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무역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나?
나는 일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모두 어떻게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보고는 한다. 요지는 “난 너무 때려치고 싶어도 끝끝내 때려칠 수 없었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단번에 그만둘 수 있었나?” 하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온 이후 약 2년이 지나서야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평생의 반쪽을 찾아다니다가도 그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헤어지고 싶어하고는 한다. 대중은 은퇴를 선언했던 방송인이 어느 순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떠드는 모습을 본다. 입사와 퇴사도 그냥 그렇게, 그냥 일상의 점처럼, 내 인생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오늘은 그 중 입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스물 다섯, 재수 1년 후 대학에 입학하여 아무 정처없이 방황하던 나는 경영학과를 전공했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일 뿐이었다. 학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몰랐고,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이 전체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대신 당시 나는 뭔가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꽂혀 있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자본주의가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물론 당시 나는 자본주의에 대해 하나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 대안으로 생각했던 일터가 NGO였다. 한국의 한 NGO에서 인턴 경험을 쌓은 나는 곧이어 해당 경험을 기반으로 해외 NGO에 취업을 시켜주는 프로그램 하나를 찾아 지원하여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자 했다. 운이 좋아 해당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미국 워싱턴에서 약 6개월간 일할 기회를 얻었다. 워싱턴의 집은 제공해주고, 대신 월급은 약 100만원 내외로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인턴 업무는 비교적 단순했다. 정부 보조금을 가지고 개발도상국의 여성 창업가 센터 & 반부패 기관 설립 프로그램을 기획 및 진행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인턴이라 기초 통계 자료와 연구 자료를 찾아 제안서 및 보고서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면 됐다. 영어로 일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고, 업무 강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게다가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까지 챙겨갈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다만 사기업에 비해 페이가 크지 않고, 정부 기관의 펀딩에 자체적으로 의존해야한다는 게 단점이었다. 업무를 진행할수록 뭔가 전문성이 생긴다는 느낌이 없다는 것도 불만족스러웠다. 당시 내가 본 NGO에서의 업무분장은 1-5년차에게 개별 국가 프로젝트를 맡기고, 10년차 이상에게 여러 프로젝트의 총괄을 담당하게 하며, 그 이상의 본부장은 박사 학위가 있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식이었다. 지금은 여러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매니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지만, 그 당시 나에게 매니저는 그냥 여러 프로젝트를 보고받고 윗 직책자에게 보고하는 관리자로만 느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박사학위를 이쪽으로 받거나, 사기업 시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당시 국제개발협력 업계는 funding과 project managing쪽에서 점점 공적 기금이 아닌 시장과의 파트너십을 중시하고 있었고, 경영학과를 졸업했음에도 내가 해당 분야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었다.
인턴십은 2019년 6월 5일에 끝났다. 이후 인턴십 주관 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치니 2019년 8월 8일이었다. 이제 나를 스폰서해주는 기관도 없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들도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이후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여 종로구의 월 40만원짜리 셰어하우스에 입주하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가지고 있던 노란색 삼성 노트북을 가지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당장 학부를 졸업한데다 특별한 경험도 스킬도 없었던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NGO에서 일한 것이었습니다“는 식의 뻔한 자소서를 반복했다. 34개의 서류를 썼고, 4개의 기업에서 면접을 보았다. 그 중 하나에서 삼년 반 정도를 일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입사 지원을 할 당시 가장 가고 싶었던 기업이었다. 영어로 일할 수 있고,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들이 국제개발협력의 기능을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남아돌았던 취업준비생 시절 당시 해당 회사가 참여하는 잡 페스티벌에 가서 내 이력을 말씀드리고 연락처를 적어서 내면서 ”꼭 입사하고 싶습니다!“라며 눈도장을 쾅쾅 찍었고, 1차 면접 당시에는 할 줄도 모르는 제2외국어 면접을 보겠다고 현장에서 면접관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입사하고 보니 합격한 결정적인 계기는 PT 면접이었다. 해당 면접은 6명이서 한 조가 되어 면접을 보는 회사의 미래 전략을 고민하여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주어진 자료를 최대한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평가 기준을 만들고 가장 기준에 부합하는 선택지를 찾아내어 내 주장을 함께 면접 보는 동료들에게 관철시켰다. 이윽고 PT 자료를 발표하겠노라 자처하여 면접관의 질문에 진땀을 흘리며 굉장히 열심히 대답했는데, 해당 면접관 중 한명이 나를 본인의 부서로 추천한 것이 입사 계기가 되었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를 보면 내가 3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이후 돌연 퇴사를 결정한 일이 의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원했던 회사였으면서 그만 둘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어떻게 나는 “용기”를 내게 되었을까? 나는 서른 하나의 초년생 시기를 지나며 문득, 내 작은 인생도 여러가지 점이 모여 만들어낸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다음 이야기는 별도의 글에서 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