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징징이가 타운하우스를 찾은 이유
이번 매거진은 일상 속 도시로 일상 속에 있던 요소를 내 전공인 도시공학과 결부 지어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보는 글이다.
미국의 유명한 TV 애니메이션인 <네모바지 스폰지밥>(SpongeBob Squarepants, 혹은 네모네모 스폰지송). 어릴 때 EBS와 유선방송에서 자주 보던 녀석인데 어른이 된 지금도 종종 본다.
작품 속 주인공인 스폰지밥과 뚱이, 징징이는 서로 이웃관계다. 어른이 되어서야 느끼는 징징이의 불쌍함은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희화화되어 등장한다. 이 중 도시와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장면이 있어서 몇 자 써보고자 한다.
징징빌라(영문명 : Squidville) 에피소드에서 징징이는 시작부터 스폰지밥과 뚱이의 장난으로 집이 폭파당하는 파국을 맞이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징징이는 TV 광고를 보다가 징징빌라를 보게 되고, 못난 이웃인 스폰지밥과 뚱이를 절대로 볼 수 없다는 파격적인 조건에 넘어가 징징빌라로 떠나게 된다.
징징이가 도착한 징징빌라(원본에서는 Tentacle Acres. 두족류들의 공간으로 나온다)는 고요와 평화를 사랑하는 오징어들만 사는 마을이다. 모아이 석상이 똑같이 즐비해 있는 풍경. 아무리 봐도 스폰지밥과 뚱이 같은 '튀는 이웃'은 없어 보인다.
징징이는 처음에 잘 지낸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웰빙 식자재 마트에서 장을 본다. 클라리넷 연주와 댄스 학원. 품위 있는 일상을 즐기다 결국 그 속에서 권태를 느낀다. 답답한 징징이는 스폰지밥과 뚱이가 했던 짓을 그대로 이웃사람들에게 시전 한다.
징징이에게 사과하려고 징징빌라를 찾은 스폰지밥과 뚱이. 그 와중에 징징이는 답답한 징징빌라를 진공청소기와 함께 탈출하게 된다. 이런 징징이를 담장 바깥에서 보는 스폰지밥은 뚱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이건 확실해. 저건 징징이가 아니야~
날아가는 징징이와 스폰지밥의 말을 끝으로 에피소드는 마무리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타운하우스 문화는 흔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은 공동주택인 아파트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분양을 많이 해서 모도시의 집값 안정과 새로운 택지의 인구유입을 유도해야 하는 신도시에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주거형태다(물론 안 하는 건 아니다). 나는 타운하우스를 스폰지밥으로 처음 보고 배웠다. 대학 학부 시절, 도시설계 스튜디오 수업에서 징징 빌라처럼 똑같은 단독주택을 그리고 타운하우스라고 자랑스럽게 교수님께 보여드려 교수님께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 대체 뭘 보고 타운하우스를 저렇게 설계하였냐고 말씀하셨다. 무엇이든 레퍼런스가 중요한 법인데 나는 차마 <네모바지 스폰지밥>이라고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차라리 "나무위키에서 봤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더 정상으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타운하우스가 미국/서구권에서 나온 문화니까 에피소드에서 나온 징징빌라 스타일이 맞는 줄 알았던 나의 미스다. 그저 원작에서는 징징이와 같은 두족류들이 모아이 상에서 살다 보니 원래 타운하우스의 모습하고는 조금 다르게 표현한 듯싶다. 문학적 허용이라고 해두자. 그러면 계속 언급되고 있는 타운하우스는 정확히 무엇일까?
타운하우스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장점만 모아둔, 나쁘게 말하면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단점만 모아둔 주택의 한 종류이다. 타운하우스의 구조는 아파트를 옆으로 눕힌 것으로 이해하면 쉬운데, 토지 한 블럭에 있는 건물 한 채를 입주자들이 공유하며 타입에 따라 다르지만 앞마당 또한 공유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소규모의 주택 커뮤니티를 이루며 어느 정도 기반시설의 관리를 스스로 안 해도 된다는 점(극 중 징징빌라도 관리사무소가 존재한다)과 개인주택처럼 독립공간(대체로 집 뒤편에 작은 정원을 끼고 있다)이 존재하고 관리비를 납부하므로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는 점은 아마 타운하우스의 장점일 것이나 아파트처럼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사생활 침해나 소음(층간소음이 아닌 벽간 소음이 되겠다) 문제와 이동하는데 동선이 길어지는 점은 단점으로 볼 수 있다.
타운하우스 문화는 단어(Townhouse)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에서 기원한 주거문화로 영국에서 영지와 시내를 왔다갔다한 귀족들, 정확히 말하면 영국 입헌군주제의 발달로 시작되었다. 존 왕의 마그나카르타 선언 이후 시작된 영국(잉글랜드)의 의회에서 귀족들이 의원 역할을 하였고, 런던 밖에 영지를 가지고 있던 이들은 의회에서 활동하는 기간에는 런던에 머물러야 했었다. 따라서 런던 시내에서는 그들의 거처가 필요하였다. 즉, 초기 타운하우스는 시내에 짓는 '별장' 같은 개념이었고, 단어에서도(town + house) 기원이 유추가 가능하다.
타운하우스는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와서는 시내(town)가 아니라 교외(suburban)로 내려간다. 물론 여기서도 중상류층, 돈 가진 사람들의 소유물로 여겨진다. 중산층은 왜 교외로 넘어왔을까를 살펴보면 산업혁명 도시의 발달사와 미국이라는 국가 특성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19세기 가난과 혼란을 피하러 온 유럽인들이 택한 곳은 '미국'이라는 자유와 희망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일자리가 가득해진 도시로 이민자들과 노동자 계층이 몰리며 도시의 질이 떨어진다. 마치 취사병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천 명의 훈련병들로 가득하여 맛있는 밥을 원하는 만큼 못 먹는 논산훈련소의 병영식당처럼 말이다.
사람은 우르르 몰리는데 도시의 기반시설과 서비스가 못 버텨주기 때문에 부자와 중산층은 낡고 더러운 도시를 벗어나 교외로 빠져나간다. 오늘날 어떻게든 서울로 거슬러 올라오는 우리가 들으면 어이가 없는 소리다.
중산층들이 모여 교외에 커뮤니티를 만들고, 삶을 영위한다. 이것이 교외화(suburban)의 시작이다. 이렇게 생긴 교외 커뮤니티들은 추후 자동차의 발명으로 도시에서 더 멀어지기 시작한다. 현대 미국에서 타운하우스가 우후죽순으로 나타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참전용사에게 주거지 지원(이 시기에 미국의 경제 호황도 한몫을 했다)을 진행하고 있었고, 덕분에 드넓은 미국 교외에 여러 타운하우스 커뮤니티가 탄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급 아파트 거주민들의 갑질이 최근에 논란이 되었다. 어떤 단지는 단지 내 도로를 다른 주민들이 이용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공공임대주택 단지만을 배척하는 등 단지 내에서도 경제적인 계층을 가지고 나와 너를 나누는 사례도 있었다. 이는 미국 타운하우스 단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앞서 이야기하였듯 타운하우스에 거주하는 계층은 중산층이며, 일반적으로 임대로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 임대료 + 관리비까지 포함해서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은 가계 예산에 있어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산층의 타운하우스 커뮤니티 인근에도 일반 주민들의 단독주택 커뮤니티가 즐비한데 타운하우스 거주자들은 이들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다고 한다. 실제 이를 반영하듯 극 중 주민들도 다른 종족인 스폰지밥과 뚱이를 혐오하며, 저급하고 품위 없는 물고기로 취급한다. 또한, 같은 오징어(혹은 문어) 주민만 이 지역에서 거주한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진 <네모바지 스폰지밥>이지만 의외로 이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네모바지 스폰지밥> 자체가 미국 내 사회의 문제점을 풍자하는 요소는 꽤 많은 편이다.
캐릭터들 또한 풍자 요소가 많다. 물고기 집단에서 소수민족(?)인 텍사스 출신의 다람이를 비웃는 물고기들. 그리고 일을 안 하는 뚱이, 돈만 밝히는 '꼰대' 집게사장, 아빠한테 뭐든 조르는 10대 진주, 조증이 의심될 정도로 낙관론자인 스폰지밥과 항상 우울한 비관론자 징징이의 모습은 이 TV 애니메이션이 어른들도 눈 여겨볼만한 '블랙유머'를 숨기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극 중 징징빌라에서 나오는 주민들의 모습은 앞서 언급한 미국의 교외 중상류층의 세태를 반영하는 결과이자, 어쩌면 틀에 박힌 일상과 배타성을 고귀한 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는 불쌍한 현대인을 투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에피소드를 시청하면 똑같은 주택 규격으로 존재하는 집들, 소규모 쇼핑센터와 주택관리사무소, 담장으로 격리된 미국 중산층 타운하우스의 스테레오 타입을 볼 수 있다. 한국의 고급 아파트 단지와 어느 정도 공통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와 비교해서 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상 학부 수준으로 깔짝 대 본 <네모바지 스폰지밥> 속 타운하우스 문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