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매일 일기를 쓰는 어린이었다
한국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경험이 있다. 바로 ‘일기 쓰기’.
미루고 미루다 일기장 내기 전 날 20분 만에 일주일을 재구성하여 작문으로 승화하는 순발력.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날의 날씨가 기억하는 날씨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치밀함.
나름 잘 썼다고 뿌듯해했던 글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지적하는 선생님의 빨간 밑줄 투성이로 돌아왔을 때의 실망.
쓰고 싶어서, 쓰고 싶은 순간에 쓰는 글이 아니라 누가 시켜서 주기적으로 써야 했던 글이었지만 별다른 일 없는 하루를 끄적일 구실이기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일기장’이 사라졌다. 미주알고주알 적은 소소한 이야기에 다정하게 한두 마디 써주시는 선생님이 없음은 물론이고, 사춘기 때 마음을 터놓고 싶어 사둔 일기장은 몇 주 쓰다 결국 옛날 교과서들 사이에 묻히곤 했다.
글쓰기는 점점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일이 아니라 딱딱하고 진지한 일이 됐다. 머릿속에 스쳐가는 좀 바보 같지만 재밌다고 생각했던 아이디어라던지, 친구랑 밤새 토론하다 피어난 나만의 의견들이 기록될 기회들이 사라진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나가면 글쓰기는 더 중요하고 어려운 대상이 된다. 많은 이들이 겪는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자소서’다. 말 그대로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라는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어려운 걸까.
사실 자기소개서는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랑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내 이야기를 내 문체로 풀어내야 한다.
가장 친한 친구도 모를 사적인 내용일 수 있다.
독자는 나를 알면서도 모르는 어른이다.
문법이나 맞춤법이 틀리면 안 된다.
초등학교 때 쓴 일기만 다 합해도 수백 장은 될 텐데 자소서를 쓰는 건 왜 이렇게 어색할까? 논문이나 업무 이메일을 술술 쓸 줄 알면서 막상 내 이야기를 쓰는 건 왜 이상한 일인가.
우리는 어쩌다 글 못쓰는 어른이 되었을까
나만 아는 글솜씨를 나무라며, 하지만 딱히 처방전을 모색하진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날 작심삽십일이라는 프로젝트를 접하게 된 친구가 함께 사람을 모아 글을 써보자고 권유했다.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는 프로젝트인데 “글을 쓰는 근육”을 기르자는 취지의 모임이었다. 이 구성에 영감을 받아 또래 지인 5명을 모아 오픈 카톡방을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형식도 주제도 자유다. 유일한 규칙은 정해진 시간에 일주일에 두 번 글을 올릴 것.
나의 첫 아무 글 쓰기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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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은는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