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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시집, [그라시재라]

서남전라도 서사시, 이소노미아 출판사, 2022

by 형산

며칠 전 스승님을 뵈었는데,

사투리로 쓰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셨다.

당최 어느 나라 시인들이 표준어로 시를 쓰느냐며

사투리어야 사람의 숨이 제대로 살아있는 운율 맞는 시를 쓸 수 있는 법이라 하셨다.

일리 있는 말씀이다.

사는 자연, 문화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그 말은 그 환경에 딱 맞는 틀일 테니

그 말로 시를 써야 '읽을 수 있는' 시가 되겠다 동의했다.

그런 관점에서 오래전이지만, 참 살갑게 읽은 시집이 떠올랐다.

서남전라도(목포를 떠올리면 되겠다) 말로 쓴 조정 시인의 시집 [그라시재라].

제목 자체가 '그렇지요'를 서남전라도 사투리로 쓴 것이다.

집안은 평양이지만, 목포 처자를 얻어 서남전라도를 30년 정도 드나들었고

하의도 출신으로 서남전라도 사투리를 아주 세게 쓰시는 장모님께 훈련(?) 받은 덕에

이 시집을 술술 읽어낼 수 있었다.

(아마 다른 지역 사람들이라면 읽는 데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래서 시집 뒤편에 서남전라도 사투리 사전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시집은 근현대사의 곡절을 살아낸 서남전라도 지역 여성들의 한 서린 삶을 다루고 있다.

고된 시집살이, 남편의 폭력, 가난, 전쟁으로 인한 말도 못 할 희생을 견뎌낸 여성들의 서사이다.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삶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딸이 빨갱이로 몰려 죽어가면서 엄마를 부르는데도

너무 겁이 나서 돌아보지도 못했다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도 속에서 숨을 들이켜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기구한 삶을 견디고 이기고 살아낸 여인들의 삶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곳 말로 "징하게 이쁘요!"


서시처럼 제목도 없이 시집 맨 앞에 적힌 시가 절창이다.

이 시로 책 소개를 마무리한다.


나는 꽃 중에 찔레꽃이 질로 좋아라
우리 친정 앞 또랑 너매 찔레 덤불이
오월이면 꽃이 만발해가꼬
거울 가튼 물에 흑하니 비친단 말이요
으치께 이삔가 물 흔들리깜시
빨래허든 손 놓고 앙거서
꽃기림자를 한정없이 보고 있었당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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