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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Jan 30. 2023

세계를 지배하는 혼돈과 다정함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라디오 작가 룰루 밀러의 에세이이다. 과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 세상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허무함에 빠진 주인공이 데비이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분명하고 혼돈 없는 인생을 탐구하다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올해 유튜버 겨울서점의 추천으로 입소문을 타고는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으며, 얼마 전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도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마주하는 혼돈


아버지는 쌍안경 뒤에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씩 웃는 얼굴로 내게 돌아서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보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이야기는 아버지로부터 인생의 거대한 비밀을 알아낸 저자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쇼미더머니에서 준우승한 래퍼가 읖조렸듯, 우리는 항상 아버지에게 정답을 알려 달라고 요구하고는 한다. 그러나 일곱 살 소녀에게 과학자 아버지는 벌써부터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고야 만다. 인생에 정답이나 의미 같은 것, 신이나 운명이나 계획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비밀 말이다. 사실 너, 그리고 우리 인간은 중요하지 않단다. 그러니 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단다.


그 말은 어쩌면 소녀에게는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비밀이었을지 모른다. 막 자라나는 어린 영혼에게는 어쩌면 너를 지켜보는 하느님 아버지가 있다는 거짓말이 좀 더 달콤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하기 그지없는 과학자 아버지는 그녀에게 냉혹하고 자유로운 세상의 진리를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인생에 정답이 있다는 사상의 기원은 꽤 오래 전으로 올라간다. 일찍이 플라톤은 우리가 모두 이상적인 세계를 닮아가려 노력하는 인간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수는 우리에게 성자와 성모와 성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으로까지 들어와 인생이 하나의 레이스라는 둥, 인생이란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둥의 도그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인생에 정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인생의 행복이 나의 덕이요, 불행이 나의 탓이라면, 세상이 온통 나 하나만을 지켜보고 있다면 얼마나 사는 것이 심플할까?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의 혼돈 가설을 반박하는 사례를 찾기 위해 애쓴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관계를 망쳐버렸다는 생각이 들때쯤 그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분류학자로 전세계 희귀 어류의 이름을 지으며 명성을 얻어가던 그는 어느날 자연재해로 인해 자신의 물고기 표본들이 모두 뒤섞이는 사건을 겪는다. 30년간의 연구 인생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이 분류학자는 저자를 감동시킬 만한 행동을 즉각적으로 해낸다. 흩어진 이름표를 널브러진 물고기들의 살갖에 그대로 바늘로 꿰어 넣은 것이다. 절망에 굴하지 않고 또다른 해결책을 찾아내는 힘. 그 행동은 혼돈에서 허우적대는 작가를 감동시켰다. 불행에 굴하지 않고 곧바로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성공과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지도 몰랐다.


확신과 자기 기만


그러나 조던에게는 확실한 의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조던의 인생을 탐구하다 그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확신과 자기 기만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조던의 에세이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문장은 기만일 수 밖에 없다. 조던은 과학자로써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의지만 충만하다면 내 인생의 운명은 내가 좌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던의 특성을 탐구하던 저자는 책의 중반부에서 이러한 긍정적 자기기만이 세속적 성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매력적이고, 남들을 더 잘 도우며, 더 지적이고, 우연한 사건들을 가능한 정도보다 훨씬 더 잘 통제하는 사람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꾸준히 확인됐다. 그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볼 때도 자기가 실패한 것보다 성공한 것들을 훨씬 더 쉽게 기억해냈다. 미래를 내다볼 때는 친구들이나 급우들보다 자신이 성공할 가능성을 훨씬 더 크게 잡았다.


그러나 자기 기만은 세속적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반대로 상황에 대한 통제의 욕구로 발현되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과도하게 공격적인 반응을 유발한다. 다시 말해 자기 기만이 심한 인간일수록 비판에 공격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우월하게 보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사람일수록 인정 받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자신을 향한 털끝만 한 비난이라도 끝까지 사납게 공격하는 특성을 보인다.


독자는 이 대목에서 어렵지 않게 자기 주변에 있는 기만적인 인간을 떠올릴 수 있다. 자신을 향한 과도한 확신, 그 확신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에너지로 가득차 세속적 성공을 얻는 데 성공한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대체로 지나치게 자신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주변인에게 과도한 충성과 의전, 아부 세례를 요구하고는 한다. 가끔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과잉 의전 문제, 지나치게 독재적인 조직 문화는 이런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불굴의 의지를 칭찬하면서 시작하는 듯 하지만, 중반부로 갈수록 그의 인생을 좀 더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Be Kind and Love Others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인생의 후반부 치명적인 과학적 오류가 있는 사상의 선구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롤모델으로 삼으려 했던 과학자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목도하며 저자는 큰 실망감에 빠진다. 조던으로 인해 망가진 인생을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할 때 그 마음은 유난히 증폭된다.

그리고 동시에 작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피해자를 보며 또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 피해자들이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들 개별적으로 뛰어난 개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서로를 아끼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의미가 있었다. 그녀는 이 깨달음을 민들레 법칙을 인용하며 강조해나간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피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황홀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혼돈이라는 무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관계맺음을 통해 중요해질 수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의미는 없어!"가 말해주지 않았던 비밀 하나를 스스로 발견해 나간다. 의미는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야. 혼돈으로 무의미한 세상 속, 아버지는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 무한하고 정해진 것 없는 세상 속 허무함을 느끼는 인간을 만난다. 까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는 인생에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교수대로 향한다.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은 존재의 무용함으로 고통받으며 구토 증세를 느낀다. 최근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빌런 조부 투바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미국인 에블린이 국세청에서 세금 조사를 받던 날 멀티버스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다룬다. 다정한 남편과 말은 잘 듣지 않지만 귀여운 레즈비언 딸을 둔 에블린은 이 세상이 사실 멀티버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세계에서 그녀는 영화 배우, 경극 배우, 음식점 직원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녀의 딸 조이가 다른 세계에서는 세계관의 최강자이자 빌런인 조부 투바키로 변해 있다는 사실이다. 조부 투바키는 세상의 모든 힘을 손에 넣게 되자 반대로 모든 것에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계를 파멸시키려 한다. 에블린은 괴물로 변해버린 딸을 막으려 혼신을 다해 싸우지만, 영화의 후반부로 가서는 그녀에게 동화되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부질없음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조부 투바키는 그녀에게 속삭인다. 우리에게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면,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거겠지. Nothing Matters! 그녀의 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두 모녀는 모든 것을 담아놓아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힘을 가진 "에브리씽 베이글"으로 소멸해가려 한다.


그때 에블린을 붙잡은 것은 남편 웨이몬드이다. 다른 세계에서 세계를 구하는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웨이몬드는 딸 조이를 멈추기 위해 우리 좀 더 다정해지자고 외친다. The only thing that I do know is that we have to be kind.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해야 해 에블린. 파괴적인 싸움을 일삼던 에블린의 머릿속에는 세탁소를 운영하며 쌓아온 남편과 아이와의 다정한 일상이 떠오른다. 그녀는 그 후 파괴를 위한 싸움이 아닌 사랑을 위한 싸움을 해나간다. 모든 것이 가능한 멀티버스 세계에서 무기는 키스로, 수류탄은 향수로, 총은 아이의 목소리로 바뀐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무너지고, 조부 투바키는 귀여운 딸 조이로 돌아온다.



내가 세상의 좋은 면을 보는 건 내가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야.

오히려 전략적이고 꼭 필요하기 때문이지.

이게 내가 세상을 겪으면서 배운 한가지야.

내가 싸우는 방식이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을 돌아보다 아버지가 유년 시절 이야기해줬던 메시지를 다시 곱씹는다. 의미는 없어! 저자의 아버지는 의미 없는 세상에서 자녀를 사랑하고 자연을 돌보며 끊임없이 좋은 것들을 찾았다. 인생은 정말이지 의미 없으며, 우리는 우주의 하나 먼지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면 다정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세들어 살던친구 집에서 짐을 정리하고 다시 라디오 작가로 취업한다. 그리고 세상의 무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던 어느날, 그녀의 앞에도 세상의 의미가 되어줄 사랑스러운 연인이 나타나게 된다.


혼돈 속에서 별을 찾는다면


인생은 짧고 우리의 존재가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맞이해야 할까? 누군가는 끝도 없는 쾌락으로, 아무런 법칙도 없는 파괴적인 마음 속으로 들어가려 할지 모른다.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모든 것은 얼핏 더욱 무의미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붙들고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나온 해답은 진부하게도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된다.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nobody에서 somebody, somebody to love 가 된다.


광대한 우주에 대한 글을 적어낸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의 첫장에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라고 썼다. 우주의 광활함과 생명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관하는 절대자가 없음은 우리에게 한없는 두려움과 절망을 불러올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혼돈 속에서 각자의 별을 찾는다면, 세상은 마냥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서적이기도 하지만, 인생에 붙들 만한 것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많은 현대인에게 하나의 치유를 안겨주는 에세이이기도 하다. 전쟁과 극우주의가 서서히 돌아오고 있는 시점에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다정함에 대한 책과 영화가 등장했다는 사실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신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2023년 한해 Be kind and love others. 서로에게 혼돈 속 별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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