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레스트 Feb 05. 2023

나도 조신한 사모가 되고 싶다

사모 에세이

'사모'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긴 머리, 하늘하늘한 원피스, 요리를 잘하며, 미소가 아름다운, '조신함'이라는 동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저는 그런 사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 말은 하던 저는 어른들과 부딪히기 일쑤였습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데요?", "굳이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요?", "차라리 그럴 바엔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의 거침없는 질문 공격에 어른들은 저와 말 섞는 걸 부담스러워하셨고, 심지어 교회 목사님도 저와의 심방을 미루신 적도 몇 번 있답니다


외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긴 머리는 어울리지 않아 짧은 커트를 하고 다녔고, 치마보단 청바지를 더 좋아했습니다. '시켜 먹는 요리가 제일 맛있다!'라고 외치던 저로서는 교회 수련회 때마다 청년들 밥을 해주시던 사모님의 헌신이 굉장하게 느껴졌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저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냐고 물어보면 10명 중의 9명은 '당차다', '당돌하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그랬던 저였기에 사모가 가져야 하는 '조신한 이미지'는 부담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차라리 입을 꾹 닫고 있으면 모를까 여러 사람들과 교제하다 보면 튀어나오는 저의 본성은 저를 꽤 곤란하게 만들었죠. 주일 사역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의 눈치도 많이 봤고, 혹시 또 실수한 건 없을까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해에 사역하고 있던 교회의 담임 사모님은 그동안 보아왔던 사모님들과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왕년에 컴퓨터 좀 만져보셨던 분이라 환갑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교회의 모든 문서를 사모님이 혼자 다 만드셨고, 설득의 재주가 있어 목사님이 중재하기 힘든 부분엔 남다른 카리스마를 보이셨습니다. 요리 재주가 없다며 저희 부부와 함께 외식도 많이 했고, 무엇보다 털털하고 소탈하신 사모님의 성격을 성도님들도 좋아하셨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남편을 내조하기보단 목사님이 하지 못하는 일을 손수 맡으시며 함께 교회를 아름답게 가꾸어가시는 분이셨죠.


저는 그 사모님을 통해 '전형적인' 사모의 이미지는 사실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사모님께서 조신하게 남편 뒤에만 있던 분이셨다면 사모님이 하셨던 일은 오로지 목사님이 다 감당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역에 힘든 목사님은 더 많은 일을 감당할 수밖에 없고, 지친 몸과 마음은 목사님의 사역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그 사모님의 개성달란트를 다 알고 계셨고, 필요에 맞게 교회에 쓰임 받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저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게 아닐까요?


저도 현재 남편이 다 하지 못하는 역할을 감당하며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설교를 하면 저는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합니다. 남편이 전도사로서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면 저는 청년들의 언니, 누나가 되어 함께 놉니다. 남편은 조용하고 온유한 전도사, 저는 활발하고 붙임성 있는 사모로 함께 동역하는 것이죠.


비록 조신한 사모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나다운' 사모는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단점을 지나치게 비호하는 나다움이 아니라, 오히려 나다워서 생긴 여유로움으로 다른 이들을 품을 수 있는 그런 나다움 말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