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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Apr 16. 2024

비행기 모드

월간감자

오늘은 진심을 다해서 살고 싶지 않다. 대충 일어나서 손에 잡히는 옷을 아무거나 입고 늦기 직전까지 여유를 부리다가 출근하였다. 언제 마지막으로 열심히 살았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일상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열심히 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지 않을 테다. 내 마음이 고장 난 이유는 어제 있었던 일련의 사건 때문이다. 뭉뚱그려 교우관계 문제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다들 자기 마음대로 사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이어지는 간밤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카톡이며 부재중 전화가 잔뜩 쌓여있었다. 다 쳐다보기 싫어서 열어보지 않았고 실수로 누른 한 명에게 그냥 오늘은 아무에게도 연락하고 싶지 않으니 좋은 하루 보내라고 간단한 안부만 전했다. 홀로 살아가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불만을 여기다 토로하면 금방 분량이 찰 것 같은데 그러고 싶지 않음이 마지막 양심인듯하여 천천히 감정을 억누르고 써 내려간다. 여기가 대나무숲도 아니건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살지 않은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났건만 가슴속에 묘한 불안이 자리한다. 생산적으로 살아도 부족한 일분일초가 아니던가. 웹브라우저에서 메모장을 열고 괜스레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척한다. 오늘은 "비행기 모드"를 콘셉트로 하고 살아야겠다.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처럼 유유자적하며 오는 연락은 선택적으로 답하며 모든 연락에 회신하는 데 힘을 쏟지 않을 테다. 불현듯 '다른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오늘만이라도 이기적으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천성이 글러먹었다. 맞춤법 검사가 끝나면 글을 발행하고 밀린 연락들에 지금 내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회신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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