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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May 30. 2023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깊이 깊이 미시의 세계로 들어갈수록 알 수 없는 불확정성의 세상에 대하여

곧 2023년 6월이 다가옵니다. 한해가 거의 절반이 지난 지금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며 탄식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간의 흐름이 야속하기만 한 밤 읽기 좋은 시간에 대한 과학 교양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우리가 직관적으로 선형으로 이해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과거라는 확실함에서 미래라는 불확실함으로 나아간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에서 그는 시간이 우선 1) 동일하지 않으며 2) 절대적이지도 않고 3) 어딘가로 나아가지도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시간 개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개념의 시간을 논증합니다. 물론 직관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는 읽는 내내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200pg라는 짧은 길이와 수식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친절한 설명에 힘입어 완주할 수 있는 훌륭한 교양서적입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 초월적인 개념을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은 현대인에게 안성 맞춤인 책이니 한번 도전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할까? 

문과가 이해하는 상대성이론.jpg.


책은 우선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논증하며 시작합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시간은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다르게 흐릅니다. 빨리 움직이는 사람은 가만히 있는 사람보다, 가만히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관측했을 때 더 느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이론의 이름이 상대성이론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빛의 속도는 절대적인데 반해 인간(혹은 사물)은 더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나,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나 빛은 똑같이 이동합니다. 그렇다면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에게 보이는 빛은 더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거리 = 속도 x 시간인데, 속도는 같고 빛이 더 먼 거리를 움직였다면 결국 시간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빛이 움직인 거리를 기반으로 시간을 측정하면 움직이는 우주선에서의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유튜브 책그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여기에서 나아가 위치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를 수 있다는 진리를 포착합니다. 

본문발췌 (pg.20)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연구할 때 수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졌다. 태양과 지구가 서로 접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양과 지구가 직접 서로를 끌어당기지는 않지만, 양쪽 모두 둘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인가에 서서히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공간과 시간만 있으니 태양과 지구가 각자 주위의 공간과 시간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했다. 마치 어떤 물체가 물 속에 잠기면 주변의 물이 흐트러지듯이, 시간의 구조가 변경되면 모든 물체의 운동에 영향을 끼치고, 그들이 서로를 향해 '떨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중력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중력의 원리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 이전 인류는 뉴턴의 정리에 따라 이 세계에는 <만유인력의 법칙>, 즉 질량이 가진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원리가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고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가 단순히 질량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질량을 가진 지구가 중력장을 휘게 만들어, 사과가 지구를 향해 가속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이 거대한 보자기라고 생각해봅시다. 보자기 위에 야구공을 올려놓으면 그 공의 모양대로 보자기는 휩니다. 그리고 보자기 위에 구슬을 올려놓으면 구슬은 야구공이 만들어낸 곡률을 향해 계속 떨어질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 역시 하나의 중력장이기 때문에 모든 물체는 질량이 큰 물체 쪽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더욱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세계가 거대한 보자기(중력장)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그게 시간이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여기에서 다시 한번 빛이 등장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빛의 속도는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보자기로 눌러놓은 우주에서 빛은 휘어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빛이 언제나 어떤 거리를 최단 거리로 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페르마의 최소시간의 원리입니다. 빛의 속도는 절대적이고, 빛은 어떤 거리를 최단 시간에 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빛은 중력으로 인해 휘어진 보자기인 우리 우주에서 휘어져서 나아갑니다. 거리 = 속도 x 시간이죠? 속도가 같고 빛이 움직인 거리가 같다면, 다시 한번 시간은 질량이 큰 물체에 가까이 있을수록 느리게 갑니다. 


빛은 언제나 최단 거리를 움직인다. 

본문발췌 (pg. 26) 시간은 첫번째 층인 유일함을 상실했다.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 다양한 리듬의 춤 속에서 세계의 사건들이 얽힌다. 세상이 춤추는 생명의 여신으로부터 지배를 받는다면 최소한 만 명의 여신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여신들의 춤은 마티스의 그림처럼 거대한 군무로 펼쳐질 것이다. 


뉴턴의 시간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아이작 뉴턴의 시간 입니다.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나는 시간, 공간, 장소, 그리고 운동을 정의하지 않겠다. 모두 잘 알고 있으므로... 다만 내가 관찰해야 할 것은 보통 사람들이 그러한 양들을 다른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각 가능한 사물과의 관계로부터 인식한다는 점이다."라고 기술합니다. 그에 따르면 시간이란 다른 물체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그 무엇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시간이 어떤 사건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도 소련이 붕괴했을 때 사람들이 느낀 1초와, 내가 여기 신촌의 서점에서 글을 쓰면서 체감하는 1초가 같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시간의 최소 단위를 설정하여 공통의 약속에 맞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계의 초침은 이 서점에서와 런던의 그리니치 타워에서 동일하게 흘러갑니다. 그것이 바로 시간이라고 우리는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다르게 정의합니다. 그는 <자연학>에서 이렇게 씁니다. "고요 속에서 아무런 신체적 경험이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아우리는 즉시 어떤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시간은 아무런 사건 없이도 흘러가는 절대적 개념이 아닌 사물의 변화 그 자체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시간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무언가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먼 훗날 옳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책에서 뉴턴의 시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 개념을 통합하며 시간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시간이 양자적 특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양자? 여기에서부터 호모문과쿠스들은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연구자들의 업적 덕에 우리는 양자적 특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시간의 양자적 특성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개념을 알고 들어가야 합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 리차드 파인만 -


시간과 양자역학 

먼저 양자란 무엇인가를 이해해봅시다. 양자 量子는 헤아릴 량, 아들 자를 써서 우리가 물질을 헤아릴 때 사용하는 최소 단위를 뜻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양자적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시간에 최소 단위가 있다는 뜻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흔히 10^(-33)초를 시간의 최소 단위로 생각합니다.(플랑크 길이). 물체에도 가장 작은 최소 단위가 있는데, 이는 원자입니다. 이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자는 전기적 성질을 띄는 물질로, 원자핵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습니다. 적어도 양자역학의 등장 전에는 그랬습니다. 


우리는 원자가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닐스 보어가 전자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해괴망측한 주장을 하기 시작하자 과학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세한 기술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전자를 저 위에 나타나는 그림처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전자는 확률적으로만 어딘가에 희끄무레하게 존재하고, 인간이 관측을 진행한다면 입자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관측하지 않을때는 파동의 성질을 지닙니다. 위 개념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우니 우리는 하나만 이해하면 됩니다. 바로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위치와 그 속력이 부정확해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성질 자체가 불확정적입니다. 다만 미시적인 세계의 전자는 우리가 '관측'하는 순간, 그 값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시공간도 입자와 마찬가지로 어떤 물리적인 물체이기 때문에 (보자기를 상상해보시면 됩니다), 시공간도 관측되는 순간 구체성을 갖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본문발췌(pg.97) 시간의 기간과 물리적 간격을 결정하는 물리적 기체인 중력장은 질량의 영향을 받는 역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또한 무엇인가와 상호 작용할 때까지는 결정된 값을 가지지 않는 양자적 존재자다. 상호 작용이 있을 경우, 시간의 기간들은 중력장이 상호 작용하는 그 무엇을 위해서만 입자화되어 결정된 값을 지니게 된다. 우주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미결정 상태로 남는다. 


시간은 더 이상 일관성 있는 하나의 캔버스가 아니라, 관계들의 느슨한 망이 된다. 여러 시공간들이 파동처럼 요동치고, 서로 중첩이 가능하고, 특정한 물체와 관련해 특정한 시간에 구체화된다는 이미지는 매우 모호하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정교한 입자성을 위해선 최선이다. 우리는 지금 양자 중력의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물체와의 관계를 통해 구체화되는 어떤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흐르는 시간'의 개념은 사라지고 대신 사건의 연속이라는 개념이 새로 생겨납니다. 사건이 사물에 우선하게 됩니다. 어떤 사물은 그를 이루는 입자들이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하여(사건)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사물은 그 자체로 다른 외부 세계와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물은 곧 사건이고, 세상은 수많은 사건이 집합입니다. 그리고 시간이란 그 사건의 변화를 우리가 인지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저자는 시간의 변화 마저도 물리학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제 여기까지 오셨다면, 시간이 어떤 힘으로 말미암아 변화하는지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무질서한 미래, 엔트로피와 시간에 대하여 


카를로 로벨리에 따르면 시간은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2법칙에 나오는 개념으로, 모든 물체는 무질서한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으면 물은 미지근해집니다. 이는 뜨거운 물에 있는 분자와 차가운 물에 있는 분자들이 서로 밀집되어 있는 상태에서 섞이기 때문, 즉 무질서해지기 때문입니다. 엔트로피는 항상 높아지는 방향으로 작용하며 낮아지는 방향으로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책에서 세상의 엔트로피는 과거에 낮았고, 미래에는 더 높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과거의 시점에 세상의 일부분과 상호작용하고, 미래로 나아갈수록 더 많은 변수와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어떤 모습으로 그 상태에 있게 되었던, 그 자체로 특별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어떤 상태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상태와 우리라는 사건은 상호작용하고, 세상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킵니다. 그렇기에 과거는 정해진 것, 미래는 열려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본문 발췌(pg. 154) '세상'의 엔트로피는 세상의 배열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하는 방법에 의해서도 달라지고, '우리'와 상호 작용하는 세상의 변수들이 무엇인지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즉, 세상의 엔트로피는 세상에서 우리가 속한 부분과 상호 작용하는 변수들의 영향을 받는다.

영화 <테넷>은 엔트로피를 감소시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대사는 "Don't try to understand it, feel it."이죠. 엔트로피가 왜 증가하나요? 감소할 수는 없나요? 라고 물어보면 사실 그 대답을 알 수는 없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말했듯 우리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 바로 그 이유겠지요. 물질이 입장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는 엔트로피가 낮은 곳에서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이 물리적 법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리학은 이렇게 깊이 들어가다 보면 어딘가 이해할 수 없지만 관측만이 가능한 세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많이 알수록 겸손해집니다. 이 세계 전체를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는 없다는사실, 그것이 유일한 진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물리학자가 될 수 없는 일반인들에게 물리학의 불가해한 진리를 아름다운 형식으로 들려줍니다.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이 같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의 변하지 않는 실체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 우리는 이 세상에 나타난 무질서한 미래를 향해 끝없이 상호작용하는 사건일 뿐이라는 진실. 세상을 더 미세하고 미세하게 들여다볼수록, 더 과학적이고 엄밀하게 측정할수록 우리는 더욱 확실하지 않은 확률 구름과 불확정성의 원리에 스스로를 내맡기게 됩니다. 그렇기에 진리는 아름답고 인간은 자유로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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