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바깥의 문학 이야기
올해는 윤동주 서거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윤동주가 유학 생활을 했던 일본 도시샤대학교에서는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875년 설립된 도시샤대가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면서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 윤동주. 그와 그의 시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작 「별 헤는 밤」은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매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우리말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고 깨끗한 말들만을 골라서 그만큼이나 맑고 순수한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가을밤의 별들을 바라보며 '가을, 하늘, 밤, 별, 추억, 사랑, 노루, 아이', 그리고 동경하는 시인들의 이름과 '어머니'와 같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그리움과 애틋함을 느끼고, 이를 통해 외로운 삶에 위안도 얻고 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은 바라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 없다.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이상을 지향하던 화자의 시선은 지상으로 하강하여 현실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언덕 위에 써 내린 자신의 이름을 보면서 화자는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끼며 흙으로 이름을 덮어버린다. 이는 꿈을 위해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떠나며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던 현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이름이 부정되는 현실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부끄러움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별 헤는 밤」은 슬픔에 빠진 채 무력한 모습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언젠가는 다시 봄이 오듯이, 이름이 묻힌 언덕에서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라고 다짐과 같은 예언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화자는 시련, 고난, 부끄러움, 무력감, 좌절감을 극복코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런 의지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 시는 가을밤 감성을 노래한 것을 넘어서 신념과 양심을 지키고 키워나가는 젊은 지식인의 모습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완성된다.
윤동주가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시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냈다는 점, 그리고 시에서 다짐한 바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시인이 되고자 유학을 떠났던 윤동주는 끝내 독립운동가로서 생을 마치게 된다.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 그에 대한 재판의 판결문을 보면 윤동주가 민족의 독립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성 향상을 이야기했다는 점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시를 통해 스스로 다짐했던 삶의 자세를 인생의 가장 큰 위기 속에서 완성한 것이다.
윤동주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윤동주의 시를 읽고 그의 삶을 반추해 보면 존경과 애잔함이 생긴다. 만 28세의 청년으로 남은 그보다 이제 더 나이를 먹은 입장에서 청년 윤동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애달파진다.
그가 보여준 순수한 시어, 진솔한 정서, 부정적 현실 앞에서 양심을 지키고 그 의지를 실천한 삶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위로를 받고 더 나아가서는 치유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이 아름답고 애틋한 청년을 우리가 위로해 줄 수는 없을까.
만일 어딘가에 영혼이 존재하여 우리의 마음이 그에게 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를 위로할 수 있을까? 그가 보여준 정신과 삶의 자세를 받아들여 그것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디선가 보고 있을 윤동주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윤동주의 시와 삶이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 되어 지켜진다면 그의 영혼에 안식과 자긍심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많이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윤동주가 더욱 생각이 난다. 윤동주가 남긴 '부끄러움'의 정서를 스스로에게 비춰보는 것, 그리고 언젠가 맞이할 자랑스러운 봄날을 위해 이 시련의 계절을 견뎌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서거 80주년을 맞이한 윤동주에 대한 진정한 추모이자 위로가 되지 않을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