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건축물
내 인생의 걸작
직접 만나본 세계 속 걸작을 소개합니다.
마주친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감동을 준 예술작품, 건축물, 자연의 선물을 정리해 봅니다.
이런 걸작을 만날 수 있어 인생은 풍요롭습니다.
첫 번째 걸작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성 가족 성당’이다. 올 초 이 성당을 만난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단언컨대, 이 성당을 만나는 즐거움만으로도 스페인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방문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유럽행 비행기삯과 여행비용을 감내하고서도.
널리 알려진 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 짓기 시작해서 아직도 짓고 있는 건물이다. 140년이 넘도록 짓고 있다. 가우디는 성당 건축 현장에서 숙식하며 신앙의 힘으로 평생을 바쳐 일했고, 죽어서는 지하 성당 묘원에 묻혀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원래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중도에 팬데믹의 여파로 공사가 지연되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성당 건축 비용을 관광객의 입장료로 감당하는데 팬데믹 때 관광객을 받을 수 없어 생긴 일이다. 스페인 내전 때 8년 정도 공사가 멈춘 것도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첨탑 중 예수 그리스도의 첨탑 하나만 빼고 모든 첨탑이 완성된 상태였다. 열 두 사도의 첨탑 중에서도 도드라진 4 복음서의 작가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첨탑이 완성되어 웅장함이 더해져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 말마따나, 완성되기 전에 방문한 성당은 다시는 못 볼 유일한 성당의 모습이 된다. 조금씩 지어지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성당의 모습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첨탑이 지어지고 있는 상태의 성당은 내가 본 그 당시의 유일한 존재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묘한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아주 적은 몫이지만 입장료를 내서 위대한 작품 건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니, 뿌듯한 감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십자가 형태의 성당 좌우에는 예수의 일생 중 탄생과 수난을 다룬 파사드가 각각 마련되어 있다.
탄생의 파사드는 전통적인 양식의 조각으로 성가족과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독교도들이라면 금방 어떤 장면인지 이해할 수 있는, 수태고지를 비롯한 익숙한 성경 속 탄생 일화를 확인할 수 있다. 성상들을 둘러싼 꾸밈이 인공물의 형태를 띠지 않고 자연의 부드러움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아주 새롭다. 성상들은 크게 세 개의 박공(바깥으로 튀어나온 삼각형의 벽면) 안에 있는데, 가운데 박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봉헌되었고 주제는 사랑이다. 왼편 박공은 성 요셉과 연관되며 주제는 희망을 상징한다. 오른편 박공은 마리아에게 봉헌되었고 믿음을 강조한다. 아들-양부-성모의 성가정으로 이어지는 중앙-왼쪽-오른쪽 순서는 성호 긋는 순서와 동일하고, 역순인 믿음-희망-사랑은 기독교의 세 가지 덕행에 부합한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떠올리게 된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참고: [신의 건축가로 이 땅에 온 인간 가우디를 만나다](권혁상, 제인앤제이제이, 2023), p 185.
수난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 뒤에 만들어져서, 그 조각의 양식이 매우 현대적이다. 가우디는 대략적인 스케치를 그리고, “두려움과 슬픈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명암법이나 볼륨감을 아낌없이 사용해야 한다. 피투성이가 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관한 생각만 줄 수 있다면, 아치를 깨고 기둥을 자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겨두어, 후대 조각가가 참고할 지침을 주었다.
참고: 위의 책, p193.
지침에 따라 수난의 파사드의 조각을 완성한 사람은 바르셀로나 출신 주셉 마리아 수비라치이다. 1986년에 시작하여 조각이 완성된 이후에도 건축이 지속되어 2018년에야 마무리되었다. 서남쪽을 향하고 있는 수난의 파사드는 노을빛을 받으면 음영이 짙어져 수난의 슬픔을 더 깊게 느끼게 한다.
동쪽의 빛을 받는 쪽에 건축 중인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미완성이다. 후에 완공되면 사람들이 이곳으로 출입하며 예수의 재림과 영광을 먼저 만나게 될 예정이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감동은 내부에서 더 깊어진다. 인공물에서 숲의 따쓰함을 만끽하게 한 설계와 시공은 실로 놀라움 그 자체이다. 기둥이 나무처럼 이어지고 나무 끝 가지들이 천정을 지탱하고 있다. “성당 내부는 숲 같을 것이다. 신랑(현관에서 제단까지 이르는 중앙의 긴 통로)은 영광, 희생, 수난을 나타내는 종려나무가 있을 것이고, 측랑은 영광과 지혜의 나무 월계수가 될 것이다”라고 가우디가 말한 바 그대로다. 모양만 따온 것이 아니라 심미적 구조도 따 왔다. 가우디는 자연계에서 인간과 나무의 가장 이상적인 비율을 1:7.5라고 생각하며 이를 적용했다. 예를 들어 영광의 파사드에서 후진까지의 폭 90m,, 탄생의 파사드에서 수난의 파사드까지 너비 60m, 측랑의 높이 30m, 신랑의 높이 45m, 종탑의 높이 120m, 복음사가 탑의 높이 135m, 예수 그리스도 탑의 높이 172.5m로 모두 7.5m 모듈의 배수가 된다.
참고: 앞의 책, 201-202
성당의 창문들은 꽃과 열매처럼 곳곳에 맺혀 있고 자연스레 햇빛을 끌어들이며 성당을 밝힌다.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광경을 보고 하는 것 같았다. 특히 겨울의 낮아진 햇빛 각도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타고 들어와 하얀 벽면을 물들이는 꽃무늬의 아름다움엔 넋을 잃게 된다. 가능하면 성당 내부는 겨울 석양 무렵에 방문하여 관람해야 하겠다.
자연이 아닌 것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신의 건물인 성당은 신의 가장 위대한 선물인 자연을 닮아야 한다는 가우디의 건축 이념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 어떤 건축물에서도 이런 감성을 받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첨탑이 완성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최종 높이는 172.5m가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된다. 하지만 그 높이가 인간의 자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가우디는 성당을 주변 몬주익 산의 높이 173m보다 0.5m 낮게 설계했다. 신이 만드신 자연보다 높은 성당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이 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겸손의 표시로, 바벨탑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한 가우디의 선택이다. 애초에 이 성당은 바르셀로나의 가난한 지역에 하나님의 성스러움이 깃들기 바라며 지어진 소외된 자들의 소망으로 지어진 것이기도 하다.
스페인을 한 보름 정도 여행했고 모든 곳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 곳은 바로 이곳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성당이 완성되면 다시 한번 방문할 것이다. 그게 걸작에 대한 예우일 듯하다.
- 성당의 건축 기술과 관련 이야기는 아래 다큐멘터리가 유용하다.
https://youtu.be/3Z5xSlc2mHo?si=YWSu9igo28qlHgG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