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땅을 밟기까지
결혼 대신 야반도주라는 책이 있다.
나는 한국나이 스물아홉, 결혼 대신 교육공무원 유학휴직을 통해 약 1년 간의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로 했다.
11개월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유학휴직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는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어학연수 휴직이다. 우리 교육청에서 유학휴직을 쓰려면 제2외국어가 아닌 경우 영어공인성적 점수를 필요로 하는데 걔 중에는 아이엘츠도 있었다. 학위 취득인 전자의 경우 아이엘츠가 6.5 이상이어야 했고 후자는 5.5였다. 일단은 이게 되고 나서 볼 일이다 생각하여 3개월 정도 후에 아이엘츠 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퇴근 후 저녁 시간은 수업 준비와 아이엘츠 공부만으로 거의 보냈으나 그것도 잠시 공부량은 점점 적어져만 갔다.
막상 시험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동시에 내 고민도 말끔히 해결되었다.
내가 유학휴직을 다녀오고 싶은 기간은 1년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1년 석사 과정은 드물다. 게다가 교육 관련이어야 해서 적당한 과정 찾는 것도 힘들었고 몰랐는데 대학 학점이 얼마 이상은 되어야 한단다. 대학 시절 학점 관리 안 한걸 이렇게 후회하게 될지는 몰랐지..
그런데 아이엘츠 점수가 6.0이였다. 나는 후자만을 충족시키는 점수였던 것이다. 덕분에(?) 내 고민은 말끔히 사라졌다. 외려 감사했다. 시험 죽 쒔다 생각했는데.. 목표로 한 6.5에 비하면 턱없이 낮지만 생각보다 점수가 높게 나온 것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의 유학 목적은 어학연수여야 했다.
영어 성적이 되었으니 이제 세 명에게 컨펌을 받을 차례였다.
먼저 교장, 교감선생님. 유학휴직은 기본적으로 청원휴직이기 때문에 관리자의 승인이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두 분 모두 흔쾌히 허락하였다.
다음으로 교육청에 전화를 해보았다. 어학연수로 휴직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처음엔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어학연수로 유학휴직을 다녀온 선생님은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례가 없을 뿐 가능하다는 답변을 다시 받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엄마.. 나는 일단 학교에서 허가가 돼야 한다며 못 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두었다. 뭐 사실이니까ㅎㅎ
이후로는 서류와의 싸움이였다.
일단 영국으로부터 받은 어학원 입학허가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영국 내의 행정속도+한국으로 오기까지의 시간이 있다보니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또 그냥 제출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공적인 문서라는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포스티유이다. 이걸 또 내가 직접 영국까지 가서 받을 수 없으니 대행사에 맡겨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돈도 굉장히 많이 든다. 이 모든 과정은 유학원의 도움을 받았는데 답변도 굉장히 빠르고 이 쪽으로 무지한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도움을 받았다. 물론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인터넷에 정보가 굉장히 잘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은 건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불안이 너무 클 것 같아서였고 결론적으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내가 유학원에 따로 지불하는 돈은 없고 대학으로부터 커미션을 받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럼 왜 영국인가.
일단 초등교사로서 어학연수로 갈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모국어가 영어인 나라여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목으로 영어가 있으니 이것도 가능한 일이고 중등교사는 영어교사를 제외하면 제2외국어를 교사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가는 것만 가능하다. 그 외 공무원은 모두 영어권 국가로 어학연수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어학연수 하면 대표적인 영어권 국가 외에도 필리핀, 몰타 등 학비나 생활비가 저렴한 나라로도 많이 가지만 나의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갈 수 있는 나라를 쭉 생각해보니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아일랜드, 남아공이 내 머리로는 유일했다.
일단 남아공으로 어학연수를 간다는 사람은 듣도 보도 못했고 나부터 자신이 없기에 제외. 미국은 물가가 넘사벽이라 탈락. 뉴질랜드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끌리기도 했으나 너무 시골일 것 같아 패스.
캐나다나 호주는 어학연수를 실제로 아주 많이 가는 곳이라 나도 고민이 많았는데 각기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먼저 뚜벅이인 내게 캐나다는 너무 광활하다는 것. 그리고 호주는 잠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한국인이 너무 많아 어학연수로 비추한다는 의견도 많았고 무엇보다 동떨어진 대륙이라 여행지로서 메리트가 없었다. 그래서 유럽으로 가자 결심했고 아일랜드가 물가도 저렴하다니 처음엔 거의 여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아일랜드 수도인 더블린 자체가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하여 최종적으로 영국을 골랐다.
런던은 아니였다. 런던은 집값으로 최고라는 뉴욕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렌트비가 비싸다.
런던의 어학원은 어학연수생에겐 기숙사를 잘 제공하지 않는데 그렇게 되면 홈스테이를 하거나 렌트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홈스테이는 도무지 불편할 것 같아 안되겠고 렌트를 하자니 집 알아보는 것부터 해서 고생길이 훤했다.. 딱 봐도 비싼 돈에 비해 집 꼴이 영 별로였다. 괜찮은 집 구하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꽤 긴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영국은 나의 미천한 요리 실력을 업그레이드 시키기에 아주 좋은 곳이였다. 외식 물가가 장난이 아닌데 만일 매 끼를 사 먹는다면 거덜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에 비해 마트 물가는 그리 비싸지 않다. 이제 요리는 생존의 영역이었다.
그리하여 부엌을 사용할 수 있고 개인 화장실이 딸린 1인 기숙사. 이것이 내가 어학원을 고르는 데 가장 중요한 요것이었다. 그런데 유학원에서 추천해준 곳이 저렴한 학비에 1인 기숙사라는 점이 내 조건에 딱 맞아 떨어졌다. 국립 대학의 부설 어학원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 조건을 만족하는 대학이 많지 않다.
그렇게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영국 여느 시골 마을에 있는 어학원을 가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