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사진을눈길이 자주 닿는 곳에 걸어두었다. 가끔 지인이 집이 오면 "이야, 결혼사진을 아직 걸어두네. 신혼이냐?" 라며 놀려도 겸연쩍게 웃기만 했다. 일부로 눈에 띄는 곳에 결혼사진을 걸어둔 건, 그 사진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뻔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 우리는 한 껏 뽐을 내고 몸은 뻣뻣하게 굳어 어색한데 얼굴은 웃고 있었다.뻔하고 촌스런 '우리' 사진이 나는 좋았다. 얄팍한 상술에 넘어가 찍어둔 사진이지만 한 번씩 눈길이 닿이면 이상하게 마음이 경건해지고는 했다. 내 인생의 변곡점을 알리는 상징물이었달까. 얼마 전 결혼사진을 찢었다. 우연히 결혼사진에 눈길이 닿았고, 갑자기짜증이 솟구쳤다. 남편은 내게결혼을 설득하는 말로"평생 웃게 해 주겠다"라고 했었다. 결혼의 실상은 조금도 알려하지 않은 채 천진하고 나태하게 남편의 말을 믿으며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내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분한 마음이 들었다. 경건함이 담긴 사진이었는데,허망함이 느껴졌다.견딜 수 없는 사진이 되었다. 그렇게 사진을 떼어 내고, 공구를 가져와 액자의 못을 빼고, 단단히 고정된 사진을 분리해 찢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결혼을 하고 갖은 풍파를 겪었다.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울며 아파했지만 결국에는 울음을 멈추고 아픈 마음을 추슬렀다. 단란한 가정을 위해 지나치게 긴 울음과 분한 마음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으니 칼로 물을 베는 의미 없는 행동을 그만두기 위해 노력했다. 대신, 서럽고 분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내 생각과 질문을 베었다. 문제는 칼이 물을 자를 수 없듯, 내 생각과 질문도 자를 수 없단 사실이었다. '도대체 이 이상한 남자는 왜 이러는 걸까.', '나는 결혼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남편에게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걸까.',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려면 나는 좀 더 지혜로워져야 하는 걸까, 아니면 좀 더 멍청해져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암담한 심정으로 계속생각을 베어냈지만 그 무엇도 베지 못했다. 그래도 노력했다. 남편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또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려 굴었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용서하려 애썼다. 가끔, 내 노력이 아무짝에 쓸모없을까 겁이 났지만 노력을 그만두는 건 더 겁이 났다.
결혼사진을 찢기얼마 전, 남편과 크게 다투었다. 돈과 가족 때문이었다. 결혼이 파탄 나는 이유 중 일 순위는 성격 차이라고 하는데, 괄호에 '돈과 가족'을 넣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돈에 관한 의견 차이, 가족에 관한 의견 차이가 가장 흔한 이혼 사유라는 거다. 나와 남편 또한 돈과 원가족의 문제 때문에 많이 예민해졌다. 날카롭게 날을 갈고 서로의 마음을 석석 베었다. 나는 크게 상처 받았다.나도 모르게 아이들 앞에서 꺽꺽거리면서 울만큼 마음이 많이 무너졌다. 이제 그만 마음을 추슬러야겠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해결보지 못했던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느끼는 서러움의 원인이 뭘까 생각했다. 내가 오랫동안 부주의하게 행동해서 자초한 건지 아니면 남편의 부주의하고 치졸한 행동 때문에 느낀 모욕인지 따져봤다. 내가 느끼는 분노가 정당한지도 생각했다. 남편의 어떤 말과 행동이 나쁜지, 왜 나쁜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바라는 존중과 존대의 잣대가터무니없게 높은 건지 자문했다. 내가 분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터무니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주말부부가 되었다. 다툰 이후로 "얼굴을 보는 게 힘드니까주말에도 집에 오지 않는 게 좋겠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택배가 왔다. 여성 패딩이었다. 내 이름으로 온 택배이기는 하지만 발송인을 모르니 보관만 하고 있었다. 택배를 받은 그 주말, 남편이 집에 왔다. 주섬주섬 택배를 꺼내더니 "이거 내가 보낸 거야. 너는 핑크색 입고, 나는 카키색. 함께 입으려고 샀어."라고 말했다. 나는 경악스러웠다. '이 사람은 진짜 모르는구나. 내가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남편은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화해는 빠르게 건네는 사람이다. 우리는 매번 빠르지만 어물쩡하게 화해를 했다. 남편이 보낸 패딩은 분명한 화해의 사인이었지만 이번에는 어물쩡 화해할 수 없었다. 상황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의향도 없으면서 서둘러 결론만 짓고자 하는 남편이 계속 미웠기 때문이었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분명 마음껏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거다. 서럽고 분한 마음을 마음껏 그리고 하고 싶을 때까지 표출할 수 없는 사람에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폭력적이다. 내 분노가 진짜 정당한지 자꾸 검열하고, 화해의 손길을 거절하면서도 눈치를 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좋게 좋게 그냥 넘기고, 안 좋아도 그냥 넘기면서 암담함을 견디라는 그 말은 '나쁜 말'이다. 내가 좀 더 마음이 단단하고 넓은 사람이었으면 좋게 좋게 그냥 넘길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남편의 말에 매번 상처 받는 내가 좀 더 의연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마음은 더 상처 받기 쉽게 연해지는 것 같았다.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다져져서 더 연해졌다. 위험에 충분한 방어를 하지 못하는 연약하고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덤으로 얻었다.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음껏 그리고 내고 싶을 때까지 화를 낼 수 있도록 내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가 지나친 걸까', '또 피곤한 여자가 된 걸까'라는 자기 검열의 두려움 없이 마음껏 화를 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