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대화를 하는 와중에 친구가 대뜸 “너는 결혼을 하고 대단히 사람이 바뀌었다. 네가 제일 놀라워. 이제는 노는 거 재미없어?”라고 물었다. 대단히 많이 바뀌었다는 친구의 말에 웃었다. 친구는 얼마 전 주말에도 이태원을 가서 새벽 4시까지 놀았다고 했다. 클럽에서 나와 길거리를 걸으면 20대로 보이는 새파랗게 어린 남자들이 같이 놀자며 따라다니는데,영 곤란하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아직도 노는 게 즐거운 기혼 신분의 친구는 조금의 어색함 없이 ‘어떻게 노는 게 재미없어지는지’ 물었다. 나는 “이 시국에도 노는 걸 보면 너는 대단히, 여전히 20대 몸과 마음이네.”라며 웃어넘겼다. 생경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로 전화를 끊었는데, 머릿속에 물음표가 계속 떠올랐다. ‘왜 나는 결혼을 하고 한 번도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거지?’, ‘그렇게 노는 걸 좋아했는데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의아스러웠다. 과거를 복기해봐도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는 걸 깨닫고서 새삼스레 놀라워했다.
친구가 불건전해 보일 수 있는 행실을 내게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건 과거의 내 모습을 알기 때문일 거다. 나를 한심스럽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는걸 너무 좋아하고, 문란하게 행동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파티나 클럽에서 자주 마주쳐 얼굴만 아는 지인의 지인으로부터 “너 보면 생각 없이 사는 애 같았는데, 직업도 있고. 의외다.”란 얘기도 들었다. 알보고니 의외라는 얘기를 꽤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말초 신경을 강하게 자극하는 쾌락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주말이면 진탕 술에 취한 채로 서울의 클럽들을 옮겨 다니며 놀았다. 홍대 갔다가 남산 갔다가 이태원 갔다가 청담으로 넘어오는 꽤 일정한 코스도 있었다. 야하게 옷을 입고, 관능적으로 춤을 추면 안달 나며 달라붙는 남자들의 싸구려 관심도 즐겼다. 나는 자발적으로 빠진 진창에서 거리낌 없이 방탕했다. 뭘 욕망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절제하지 않고 향락했다. 덧없고 허망한 유흥을 쫓다가는 패망할 수 있다는 것은 어른들의 우려이고, 흘러넘치는 내 젊음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했지만 자유로웠던 호시절이었다.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도 고백하는 남자, 추근대는 남자가 있었고 남편은 졸졸 쫓아다니면서 단속했다. 결혼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결혼을 하게 되었다. 첫째 아이를 낳고 딱 한번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새벽녘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짧은 원피스를 입고 이태원에 갔고, 인사불성 된 채로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대노했다. 그 뒤로 밤에 친구를 만난다고 하면 남편은 핸드폰과 차 키를 숨기고, 아이를 동원해 훼방 놓았다. 남편의 단속이 크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놀고 싶다면 나갔을 거다. 그냥,노는 일에 흥미를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결혼 생활에 대단한 만족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나는 많은 시간을 어리둥절하며 뭐가 뭔지 알려고 애썼고, 내 모습이 어쩐지 불만스러웠지만 아이와 남편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결혼 전 원가족에 속해있을 때엔 방탕하게 사는 내 모습조차 '나'임을 죄의식 없이 받아들였는데,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든 가족 안에서는 '내가 나답게' 있는 일에죄의식을 느꼈다.
친구에게 내가 놀러 나간다는 건, 혼자 바다 보면서 맥주 한 캔 마시거나글 쓰러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거나 하는 일이라고 했다. 친구는 콧방귀를 뀌었다. 섹스도 하면 계속하게 되고 그 맛을 더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다시 놀면 옛 맛을 느끼고 계속 놀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모아도 모아지지 않는 가슴과 부푼 등살을 가지고 놀긴 뭘 놀아"라고 말하니까 나를 철들게 한건 출산과 노화 때문인 거 같다고 했다. 내가 과연 철이 들었을까 확신은 못하지만 '왜 노는 게 재미없어졌는지는 출산과 노화가 답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결혼 전, 친구들은 내가 남자를 유혹하고 도발하는 일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재능은 모르겠고, 그냥 나는 불성실하고 덜 신중한 태도를 취했을 뿐이었다. 관계의 매력과 장난과 재미에 흠뻑 집중했지만, 책임감은 전혀 가지지 않았다. 두루두루 얼렁뚱땅 그럭저럭 만나도 고만고만 잘 지냈다. 출산을 하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착실하게 살았다. 성실하고, 신중하고, 책임감을 갖고 지내지만 고만고만 살아지지가 않았다.
출산 후 노화한 나를 연민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지금의 내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는 걸 보면서 나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내 삶의 비애는 설거지와 빨래와 아이의 학습지에 있다. 방탕하게 놀지 못해 느끼는 아픔과 서러움은 없다. 내가 나 답게 사는 일, 엄마 아내 며느리 명찰 떼고 내가 나 답게 사는 일에 자꾸 소홀한 것 같아 서러워질 뿐이다. 오늘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는 엄마와 아내로서 살아야 하고, 아이들과 남편과 시어머니와 척을 지지 않으려면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로서 살아야 하는거겠지만, 아프다.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라는 역할 안에서 나는 자주 아프다. 고만고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영 허투루 사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나는 나중에 진짜 아프기 싫어서 지금 성실하게 생각하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야심차게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것'을 사수한다는 면에서, 불안하고 답답하지만 지금이 호시절일 수도 있지 않겠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