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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Dec 21. 2018

19. 낭만에 대하여

다시 못 올 하루하루의 조금은 느린 걸음들. 

 불광동 사는 박조이는 주황에 가까운 갈색의 짧은 머리를 툴툴 털어 말리고 지하철에 오른다. 먼지가 미세하지 않은 어느 화창한 날은 예정된 목적지 보다 두어 정거장 먼저 하차해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투박한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산책을 즐기다 온다. 어디다 정신이 팔린 꼼꼼하지 못한 날에는 지하철에 가방을 두고 내린다거나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우왕좌왕하다 못 오는 일도 있지만 대개는 그럼에도 온다. 늦게라도 온다.


 용인 수지에 사는 스타워즈는 감지 못한 머리에 아트적 감각으로 골라낸 모자를 씌움으로써 스타일로 위장해 집 밖을 나선다. 집 앞에 흐르는 하천에 꽥꽥 무리 지어 있는 오리들이나 가끔 찾아오는 철새들을 감상하며 매번 생각에 잠긴다. 아, 서울 가기 싫다. 나가기 싫다. 사람 많고 복잡한 건 너무너무 싫다. 싫어 죽겠음에도 빨간색 노선의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온다. 돌아오는 길에도 똑같이 펼쳐질 차와 사람들의 하모니를 생각을 하니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온다. 제일 먼저 온다.


 금호역 사는 나는 나름 서울 중심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기에 제일 늦게 일어나 설렁설렁한 외출을 준비한다. 긴 파마머리를 감을 때도 있고 안 감을 때도 있다. 호사스러운 여유를 누리다 대중교통 아다리가 안 맞은 어느 불운한 날은 제일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제일로 늦어버린다. 가까우니 괜찮겠지 싶어 칼같이 자른 시간에 듬성듬성 간격이 벌어지다 보면 이내 밀려오는 초조함에 등줄기가 지릿지릿해진다. 약속 시간 20분 전인데도 벌써 도착했다는 스타워즈의 카톡이 날라오면 마음을 동동 거리며 발걸음을 서두른다. 십 분만 일찍 나올 걸 매번 후회하면서 나는 간다. 동동 거리며 간다.


 미팅이 잡혀있는 클라이언트 건물 근처의 커피숍. 각자의 방식으로 출발한 우리가 한자리에 모인다. 요즘은 한남동 폴바셋이 우리의 사무실이다. 두어 시간쯤 미리 만나 오늘 제안할 파일을 최종으로 검토하고 예상 질문에 대해 어떻게 방어할지 의견을 나누며 입을 맞춘다. 회의 시간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짧게. 잡담 시간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길게, 일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삶과는 유관한 말들을 하느라 나머지 시간을 쓴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의 효율성은 처리해야 되는 일은 빠르게 끝내돼, 좋아하는 일엔 시간 관계없이 최대한 오래 머무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수다는 단연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어서 거의 일하는 만큼의 시간을 수다에 투자한다. 박조이와 너무 많은 말을 너무 오랜 시간 나누던 스타워즈가 한 번은 목이 아파 이비인후과에 갔다 성대결절 판정을 받아 돌아오기도 했다. 목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냐고 의사가 물어댔다. 박조이는 멀쩡했다. 박조이의 또 다른 별명으론 '입의 여왕'이 있다. 과연 여왕다웠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은 순조로운 편이다. 우리의 논리와 생각에 거의 설득이 된 상대방은 몇 번 질문을 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회의를 끝마친다. 나와 박조이는 애연가로 미팅이 끝나면 건물 앞에서 광고주가 우리 안을 좋아해서 다행이라며 기분 좋게 맞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회의를 끝마친다. 스타워즈는 유일한 청일점에 비흡연자로 우리가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옆에 가만히 서 있지만 역시나 입은 쉬지 않는다.


 낮과 밤이 뒤바뀐 우리는 미팅이 끝나고 나서야 남들 저녁 먹을 시간에 첫 끼를 해결한다. 그리곤 꼭 밥 한 술 뜰 타이밍에 맞춰 클라이언트로부터 문자가 온다. 이러 저러한 내부 사정으로 안을 이렇게 저렇게 수정해 달라 한다. 아니 아까는 분명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는데 이 정도 수정이면 그냥 다시 만들어 달라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의 수정사항이 오기도 한다. 이 과정은 거의 대부분 공식처럼 적용되는 사항이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 분을 삭이며 밥숟가락을 뜰 때가 많다. 그렇게 한 끼를 나누고 티타임까지 갖고서 (일한 만큼의 수다를 떨고서)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간다. 박조이는 불광으로 스타워즈는 용인으로 나는 금호로 간다.


 자정이 되면 흩어졌던 우리는 다시 만난다. 카카오톡으로 만난다. 좀 전의 클라이언트 피드백을 반영해 서로가 수정한 파일을 공유하고는 그룹콜을 누른다. 각자의 공간에서 이어폰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앉은 우리는 어떤 안을 어떤 식으로 수정할 것인지 회의를 시작한다. 초기에는 카페에서 주로 회의를 했는데 한두 시간의 회의를 위해 한두 시간의 준비시간과 이동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이 그룹콜 회의였는데 집을 좋아하고 밤을 사랑하는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식이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밤에 우리가 제일 편한 집에서 우리가 가장 잘하는 수다를 떨다니. 처음 한동안은 그룹콜을 만들어낸 카카오톡에게 정말 감사해했다. 

 

 외부 미팅을 갈 때마다 우리가 듣는 첫 번째 말은 “주차는 하셨나요?" 다. 몸소 자신들이 있는 곳까지 찾아와준 상대에 대한 예의로 주차증을 챙겨준다거나 배려 차원에서 하는 질문일 테지만 세 명 다 뚜벅이에다 심지어 나를 빼곤 운전면허증도 없는 사람들이라(그러는 나도 장롱면허다) 조금 뻘쭘해질 때도 있다.


 외부 미팅을 갈 때마다 우리가 하는 첫 번째 말은 “죄송합니다 저희는 아직 명함이 없어서요” 다.  원래 의도는 우리 같은 업계는 명함이 뭐 필요 있냐 우리가 잘하면 이름이 곧 명함이다. 없는 게 더 쿨해 보이고 멋지지 않으냐 여서 안 만들기로 합의를 보았던 것인데 사람들에게 이 낯부끄러운 포부를 그대로 말할 수 없어 아직 못 만든 것으로 하다 보니 매번 구차해진다. 우리가 상대의 명함을 받고서 아무것도 주는 게 없으니 내민 손이 민망하다는 피드백과 우리는 명함이 없다고 하니 자신의 명함을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당황해하는 모습들도 종종 보았기에 명함을 만드는 것으로 다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명함을 만들자'는 우리에겐 '올해엔 꼭 다이어트' 수준이어서 언제 만들지는 도통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회사를 차리고 처음으로 인쇄 촬영이 잡힌 날. 심지어 미남 배우와의 촬영. 광고주와 미남 배우와 스타일 헤어 메이크업 스텝들과 그의 소속사 관계자와 모델 에이전시 높은 직급 분들과 포토 그래퍼와 포토그래퍼의 스텝들, 적지 않은 숫자가 우리의 핸들링 아래 경기도 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우리의 손엔 어쩌면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의 명함이 한 다발 쌓였고 우리의 명함을 받았다는 이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계속 계속 마음에도 없는 죄송함을 내비쳤다.

 

 차량이 거의 필수적인 위치였던 지라 수십 대의 차량이 레고 블록처럼 차례차례 쌓였다가 빠져나갔다. 오늘 본 차량 중 단연 눈에 띄었던 포토그래퍼의 검은색 포르쉐를 마지막으로 주차장은 공터가 되었고 남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텅 빈 공터에서 핸드폰을 켜 카카오택시를 잡으며 도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검은색 포르쉐의 뒤꽁무니가 사라져 갈 때쯤 그의 스튜디오에서 처음 미팅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주차는 하셨습니까'와 '명함은 아직 못 만들었습니다'로 인사를 나눴더랬다. 미팅을 끝내고 나와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배를 피우는데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사무실도 없고 명함도 없고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갈 만들겠다고 이러고 보따리 장사처럼 돌아다니는 게 너무 웃기지 않느냐 말했다. 나의 말에 스타워즈는 자기는 우리가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나는 그에게 돈 없는 걸 낭만으로 포장하면 안 된다고 말했고 박조이는 나에게 그렇게 자본주의의 노예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이왕이면 돈이 많은데 사무실이 없고 돈이 많은데 차가 없고 돈이 많은데 명함이 없어서, 돈이 많은데도 어디서든 일하며 싸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돈에 오기가 생겨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나였다.  


 그런데 오늘, 모두가 빠져나간 공터를 셋이 나란히 걸어내려오면서, 내가 시골에 살면서도 타고 싶다던 그 포르쉐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면서 나는 스타워즈가 내뱉었던 낭만이라는 단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기분의 중심에 있던 물음표 하나, 그 많았던 포토그래퍼의 스텝들은 다들 무슨 차를 타고 갔을까. 저 차에는 분명 포토그래퍼 한 사람뿐이었는데. 우리 셋은 이렇게 함께 걸어가고 있는데. 


 걷다가 택시를 탔다가 지하철을 2번이나 갈아타고 나서야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집 앞 벤치에 앉아 혼자 담배를 피우면서 나는 오늘 본 몇몇 장면들은 내 인생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씬이란 확신이 들었다. 공터에 흩날렸던 담배연기, 꾸준히 분주했던 입모양들, 나란히 내려오던 언덕길의 그림자 셋. 각자의 포르쉐를 위해 언제 어떤 식으로 헤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이 동업의 관계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지 우리 중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매번 서로를 향해 오고 가고 있었다. 나란히 나란히 걸으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최백호는 낭만을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라며 울부짖었다. 나는 우리의 이 느린 걸음들이 정말로 다시 못 올 순간들이라는 사실을 겨울날의 추위만큼이나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고, 그러므로 오늘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오늘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낭만이 아닌 다른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설명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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