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가며, 삶이 점점 힘에 부친다 싶을 때는 사진첩을 뒤적거린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잊고 지냈던 추억을 하나둘 머릿속에 재생시킨다. 배터리(battery)가 충전되듯 잃어버렸던 무언가가 내 안에서 차오르는 느낌이 좋아서 사진첩을 자주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사진첩은 손때 묻었고, 너덜거린다. 우리는 세월을 함께 맞고 있다.
사진첩에는 유독 아쉬운 점이 있다. 부모님의 사진이나 부모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많지 않다. 주로 누나랑 나의 사진만 있는 걸로 봐서 부모님은 사진 밖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만 하셨던 것 같다. 특히, 아빠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유달리 적은데, 아빠가 서른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사고를 당하시고 투병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러하다. 사진의 비중과 그리움이 반비례하는 느낌이다.
아빠가 보고 싶을 때면 잠자리에 일찍 들고는 한다. 잠의 절대량을 늘리면 아빠 꿈을 꿀 확률이 늘어나지 않을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빠 꿈을 꾼다. 꿈속의 아빠는 자꾸만 병상에 누워 계신다. 꿈속에서라도 자유롭게 걷고, 아프지 않으셨으면 하는데 내 바람과는 달리 나한테 선명하게 남은 아빠에 대한 이미지(image)는 투병 중인 환자여서 그런 것 같다. 꿈속의 아빠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저 웃고 계시는데, 아빠의 표정이라도 밝아서 다행이려니 한다.
아빠의 경우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삶이 힘에 부칠지라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종종 남겨놔야 할까 싶다. 나조차 어린 날의 내가 그립고 보고 싶을 때가 있으니, 가족·지인들도 훗날 내가 그리울 때 뒤적거릴 앨범(album)을 만들어둬야겠다. 그리고 나도 아빠처럼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카메라(camera) 앞에 서면 힘든 날도 애써 미소를 짓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