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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Feb 24. 2021

브라질의 축구 영웅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펠레'를 보고 쓰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스포츠는 하나의 드라마와 같다. 90분 동안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축구 경기는 그저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스포츠이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삶과 같다. 야구팬들 역시 야구가 바로 삶의 축소판이라고 주장한다. 9회 말 2 아웃 상황에 역전 투런 홈런을 날려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는 짜릿함이나, 다 이긴 것만 같았던 경기를 한 순간의 방심으로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리는 야구를 팬들은 인생과 같다고 말한다. 어느 스포츠가 그렇지 않으랴.


많은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스포츠라는 드라마는 모두의 합이 중요하지만, 그만큼 스타도 필요하다. 그것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전 세계의 열성적인 스포츠 팬은 각자 응원하는 지역 구단이나 국가 대표팀에 '나'를 투영하고 모든 것을 바친다. 그 일례로 영국의 축구팀 중 하나인 선덜랜드 F.C. 의 팬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웃들, 심지어 교회에서까지 영향을 받아 평생 선덜랜드 팬이 된다. 이들은 팀이 아무리 순위가 낮아도, 심지어 3부 리그로 강등까지 당한다고 해도 팀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매주 경기를 챙겨보고 작은 펍에서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팀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역사를 이어간다.


이처럼 열성적인 영국인들의 축구 사랑을 보면 역시 축구는 영국에서 태어난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호나우두나 호나우지뉴, 네이마르의 조국인 브라질 역시 꽤나 축구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다. 특히 브라질이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에도 브라질 국민은 영국처럼 각자 응원하는 지역팀을 정해서 팬을 자처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브라질을 '축구의 나라'라고 부르고, 또 브라질 국민을 하나로 묶었던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이었는데, 두 대회의 우승컵을 모두 브라질 국가대표팀이 가져가게 되면서 브라질은 새로운 축구 강국으로 떠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오늘의 주인공 펠레가 있다.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 그리고 펠레


펠레는 흔히 말하는 육각형 선수, 다시 말해 축구선수가 갖춰야 하는 모든 능력에서 최고를 찍은 선수였다. 173cm라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탄력으로 키가 큰 상대 수비수와의 공중 경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타고난 힘과 스피드, 그리고 무시무시한 수준의 기술적 역량을 모두 뽐내며 수비진을 추풍낙엽으로 만드는 드리블을 구사했다. 게다가 상대 수비를 역으로 이용하여 타이밍을 깨고 공을 빼앗아서 패스를 뿌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탁월한 골 결정력으로 마무리까지 지을 줄 아는 선수는 펠레가 유일했다. 그래서 그가 현역으로 활동한 시기가 벌써 몇십 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모든 팬들과 스포츠 언론은 그를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꼽는다.



커리어도 화려하다. 그는 축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월드컵 3회 우승 선수이며, 클럽에서도 득점왕 11회, 리그 우승 10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라는 업적을 남겼다. 특히 펠레의 코파 아메리카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참가는 총 3번이었는데, 그중에서도 2회 우승과 1번의 트레블 기록은 반세기 넘도록 깨지지 않은 남미의 유일한 트레블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성과다.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불리는 메시와 호날두조차 월드컵 정상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것을 비교해보면 그의 위대함은 더욱 빛난다. 그래서 펠레의 은퇴 이후 많은 브라질 출신 축구 인재들이 활약했지만 그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하지만 펠레가 활동하던 당시 브라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좋지 않았다. 월드컵 2회 연속 우승은 브라질의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브라질 내 긍정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였으나, 1964년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이 이끄는 군부의 쿠데타 이후 다시 민간 대통령이 선출되는 1985년까지 브라질은 군부 독재에 신음했다. 이때의 영향으로 펠레는 2번째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지만 정권의 압력으로 다시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해야 했으며, 비록 우승에 성공했으나 엄청난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



독재 정권이 브라질을 지배하던 때, 펠레의 행보를 두고 많은 의견이 있었다. 먼저 1970년 칠레 월드컵을 준비할 때 대통령이었던 시우바 장군과 메디시 장군의 의회 폐쇄와 반정부 시위 탄압, 그리고 억압 정책을 좌시했다는 비판이 있다. 동시대 미국에서 무하마드 알리가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두고 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었던 것에 비해, 브라질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펠레는 정치는 모른다는 핑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독재 상태가 아니었던 미국과 달리 브라질 군부는 펠레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점과 펠레가 안겨준 3번의 월드컵 우승은 그가 할 수도 있었던 정치적 발언보다도 결과적으로는 브라질에게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줬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물론 펠레가 위험을 무릅쓰고 더 많은 발언을 했다면 브라질 군정은 보다 빨리 종식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업적과 국위선양을 까내리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국제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브라질이라는 국가를 한순간에 축구 강국으로 전 세계의 팬들에게 각인시킨 것도 펠레였고, 축구를 중심으로 모든 국민을 일치단결시킨 것도 그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1970년에 월드컵 우승을 하지 못했다면, 이미 좋지 않았던 브라질의 사회 분위기는 나락으로 빠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당장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한국 스포츠계 일대 사건이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 속에서, 만약 어떤 선수가 대한민국 최초 월드컵 2회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는데도 위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그의 모든 업적을 무조건 깔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은퇴 이후 펠레는 미국 프로축구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축구라는 스포츠를 알리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펠레 역시 인간이기에 세월을 피할 수 없었다. 2012년과 2015년에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로 그는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이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초반에 보조 장치를 잡고 비틀거리며 나타나 간신히 의자에 앉는 그의 모습은 많은 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축구를 사랑하는 브라질 사람이라면, 특히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라디오로 월드컵 우승의 소식을 직접 들었던 당시 브라질 국민이라면 더욱 안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설은 죽지 않고 다만 사람들의 입을 타고 불멸을 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가진 펠레는 마라도나처럼 언젠가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겠지만, 브라질 축구의 정신으로써 펠레는 사람들 곁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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