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탈출기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요즘, 연애 보다는 결혼이 하고싶다. 정확히는 육아휴직이 쓰고싶다고나 할까. 순서도 마음가짐도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과 같다면 잘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만나면서 검증하는 절차는 생략한채로 공식 검증 기관에 좋은 사람이라는 인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불필요한 절차는 생략하고 바로 결혼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솟아 오른다. 이제는 연애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 심히 귀찮은데, 이런 내가 과연 정상일까. 어느날 갑자기 완벽하게 나와 잘맞는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급발진으로 결혼까지 이어졌으면 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나의 모순적 환상은 나를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이성들과의 거리두기에 성공하게 했다. 짝짝짝. 나는 노총각인 원인이 비교적 확실한 편이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요원하다보니 인위적으로라도 사람을 만나보겠냐는 제의가 들어온다. 우리는 이것을 사회적으로 "소개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거절을 위한 핑계로 "혼자 살아도 큰 지장이 없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면 소개팅 받지 않겠다!"는 억지를 부리고는 했지만, "그런 너는 완벽한 사람이냐."는 반문에 말문이 막혀서 결국 꼬리를 말고 소개팅 자리에까지 나서게 된다.
내가 했던 소개팅은 주로 곤충처럼 "머리, 가슴, 배"로 나뉜다. 먼저 주선자로부터 연락처를 전달 받게 되면 연락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가 과연 이 사람과 내가 평생동안 일가를 이룰 수 있을지 저울질을 시작한다. 일단 좌뇌와 우뇌를 납득시키고 난 이후로는 아이는 몇이나 낳아서 어떻게 키울지까지, '머리'로 오만가지 시련과 고난을 해결하게 된다. 이 여정이 끝나면 조심스럽게 연락처를 저장하고,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가슴'으로 하는 소개팅이 시작된다. 일단 만나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면 그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가 간절하게 느껴진다. 육하원칙에 따라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만나서 무엇을 먹고 마실지 약속을 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도 소중하다. 스스로가 낯설 정도로 인연이 되든, 연인이 되든, 뭐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속에서. 나홀로 두근두근 거리는 시간을 보내면 대망의 약속일이 다가온다.
안타깝게도 막상 만나서는 '배'로 하는 소개팅이 시작된다. 솔직히 할 말이 별로 없다. 억지로 몇마디 말을 붙였다가 '우리'라고 불러도 될지 조차 가늠이 안 되는 '너'와 나 사이에 침묵이 내려 앉으면, 약속이라도 한듯 말없이 눈앞의 산적한 음식을 해치운다. 먹고 또 먹다가 가까스로 다시 한마디 하게 되면, 더욱 어색한 정적이 찾아온다. 식은 땀이 흐르고, 시간은 더디게 흘러만 간다. 자리를 바꿔서 카페를 가도, 디저트를 시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먹고 또 먹다가 소개팅은 끝이난다.
결과보다는 한번 만나보는 과정이 중요한게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자려고 누워서는 소개팅에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고는 한다. '피자 같은 음식이 나오면 잘라서 덜어줘야 했는데 너무 멀뚱멀뚱 있었나? 먹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대답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했어야 했나? 입고 나간 옷이 별로였나? 이상형을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이런 자기파괴적인 고민을 하다가 결국 스스로 지쳐버린다. 애프터(after) 신청도 없을 뿐더러, 스스로 마음을 접어버린다.
그 결과 마저도 지질한데,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명제에 감명받은 나는 보통 차이기 전에 찬다. 또박또박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진심을 담아 보내보자. "00님, 함께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만, 저에게는 과분한 분 같습니다. 더 좋은 분 만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이런 실속없는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경상도에서 나의 신상과 연락처가 다 흩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감자, 1991년생, 노총각'으로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가 되어, 가장 인기 있는 전국구 소개팅 프로그램에 섭외되는 상상을 한다. 방송에 출연해서 소신껏 자기소개하는 노총각이 되어보자. "안녕하세요. 35살 늦깎이 신입사원에, 연봉도 적고, 갚아야할 대출금도 많지만, 내가족 굶기지 않겠습니다. 이런 나 당돌한가요? 술 한잔 사주실래요?" 얻어 먹을 술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다. 오늘도 한잔하고, 결혼고민은 내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