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제, 푸른역사, 2024
최근 한 10년 새에 소현세자의 영웅 신화가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소설 [소현세자]를 비롯해서 최근 영화 [올빼미]에 이르기까지, 소현세자가 인조의 독살로 인해 요절하여 조선의 자생적 근대화가 좌절되었다는 세계관이 대세를 이룬다.
이 책은 과연 그 영웅 신화가 적절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차분히 소현세자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 저자는 소현세자가 호란의 참화 속에서 안타깝고 아까운 삶을 산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인지하는 식의 영웅은 아니라고, 사료에 대한 꼼꼼한 연구를 통해 결론 내리고 있다.
세간의 평을 비판하고 있는 견해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소현세자의 삶을 균형 있게 살피기 위해 읽어봐야 할 좋은 책이라 평가한다.
먼저, 소현세자를 재평가하여 근대화의 시초를 열 수 있는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일인 학자들의 관심은 조선이 스스로 나라를 개혁하여 발전시킬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조선의 멸망과 일제의 강점이 당위성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비판할 때는 일제 강점의 당위와 겹치게 되는, 지나친 비난이 없는지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식민 역사를 지닌 우리의 아픔이다. 소현세자가 영웅이 될수록 조선이 무능한 왕조가 되고 일제의 근대화는 당연시된다.
그런 문제의식 속에 소현세자에 대한 세간의 평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방식으로 그의 삶이 상당히 과장되어 전해지고 있음을 실증했다.
- 소현세자는 외교관었는가.
저자에 따르면 인질이라는 세자의 입지 상 외교관의 역할을 할 수 없었고, 실제 [심양일기]에 나타난 발언들도 거의 조선 조정에 판단을 유보하는 상황임이 증명된다.
- 소현세자는 포로 해방과 농장 경영을 통해 지도자의 면모를 보였는가.
농장을 경영하게 된 것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으라는 청의 요청에 의한 것이고, 그 인력도 속환하여 사용하라는 청의 지시가 먼저 있었다. 소현세자는 그 지시에 따랐고 농장의 성과도 실제 심양궁의 살림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했다.
- 소현세자는 조선 전통의 세계관을 넘어 인식의 전환을 했는가.
실제로 청에서 소현세자가 행한 일과 발언들을 볼 때, 명에 대한 사대를 버리지 않았으며 서구 문명을 적극 받아들이려는 태도도 보이지 않았고 실제 서구 문물을 만날 시간도 많지 않았다.
- 아담 샬을 만나 새로운 세계에 눈 뜨고 변화했는가.
아담 샬의 회고록 자체가 자신의 선교 행위를 인정받으려는 과장된 서술이 많은 책이라, 이 책에 서술된 소현세자와의 만남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소현세자를 조선의 왕이라고 과장되이 소개하고 있고, 자신에게 여러 도움을 청했다는 대목은 다른 책에서는 오히려 반대되는 정황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사실 소현이 아니더라도 아담 샬이 보여주었다는 여러 자료들은 이미 조선에 유통되거나 소개되어 있었다.
- 소현세자는 독살되었는가.
인조실록에 독살을 떠올리게 하는 기록이 있어 널리 퍼진 가설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보기 어렵다. 실록 등의 서술을 살펴볼 때, 청으로 떠나기 전부터 병약했던 소현세자가 타지 생활에서 건강이 악화되고 오랜 귀국 과정에서 지병으로 보이는 당뇨가 심각해져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독살처럼 보이는 시신도 심한 당뇨 환자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2024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채널인 <사인의 추억>에서 법의학자 유성호가 제1형 당뇨가 의심된다는 것도 작은 근거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렇게 소현세자의 영웅성을 걷어내고 있다. 그리하여 “역사적 격변기를 살아왔던 당대의 ‘인간’ 소현세자를 마주 보기 위한 시도”를 진행했다.
역사는 역시 해석의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독서였다.
이 브런치 매거진 ‘행복한 책읽기’에서 처음 소개한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의 입장과는 대척점에 있는 책이어서 더 그렇게 이해했다.
소현세자의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