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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Jan 21. 2021

이혼에 준비되었다는 그녀가 부럽다

결혼 후 하는 자립이란.

친구 Y는 대학교 1학년, 플라멩코를 배우는 교양 수업에서 만났다. 예쁜 얼굴과 눈에 띄는 진한 화장, 늘씬한 몸매와 더 눈에 띄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아이였다. 간간히 들리는 말투로 보아 경상도 출신임에 분명했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새침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다가가지 못했다. 종강이 가까워질 때 즈음에야 다가가 물었다 "혹시 고향이 경상도야? 나는 부산."  Y는 깜짝 놀라며 "내 말투에 사투리가 섞여있어? 너는 서울 사람인 줄 알았다. 나도 부산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서로의 어색한 서울 말투를 칭찬했고, 그렇게 가까워졌다. Y와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많은 시간 붙여 다녔다. 함께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클럽을 다녔고, 갖은 비밀을 나눴다. 은밀히 감춰두고 싶은 창피한 이야기도 서로에게만큼은 털어놓았다.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며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다. 20대 초반의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미숙함으로 잦게 실수하며 방황했고, 괜찮지 않을 걸 알면서도 "괜찮아."라는 말을 진심으로 건넸다. '너도 정상이 아니구나. 나도 그래.'라고 생각했다. 


졸업을 하고 얼마지 않아 친구는  결혼을 겠다고 했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사실은 '상처와 불안의 늪'에서 혼자 빠져나가 안락한 세계로 날아가 버리는 친구가 부러웠다. 친구가 결혼을 선언한 이후, 우리는 급격히 소원해졌다. 우리의 우정이 얄팍했다기 보단, 행복해하는 친구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는 쪼잔하고 질한 내가 문제였다. 친구는 짧게 연애 한 남자와 미국으로 떠났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인턴과 비정규직을 오가며 여전히 불안한 채로 살고 있던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미국에서 돌아왔고, 딸아이를 낳았고 했다. 처음 사보는 아기 내복을 들고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내 앞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렸고, 힘들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딸이 너무 사랑스럽네. 좋지 않아?"라고 했고, 친구는 "맞아. 예뻐."라면서 울었다. 20대의 나는 친구의 힘들다는 말을, 그 울음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수년이 지난 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거울을 보면 말쑥한 모습을 한 내가 흡족스럽던  때였다. 20대의 나를 괴롭히던 불안의 원인들은 대개 사라졌다. 남편과 아이가 있었고,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몸이 매우 힘들었고, 상하게 곤혹스 생각을 하며 종종 울었지만 왜 그런 생각이 들고 기분을 느끼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피상적이고 잠정적으로 만족스러운 상태였달까.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딸을 나는 아들을 데리고 함께 만났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얘기했다. 친구는 언제나 그렇듯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우리는 여전하네. 여전한 내가 좋고, 여전한 네가 좋다.'라고 생각했다. 10년 뒤 어떤 모습이고 싶느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나는 이혼을 준비하며 살아. 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할 거야."라고 했다. 내 삶의 결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둔감히 살던 30대 초반의 나는 친구가 하는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며칠 전 친구와 통화를 했다. "Y야. 결혼 생활이 원래 이렇게 힘드니."라면서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얘기했다. 이혼을 준비하며 산다던 친구는 "나는 이제 언제든 이혼할 수 있어. 나는 자립했고, 안 힘들다고 할 수는 없지만 훨씬 좋아."라고 말했다. 친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하며 자립을 이뤘다. 지독하게 힘든 마음을 견디며 추슬렀고, 잠을 자지 않고 공부했고, 우는 딸아이를 떼어놓고 돈을 벌었고, 성공했다. '이혼을 준비한다'는 친구의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된 나는 부러웠다. 부럽고, 또 부러웠다. 이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삶의 결손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곤혹스럽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며 산다. 남편과 어떤 곤경에 처했을 때면 나의 결손 된 부분을 더욱 명확하게 바라보게 되고, 나는 덕컥 겁이 난다.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나는 우격다짐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나에 대해 흡족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친구는 여러 조언을 다. 나와 남편의 관계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엉망도 아니고, 상호 성숙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라고 했다. 동의했다. 그리고 그 성숙을 위해 자립은 꼭 필요한 일이라 했다. 동의했다. 관계의 성숙을 위해서라도 나의 자립은 꼭 필요한 일이다. 심리적 자립은 경제적 자립을 전제하고, 경제적 자립은 심리적 자립 없이 편안해질 수 없다. 는 자립해야 한다. 우리 관계의 성숙을 위해서라도 자립하겠다고 말하는 나를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자립에는 그의 동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부부고, 부모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립에는 그의 포기와 변화도 필요하다. 우리는 역할의 이름은 다르지만 공통책임을 지니고 있고, 서로의 몫을 책임감 있게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을 남편이 분담하거나 대신하는 게 아닌, 남편이 남편, 아빠로서의 역할을 마땅히 한다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나도 자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할 예정이다. 나의 자립을 남편이 응원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덧.


"네가 참 부럽다."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애 낳고 한국 들어왔을 때, 네가 나 찾아왔잖아. 그때 너 미니스커트 입고 왔더라. 널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그리고 사실은 지금도 네가 부럽다."라고 말했다. "그래. 행복은 참 상대적이야. 그렇지?"라고 말했고, 우리는 진심 듬뿍 담긴 응원의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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