어느 휴양지처럼 길거리에서 은행나무 대신 망고와 야자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도 했다. 뭐, 나는 망고를 좋아하고 은행 냄새는 싫어하니까 별 상관은 없다만, 그래도 찜통의 비비고 만두나 삼립 호빵처럼 익어버리기는 싫었다.



   어쨋든 이 시기가 되면 엄마는 항상 빨랫감을 화장실 한 곳에 몰아두고 빨래 준비를 하신다. 주름이 많이 질 수 있는 옷, 수건이나 팬티, 이염이 심한 옷 따위를 구분해서 엄마는 빨래를 했다. 기껏해야 할머니 댁에 살면서 1년 동안 엉터리로 빨래를 해왔던 나와 비교하면, 엄마의 유구한 빨래의 역사는 사연이 깊고 진하다. 온몸으로 기술의 힘을 체감하는 세대가 어쩌면 우리 엄마 세대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는 할머니와 함게 냇가에서, 앞마당의 수돗가에서,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는 지금의 세탁기와 건조기 앞에서 빨래를 했다. 세탁 기술의 발전으로 엄마는 겨울철에 추위로 빨갛게 부은 손을 녹여가며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고, 건조기 덕분에 축축한 빨래 냄새를 맡아가며 옷을 개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수도관이 얼면 상황은 달라진다. 물이 역류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6층이다. 다시 말해서 윗 집이 아무리 빨래를 돌려서 물이 역류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작은 홍수의 피해자는 우리 집이 될 일이 없다는 말이다. '기껏해야 얼마나 물이 넘치겠냐, 넘쳐봤자 베란다만 조금 젖겠지.' 하지만 나는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사진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베란다뿐만 아니라 거실과 안방, 심지어 어린아이의 방까지 모두 넘친 것을 본 그 날, 나는 다시는 엄마에게 수도관이 얼어도 세탁기 쓰자는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입고 나가야 할 바지가 아직도 빨랫감 바구니에 담겨 있는 것을 보는 일은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항상 겪던 일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그냥 눈 감고 한 번만 세탁기 쓰면 안 돼?'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나 엄마의 대답은 항상 'NO'였다.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다 같이 사는 아파트니까, 지킬 건 지켜야지.


   그래, 지킬 건 지켜야지. 나는 우리 집 거실로 밀려들어오는 거대한 땟국물의 홍수를 상상해보았다. 그리 검지는 않지만 회백색의 탁하고 가끔씩 거품이 떠있는 그런 물. 그것은 거실의 카펫과 탁자, 소파를 적시고 다른 방들로 흘러들어 갈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걸려 있던 수도관 동파 피해 사진 속 이웃 아줌마는 밀대 같은 것으로 계속 물을 퍼내고 있었다. 지난해 비가 많이 와서 홍수 피해가 났을 때, 뉴스에서 봤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물을 바가지로 퍼내고, 밀대로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바로 '내가 저러지 않아서 다행이다.'였다. 사람이 이렇게 이기적이다. 말로는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어쩌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있는 인간의 디폴트 값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학습할 수 있는 존재이다. 밀대로 물을 퍼내고 있는 사람 옆에서 오줌을 싸는 사회성 결여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질 수 있는 학습 방법 중에는 직접 비슷한 일을 당해보는 것이 가장 효과가 빠르다. 나는 예전에 살던 집이 떠올랐다. 집주인이 수리를 다 해서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장마가 올 때마다 우리는 물이 새는 집구석의 어딘가를 찾아서 그때마다 빗물을 받을 만한 바가지를 대야 했다. 아주 어릴 적 일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바가지의 물이 넘치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것을 주시하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때 부모님은 집주인이 아주 미웠을지도 모른다. 물이 새던 방은 바로 어렸던 나와 내 동생의 방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제대로 손빨래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옷감 구분하는 법도 함께. 청바지와 흰 티는 따로 빨아야 하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옷감이 존재해서 애를 먹었다. 나는 세제와 섬유 유연제는 빨랫감에 따라 다르게 넣어도 괜찮고, 제대로 헹구지 않으면 빨래를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엄마의 말씀을 새겨들으며 빨래를 한다. 양말을 빨 때는 한 쪽만 뒤집어서 던져두었던 과거를 반성한다. 나는 엊그제 먹었던 김치찌개 국물이 잘 빠지도록, 꼼꼼히 옷을 문지르고, 닦았다. 문득 영하의 날씨에 땀방울이 맺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땀방울들은 빨랫감들이 쏟아내는 물과 함께 화장실 수챗구멍 속으로 회오리를 그리며 빨려 들어간다. 겨울 빨래로 배운 배려는 그렇게 하수도관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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