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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Dec 31. 2022

올해 노벨상 수상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

사랑과 죽음


2022년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여류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소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다. 낙태,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삶. 그중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본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너져가는 어머니의 육체와 정신을 바라보며 중년의 딸은 죄책감과 안쓰러움, 혐오와 사랑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경험을 적어내려 간 작가의 문체는 오히려 덤덤하다. 어머니의 추함,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 차라리 그녀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자기 옆에 남아있었으면 하는 마음. 


인간은 누구나 늙어 죽는다. 젊은 부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기를 기꺼이 돌보지만, 중년의 자식은 벽에 똥칠을 하는 어머니를 돌보기 힘들어한다.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살아나가는 생명이 아닌 꺼져 가는 생명을 바라보는 것이 더 힘에 부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건강은 더이상 좋아지지 않는다. 현 상황에서 더이상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지만, 딸은 어머니를 키울 수 없다. 그저 어머니의 노년을 견딘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에서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미래를 본다. 언젠가 자신이 정말로 늙었을 때는 자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테니 지금이라도 두 눈에 자신의 추한 모습을 담고자 한다. 어머니와 딸은 이상하게 이어져있다. 딸은 더 나은 버전의 어머니로 살아가지만, 결국 어머니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여성은 끝없이 해방을 주장했고 실제로 그 다음 세대에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남성과의 차이를 극복하거나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페미니즘은 지금까지 항상 미완의 운동이었다. 같은 소수자이지만 다른 사회상을 겪으며 살아가는 어머니와 딸 사이에 이상한 감정이 흐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어머니의 삶을 물려받았으나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여성에게 아니 에르노의 책은 조금 더 특별하게 읽힌다. 20-30대 여성은 어느 순간부터 여성으로써 통과해야 할 의례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 예뻐질 것, 남성에게 사랑받을 것, 자신에게 헌신할 남성을 찾을 것, 그에게서 최고의 대접을 받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것. 삶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인간은 여성이라는 압박 앞에 무너지기 일쑤다. 아이를 낳은 후 여성도 남성도 아닌 아이의 양육자로써만 인정받는 인간은 그제서야 고민한다. 나의 여성성은 끝난 것일까? 아니면 아이를 낳은 후에도 여자는 계속 여자여야 하는 것일까? 작가의 어머니는 "남들에게 부탁 한번 하지 않"고, "가난해지는것이 두려워" 계속해서 일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어머니의 인생을 한편으로는 안쓰러워 하면서도, 그렇게 노동해온 세월을 뒤로 하고 그간 세월에서 해결하지 못한 욕망만이 남아있는 어머니의 육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우리는 죽음의 나이가 늦춰지면서 아름다운 노년의 이미지를 선망하기 시작했다. 오십을 지나고도 마치 서른과 같은 피부를 유지하는 여배우, 일흔이 넘어서도 정갈하게 집을 꾸미며 지적이고 현명함을 유지하는 할머니. 모범적인 노년의 삶을 보여주는 유튜브의 댓글 창에는 "저도 아름답게 나이들고 싶어요!"라는 따뜻한 소망이 달린다. 나는 프랑스로 여행을 갔을 당시 봤던, 제대로 걷지는 못하면서 굽이 있는 샌들을 신고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던 프랑스인 할머니를 떠올린다. <에밀리 인 파리> 속 나오는 검은 옷을 입고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던 시크한 프랑스인 여자들과, 아니 에르노의 책에 등장하는 노년의 추한 어머니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에르노의 책에서 독자는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인생에는 아름다움이나 우아함, 정돈된 일만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늙는 것이 고상하고 현명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미디어 속 백발의 지적인 할머니를 바라보며 그를 선망하지만, 사실 아름다운 늙음이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임을 알고 있다. 늙으면 피부는 푸석해지고 몸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살은 점점 찌고 말하는 속도는 느려진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인간을 살면서 많은 것을 성취한다. 학교에 입학하고 직업을 가지고 정치니 경제니 사회니 문화니 하는 분야에 자신을 내던져 일한다. 그러나 삶을 헤쳐나갈수록 인생에서 맞이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가족과 사랑, 삶과 죽음. 가족의 죽음을 견디는 일. 어쩌면 인생은 그렇게 사소하게 시작되어 사소하게 끝나는 이벤트일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는 인간의 평등한 행복과 불행에 대해 쓴다. 그녀는 일평생 자기의 삶 안에 벌어진 특수하면서 보편적인 사건을 깊게 파헤쳤다. 거대한 힘과 세상의 원리, 수학과 과학과 산업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으로, 또다시 더 깊은 내면으로. 올해의 노벨문학상 심사단은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였다. 독자는 그의 책에서 다시 한번 단순하지만 평등한 우리의 인생을 직면한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인생의 마지막을, 쇠퇴해가는 여자의 일생을, 그리고 추함 속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깊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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