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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Nov 27. 2021

양귀자 - 모순

어쩌면 당신에게도 적용될 이야기

작가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은 안진진이라는 한 스물 다섯 여성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가는 안진진은 어느날 인생의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한다’는 것. 얼핏 보아서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지라도, 사실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문장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만 해.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아침 다섯시 반에 일어나기로 결심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유럽 여행으로 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벌이는 공연한 모든 일의 밑바탕에 있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안진진은 자신의 삶에 양감이 부족하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인생의 양감. 부피, 어떤 깊이같은 것. 그녀는 빈약한 자신의 인생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추가해보기로 한다. 후보는 매사에 계획을 세우고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살아가는 회사원 나영규와 낭만에 빠져 사는 사진작가 김장우, 둘으로 좁혀졌다.


얼핏 보면 ‘응답하라 1994’ 와 같은 뻔한 남편찾기 로맨스 로 보일 수 있는 위 이야기는, 안진진의 주변 인물을 이야기에 등장시키며 드라마를 더한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마도 안진진의 어머니일 것이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만나 평생 속옷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안진진의 어머니는, 인생의 역경을 만날 때마다 힘껏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고통으로부터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는다. 그녀의 삶은 비참하고 남루하다. 그러나 그 비참함과 남루함은 그녀로 하여금 과장된 기분에 빠지게 하여, 어느새 인생의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할 활력을 준다. 어머니와 쌍둥이로 태어난 이모는 완전히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성공한 건축가와 결혼하여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넓은 아파트 안에서 나날이 아름다워진다. 그녀의 정돈되고 행복한 삶은 남루한 안진진의 어머니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는 한다. 그러나 비참함이 한편으로 안진진 어머니의 삶의 원동력인 것과 대조적으로, 매끄럽기 그지 없는 인생은 이모에게 지루함만을 안겨줄 뿐이다. 깔끔한 프렌치 식당과 바르게 자란 아이들, 어긋남 없는 다정한 남편.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지리멸렬하다 느낀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가 안진진을 그토록 특별히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중반부에서 안진진은 자신이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번듯한 직업이나 깨끗한 차를 가지지 못한 그에게 빠진 것은, 술주정뱅이 건달을 끝까지 사랑했던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전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깔끔하기 그지없는 나영규의 모습에서 그녀가 이모부의 모습을 겹쳐 봤기 때문이었을까. 이야기는 어머니와 이모, 김장우와 나영규, 아버지와 이모부라는 대조적인 인물을 등장시키며 독자에게 끊임없이 인생의 양감, 달리 말하면 깊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올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모의 삶은 얕은가, 하면 어머니의 삶은 깊은가? 어머니가 이모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이모도 과연 어머니를 부러워할 수 있을까? 만약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면, 모든 걸 다 가진 그녀가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어머니를 부러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모부는 마지막 이모의 선택을 두고 “도대체 왜” 라고 부르짖는다. 우리가 흔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하는 질문들과 맞닿아 있다. 너 같은 애가 왜, 네가 굳이 왜? 다른 이를 질투하고 인생의 불행을 느끼는 거니? 너는 모든 걸 다 갖고 있는데 말이야.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 말한다. 기쁘고 복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그 사이에 다가오는 불행과 비극은 무용한가. 굳이 인생에 어떤 도달점이, 우리가 이뤄내야만 하는 어떤 목표가 있어야만 삶이 의미가 있는가. 이 답이 없는 질문은 안진진의 아버지를 통해 더욱 심화된다.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통해 안진진은 자신이 생각하는 법을 배웠노라 고백한다. 아버지는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줬어, 난 아버지를 사랑해. 그것은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용서도,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사실에 대한 맹목적인 감사도 아니었을 테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악함, 불행, 비극과 그에 따른 결핍이야말로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음을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나쁨에 흔들리는 마음이, 바로 인생의 모순인 것이다. 어떤 인생이 다른 인생보다 깊다면, 그건 반드시 그가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더 많은 인생의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도무지 삶이란 게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는 복잡한 생각의 소유자들에게 추천한다. 결론이 명확하고 계획 또한 깔끔한, 나쁘게 말하면 나영규와 이모부와 같은 사람에게는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슬프고 괴로운 것은 어쩌면 저 멀리 있는 절대자의 눈에서는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일지도 모른다. 지리멸렬함을 피할 수 있는 축복의 통로일지도, 결핍과 모순을 알게 하는 신의 거대한 사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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