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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그 비밀 – 마오에서 바흐까지]

주샤오메이 / 배성욱, 마크로폴로, 2024.

by 형산

중국이 공산화되던 1949년 태어난 주샤오메이(朱晓玫).


그의 집에는 당시 아주 드물었던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음악선생님이셨던 어머니가 넉넉한 친정의 힘으로 들여놓은 것이었는데,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서양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중학에 갈 나이 베이징중앙음악학원에 가는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아직은 공산 교조주의가 중국인의 삶 구석까지 침입하기 전이라, 그의 삶은 가족과 좋은 선생님, 지지자들과 함께 음악가로 성장하며 평안했다.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의 처참한 실패 후 닥쳐온 실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주도한 문화대혁명으로, 그의 평화는 산산이 깨진다. 브루조아 지식인이라며, 홍위병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하며 스승들이 청소부로 전락하고, 전재산을 음악학원에 기부하며 학생을 돌보던 ‘마마 정’ 할아버지가 자본주의의 노예라는 오명 속에 목 매 세상을 등졌다. 주샤오메이 또한 몽골 부근의 수용소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거나, 혁명의 부속물이 되어버린 음악 생활에 만족해야 했다. 어린 주 역시 문화대혁명의 열기에 휩싸여 마오의 뜻을 따라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처절한 침몰의 시기였다.


그런 바닥의 삶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피아노에 대한 열망은 지워지지 않아, 그는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어떻게든 피아노를 연주하는 삶을 이어내고야 만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있던 피아노를 수용소로 가지고 오는 이야기는 그의 음악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케 한다. 그의 의지 덕인지 하늘이 도와 그 험난한 수용소 생활 중에도 피아노는 그의 곁에 있어 주었다. 특히 바흐의 정교하고 정갈하고 단아한 음악은 그에게 구원의 빛을 주었다.


마오의 죽음으로 문화대혁명이 저물고,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자, 그는 홍콩으로 탈출한다. 제대로 피아노를 배우고 연주하겠다는 열망은, 허송해버린 10년의 젊음을 새로운 도전으로 채울 힘이 되었다.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미국에서 간신히 뉴잉글랜드 음악대학을 다니다가, 파리에서 국립음악원에서 배우게 되기까지, 그는 자신의 의지로, 말도 안 되는 삶의 가능성을 실제로 바꾸어내며 피아니스트로 성장해갔다. 그 과정 모두가 삶의 경이 그 자체이다. 이 여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마오에서 바흐까지'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그는 그 안에서 음악의 가장 높은 경지를 발견했고, 고향 중국의 노자 사상이 발현되는 현장을 만났다. 그가 살아낸 역경과 도전과 진정한 승리가 담긴 연주는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힘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의 이야기가 바로 이 자서전, [강과 그 비밀 – 마오에서 바흐까지]에, 생생한 주샤오메이의 필체로 적혀 있다. 읽는 동안 강인한 삶의 의지와 예술혼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읽으니 더 감동적이다. 사람의 의지는 반드시 하늘이 알아주는 법이다.



(아래 링크는 주샤오메이가 바흐가 생전에 활동하고 묻힌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세계 최초로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실황.)


https://youtu.be/IQK88vL6xVA?si=kljW7MzpXObAa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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