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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Oct 12. 2022

3. 어디 오피스텔에 사세요?

둥그런 원목 탁자 위에는 샌드위치와 스타벅스 커피, 정갈한 과일이 올라와 있었다. 오늘은 L과 여직원들간의 오찬이 있는 날이었다.


L은 회사에서 차기 사장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인물이었다. 소위 임원이 관상이 있다면 이 사람의 얼굴을 본뜬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풍채가 좋고 인상이 좋았다. 자연스러운 웃음과 밑의 사람을 질책하면서도 격려하는 듯한 분명한 말투, 주말마다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시면서도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할 수 있는 체력까지. 그는 뭇 직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최근 그의 고민이 있다면 여자 직원들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거였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름 모든 직급과의 소통에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들을 만나면 어쩜 이렇게 말이 안통하는지 답답할 지경이었다. 술 한잔을 놓고 이야기하려고 해도 여직원들을 강제로 회식에 동원 했다는 기사가 뜰까 조심스러웠다. 거기다 최근 사내에서 발생하는 크고작은 성윤리 관련 사건은 갈수록 회사 이미지를 좋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L은 고심 끝에 여성 직원들 7명과 점심을 먹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참여 인원과 메뉴 선정까지 아래에서 알아서 하도록 놔뒀으니 이정도면 자신이 강제로 동원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H양은 그 7명의 직원 중 하나로 뽑혀 자켓을 하나 걸쳐 입고는 임원실로 향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옷차림에 신경쓴 듯한 동기와 선후배들이 원목 탁자 위에 둘러앉았다.


임원이 갑자기 점심 먹자고 해서 놀란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허허허.


L은 우선 조용한 분위기를 농담으로 풀어보려 했다. 막상 점심을 먹자고 했으나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 발생한 성희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는 너무 직접적인 질문임이 틀림없었다. 먼저 스몰 토크에서부터 시작하는게 나을 것 같았다.


다들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요즘 딸이 독립을 한다고 워낙 강하게 주장해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네요. 다들 혹시 본가에서 통근하시나요?


이정도면 무난한 스몰 토크가 아닐까? 때마침 딸의 독립 관련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마침 독립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역시, 자취와 독립은 공통의 관심사가 맞았다. L은 이윽고 직원 한명한명에게 어디에서 어떤 거주 형태로 살고 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시작은 A양. A양은 용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 요즘 월세가 많이 비쌀텐데, 월세는 요즘 얼마나 합니까?


저는 월세는 100만원씩 내고 있습니다, 상무님.


그렇구나, 요즘 월세가 많이 비싸죠, 옆의 B양은 어떻습니까? 오피스텔로 구하셨나요?


네 저도 오피스텔에 살고 있습니다. 관리비까지 하면 110만원 정도 나옵니다, 상무님.


그렇군요, 그럼 옆의 C양은 어떻습니까?


H양은 샌드위치를 씹으며 자신에게 돌아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자신 앞에 앉은 네 명의 직원은 모두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다. H양의 집은 월세 50만원의 빌라였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자취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오피스텔에 사는지를 물어봤다. 물론 빌라에 산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진다거나, 잘 되가는 소개팅이 엎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H는 빌라라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괜히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사람을 처음 볼 때 미소와 머릿결을 관찰하듯, 빌라라는 단어 역시 그 사람의 무언가를 나타내는 단어가 될 수 있을까?


H양은 어떠신가요?


상무의 사람 좋은 눈이 이윽고 H양 쪽으로 향했다. 좋은 자켓을 입은 A-C양의 눈이 H양에게로 옮겨왔다.


네 상무님.. 저도 혼자서 살고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오피스텔?


아 네..


뭐 그렇습니다.


H양은 모호한 대답을 이어가며 L 사람 좋은 미소를 따라하려고 했다. 나는 절대 당신에게 내가 누구인지 간파당하지 않을 것이다. 회색 벽의 빌라와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L에게 들킨 것만 같아도, 절대 당황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을 것이다. H양은 웃음을 방패로 저도 100만원 짜리 월세 내고 있습니다, 라는 거짓말을 애써 내뱉으려는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옆의 D양은 어떠신가요?


L은 미소의 향방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더이상의 꼬리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 웃음으로 얼렁뚱땅 넘기려던 H의 작전이 성공했던 것일까? 아니면 도리어 H양의 어색한 태도가 더이상의 질문이 실례라는 걸 L로 하여금 깨닫게 한 것이었을까? H양은 내심 후자가 아니기를 기대하며 D양의 팔뚝을 바라보고는 애써 만족스러운 척 미소를 지었다.


H양은 눈 앞의 ABCD를 둘러봤다. 자켓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 감추려 하며 눈을 마주치는 그들과 자신이 같은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를 되뇌였다. 우린 같은 대졸 여사원이 아니었던가? 같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비슷한 모양의 자켓을 입은 사람들, 우리는 L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이 테이블 위에 올려지기 전까지 분명 같은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L의 개인적인 - 그렇지만 사회적인 - 질문이 임원실에 등장한 후로부터, H양은 더이상 그들과 자신이 같은 구성원이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물론 ABCD는 H양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으며 그 차이를 느끼지 않을지 몰랐다. L 역시 젊은 여성을 만날 때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오피스텔이라는 단어를 입밖으로 꺼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H양 뿐이었으므로, 그리고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이 오직 H양 뿐이었기에 더욱더, H양은 자신이 사는 집을 부끄럽다고 느끼게 되었다.


샌드위치를 먹었어도 배가 고팠다. H양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초코파이를 두개씩 입에 넣으며 하루 일과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회색 빌딩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늘따라 낭만적이기도 했다. H양의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이윽고 “귀티나는 여자가 되는 법” 따위의 제목을 단 동영상이 뜨기 시작했다. 자기의 욕망과 자격지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그녀는 오늘도 누군가 보고 있을 것만 같은 골목으로 들어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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