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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May 09. 2022

그 모든 불행이 나의 탓이 아니라면

책 <만들어진 신>과 드라마 <지옥>  

고등학교 시절 저는 기독교 모임의 열혈 회원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여섯시 반에 둘러앉아 성경 말씀을 읽고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학생이었습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 그 모임은 굉장히 중독적이었습니다. 자신의 힘든 점을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 무조건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모임이 끝나면 신에게 해결까지 해 달라고 비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신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의 계획은 또 무엇일까. 매일 저녁 여섯시 반 학생들은 신의 사랑과 계획을 알기 위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이 세상을 공명정대하게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신의 존재는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든 간편한 해결책을 제공했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신이 나에게 축복을 내린 것이요, 나쁜 일이 생기면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을 주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인생을 나름의 인과관계로 명확히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고통을 어떤 지적인 존재의 탓으로 돌리고, 그가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면 제 할일은 끝이었습니다. 대가는 그를 향한 믿음과 지속적인 종교 모임 참석으로 지불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리처드 도킨스의 대표작 <만들어진 신>은 펼치기 막막한 책이었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공명정대하고 초인적인 존재가 없다면? 사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으며,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든 관심도 없다면? 도킨스는 600여쪽에 달하는 책 내내 종교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며, 종교에는 장점보다 해악이 더 많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저는 이 영국 출신 진화생물학자의 분노 섞인 논변에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은 우리 사회가 이유 없이 종교에 특별한 지위를 부과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정치와 예술 분야에서는 논쟁과 비난을 일삼지만, 종교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며 방어적 자세를 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도킨스에 의하면 종교 역시 사회의 일부이므로, 종교 관습이나 지도자에 대한 비판 역시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합니다.


“나는 다른 면에서는 지극히 세속적인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걸맞지 않은 특권을 누린다는 점이 의아스럽다. 모든 정치가들은 자신이 등장하는 모욕적인 만화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게다가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은 없다. 종교는 뭐가 그렇게 특별하기에 그런 특권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걸까? “


도킨스는 진화론이 등장한 이상 유신론이 사실일 확률은 현저히 적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를 비롯한 일신론은 세계가 어떤 절대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가르치지만, 사실 생명은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진화했습니다. 물론 놀랍도록 정교한 오늘날의 생명체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우리가 단세포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이 믿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진화의 증거를 도처에서 찾아내고 있으며, 비록 그 증거가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그 빈틈이 결코 창조론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주장입니다.


책은 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긍정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 중에서는 진화론과 유신론을 함께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신이 어딘가 있긴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믿음을 놓지 않는 것이죠. (여기에서의 신은 인격신을 뜻합니다.) 그러나 도킨스는 진화론과 유신론이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전지전능한 인격적 존재와 진화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비롯한 생명을 자신의 의도대로 설계했을 것입니다. 진화는 여러 세대에 거친 우연, 그리고 선택의 산물이므로 인격신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편찬 이후 기독교의 공격 포화를 받은 영향인지 도킨스는 책 전반에 걸쳐 분노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과학을 무시하고 공격하는 극성 종교인들의 해악을 비판하는데 열심입니다. 예를 들어 책 초반에는 기도를 받은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더 빨리 회복되는지를 검증한 실험이 등장합니다. 예상대로 기도에는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만들어진 신>을 읽다 보면 신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뭐하러 기도를 하나요? 굳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차피 병은 낫지 않고, 그가 나에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신 같은건 어디에도 없으며, 우린 그저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일 뿐이라는 걸. 아무도 우리를 보고 있지 않으며, 내 인생에 정해진 계획 따위는 없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우리가 끊임없이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는 이유는 신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중세의 과학자들처럼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인격신이 있다면 사람 사는 것이 얼마나 간편할까요? 세상의 행복과 불행, 기적과 악행을 모두 그가 바라보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도무지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사람과, 내 기준에 복을 받았으면 좋을 사람 모두를 결국 신이 심판해 준다면 그것보다 간단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심판이 실재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느날 사람들은 “당신은 x일 xx시에 지옥에 간다”는 천사의 고지를 받기 시작합니다. 고지받은 시간이 되면 지옥의 사자에 의한 가혹한 형벌이 이어지고, 고지받은 사람은 잿더미로 변합니다. 심판을 예언한 정진수 의장은 고지받은 사람들의 죄를 열거하며 대중에게 경고합니다.

 

“지금 신께서는 너무나 직설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지옥의 모습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런 신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볼수록 관객은 신의 심판이 죄에 대한 응징과 무관함을 알게 됩니다. 학창 시절 고지를 받은 정진수 의장은 자신이 죄를 지을까 전전긍긍하며 모범적인 삶을 살지만, 결국 약속의 날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 회차에서는 태어난지 3일이 지난 아기도 고지를 받습니다. 정진수 의장이 만든 신흥 종교 새진리회와 대립하는 ‘소도’라는 단체의 회원은 드라마 중반부에 이 심판이 어떤 자연 재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불행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 그 허무함이 결국 진실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새진리회를 비롯한 종교에 귀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종교는  사회의 가장 중요한 영역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싶은 인간의 지독한 자의식, 그리고 명확한 인과관계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은 우리의 모습을  신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중심으로 세상을 설계 했을 것이라, 그리고 세상이  인격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실 세상은 우연적인 사건의 결과 서서히 진화해왔고, 우리 인생에는 이유 없이 닥치는 자연재해 같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에는 어떤 이유가 없으며,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수많은 은하의  위에 있는 생명체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강력할 지라도 과학은 신이 없다는 결론을 향해 발전합니다.


도킨스는 절망한 종교인들을 위해 책의 말미에 무신론자 웹사이트에서 발췌한 현대의 십계명을 소개합니다. 그는 종교가 이전 시대의 정신을 반영해 왔다면, 이제 진화론을 깨우친 우리는 다른 시대정신을 만들어나갈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믿습니다. 신이 없다 해도 우리에게는 아직 공동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인격신을 내세운 종교의 몇몇 근본주의자들이 끼치는 해악을 제거하면서도 오히려 인간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합니다.


* 남들이 당신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 매사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라.

* 당신의 동료 인간들, 동료 생물들, 나아가 세계 전체를 사랑과 정직과 성실과 존경으로 대하라.

* 악을 못본 철 하지 말고 정의를 구현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

* 기쁨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살아라.

*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라.

* 모든 것을 시험하라.

* 검열을 하지도, 이의를 막으려 하지도 말라. 다른 사람들의, 다른 의견을 낼 권리를 존중하라.

*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토대로 독자적인 견해를 수립하라.

*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라.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를 지나 대학에 진학한 후 기도모임에는 더이상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10대를 지나 20대 초반이 되니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하고 인생은 알 수가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종교를 30분의 운동과 달달한 디저트로 대체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만들어진 신>을 덮은 후에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어딘가에 나를 가엾게 여기는 신이 있지는 않을까 희망을 살며시 가져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주의 폭발에서 왔다는 과학적인 설명이 그렇다고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10억 분의 1의 확률로 이 세상에 나타난 이기적 유전자로 인해 내가 이렇게 먹고 마시고 말한다고 생각하는 쪽이 마굿간에서 태어난 한 선지자에게서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설명보다 더 멋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더라도, 이 세상이 우연으로 가득차 있더라도 말이죠.


P. 554 "많은 무신론자들이 표현했듯이, 우리의 목숨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면 그것은 훨씬 더 소중해진다. 따라서 무신론적인 관점은 삶을 지지하고 삶을 고양시키는 한편, 삶이 그들에게 무언가를 빚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자기환멸, 안이한 생각, 은근히 스며드는 자기연민에 결코 오염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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