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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Mar 02. 2021

동부 힙합의 전설로 남은 남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비기: 할 말이 있어>를 보고 쓰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미국 힙합의 역사에서 가장 피 튀기는, 그리고 실제로 피를 봤던 두 라이벌은 단연 투팍 샤커와 노토리어스 B.I.G였다. 뉴욕에서 역사 상 최고의 힙합 앨범이었던 'Ready to die'를 통해 동부 힙합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노토리어스 B.I.G(이하 비기), 그리고 마찬가지로 LA에서 'All eyes on me'를 발표해 단숨에 서부 힙합의 왕좌에 올라선 투팍 샤커는 어쩌면 숙명의 라이벌이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죽음은 서로 지겹게 으르렁거리던 당시 동부와 서부의 갈등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왔지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할 수는 없었냐는 팬들의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투팍과 비기는 래퍼였음에도 사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로 힙합이라는 장르를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린 장본인이었고, 그들의 앨범은 오늘까지 불멸의 존재로 자리매김하여 전 세계 힙합 팬과 아티스트들에게 일종의 바이블로 남았기 때문이다.



호사가들은 흔히 "투팍은 가사를 잘 썼고, 비기는 랩을 잘했다"라고 말한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투팍은 당시 래퍼였지만 배우이기도, 또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하류층 흑인의 삶과 현실을 본인만의 철학을 담아 시적으로 작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으며 인권과 사회적 메시지와 같은 컨셔스한 랩 작사에도 역대 최고라 불렸다. 그러나 비기 역시 투팍과 비교했을 때 작사 능력은 크게 밀리지 않았다. 특히 범죄 관련 스토리텔링은 같은 뉴욕 출신이자 전설적인 래퍼 나스와 함께 최상위권에 뽑히는데, 앨범 'Ready to Die'의 수록곡인 'Gimme The Loot'와 'Warning'에서는 자신의 돈을 노리는 사람들과 범죄 행위를 1인 다역으로 랩 하는 비기를 들을 수 있다.




- 2Pac - Me Against the World 中 -


Can you picture my prophecy?

나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어?

Stress in the city, the cops is out for me

도시엔 스트레스가 가득, 경찰들은 나를 노리고

The projects is full of bullets

동네엔 총알들이 가득해

Though bodies is droppin' there ain't no stoppin' me

시체들이 쓰러지고 있지만 날 막을 순 없어

Constantly movin' while makin' millions

수백만 달러를 벌면서 계속 움직여

Witnessin' killings, leavin' dead bodies in abandoned buildings

살인을 목격해, 버려진 빌딩에 시체를 남겨두고 떠나

Can't reach the children, 'cause they're illin'

아이들에게 가닿지 못해, 그들은 미쳐있어

Addicted to killin' and the appeal from the cap peelin'

살인과 머리를 날려버리는 매력에 중독되어있지



- Notorious B.I.G - Gimme the Loot 中 -

...

I'm slamming niggaz like Shaquille, shit is real 

난 Shaquille처럼 적들을 내리꽂아, 이건 진짜

When it's time to eat a meal I rob and steal 

식사 시간이 돼도 강도짓을 하지

cause Mom Duke ain't giving me shit 

엄마가 내게 준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so for the bread and butter I leave niggaz in the gutter 

그래서 빵과 버터를 위해 난 사람들을 하수구에 처박아

Huh, word to mother, I'm dangerous 

Huh, 진실로, 난 위험한 녀석

Crazier than a bag of fucking Angel Dust 

환각제 한 봉지보다도 미친놈

When I bust my gat motherfuckers take dirt naps 

총을 쏘면 개자식들은 흙바닥에 쓰러져 잠들지

I'm all that and a dime sack, where the paper at?

난 그런 놈이자 바람둥이, 돈은 어디 갔지?

(*sample* "But he's sticking you, and taking all of your money..")

("하지만 그가 널 노리잖아, 니 돈까지 모두 뺏고 있잖아...")




오늘날까지 모든 미국의 게토 출신 래퍼들은 주로 마약과 범죄에 시달리고 있었던 자신의 동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가사에 담는 경향이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자신의 도시, 그중에서도 어느 거리 출신인지를 밝힘과 동시에 래퍼들은 미디어에서는 다루지 않는 어두운 주제에 대해서 말한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흑인을 체포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는 현실을 좌시할 수 없었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여과 없이 낱낱이 밝히기 위해서, 또 운동이나 공부 따위로는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동네를 떠나 성공하기 위해 가사를 썼다.



비기 역시 투팍의 가사 속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거리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마약을 팔고 랩을 하며 지냈다. 당시 미국으로 밀수입되던 코카인의 영향으로 거리에는 마약 중독자들이 넘쳐났고, 그만큼 마약을 팔던 소매상도 많았기에 비기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몰래 돈을 벌며 지냈다. 그러나 비기는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인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이웃의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다. 그는 방학 때마다 자메이카에서 클럽 DJ를 하고 있는 삼촌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고, 재즈를 연주하던 이웃의 도움으로 많은 재즈 음악과 컨트리, 그리고 기본적인 리듬을 익히기도 했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이런 유년 시절의 경험이 비기가 리듬을 타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17살 시절 프리스타일 랩을 하던 비기 (https://youtu.be/ufHZWt3xSZk)


실력적인 면을 따지자면 비기의 랩은 손색이 없다. 무겁고 허스키한 음색, 가사 속 라임 배치, 그리고 리듬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가사 설계 능력까지 모두 최정상급에 위치한 그의 랩은 위에 나온 영상 속 프리스타일 배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가사를 종이에 먼저 적은 뒤에 그것을 보고 녹음하는 다른 래퍼들과는 달리, 그는 가사를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바로 외운 후에 그대로 녹음했다고 한다. 또, 그의 앨범 수록곡을 들어보면 비트가 그렇게 빠르지도, 현란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조금 느리다고 느껴진다. 그런데도 생전에 발표한 모든 앨범을 최고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그의 발성에 있는데, 악센트를 최대한 강조하는 발성법 덕분에 비기는 엇박 구성이나 빠른 랩을 하지 않고도 듣는 사람이 느끼는 단어의 타격감과 강력함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음반이 아닌 라이브가 더 좋은 래퍼라고 평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의 빛나는 재능은 마치 축구의 메시와 호날두가 10년이 넘게 세계 최고로 군림한 것처럼, 투팍과 함께 한동한 힙합계를 평정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LA에서 두 번째 앨범인 'Life after Death'를 녹음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괴한의 총격으로 인해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투팍이 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잃은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았던 데다 몇 해전에는 커트 코베인도 자살로 요절했던 상황이었기에, 젊은 아티스트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팬들은 많은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담으로 같은 회사에 있었던 퍼프 대디는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아티스트였던 비기의 죽음 이후 그를 추모하는 곡을 발표했는데, 이게 바로 오늘날까지 명곡이라고 불리는 'I'll Be Missing You'다. 


Puff Daddy - I'll Be Missing You (https://youtu.be/NKMtZm2YuBE)




서로 살벌한 내용의 디스곡을 주고받으며 미국 힙합 씬에서 가장 치열했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두 사람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래퍼들은 이곳저곳에서 등장하여 새로운 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커리어 내내 붐뱁 사운드를 지향하고, Run-DMC 같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가사 배치를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선보인 대표적인 래퍼가 바로 비기였기에 뒤이어 나오는 래퍼들은 활동 기간 내내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과거보다 힙합이라는 음악 산업이 거대해지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새로운 신인 래퍼들이 대중들에게 자신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투팍이나 비기만큼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아티스트는 등장할 수 있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기 마련. 팬들은 다만 씬을 뒤집을 새로운 명반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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