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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Jun 07. 2024

<베이비 레인디어>

Baby Reindeer, 2024

근 몇 년 간 ott 채널에 올라온 작품 중 가장 놀랍고 인상적이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꽤나 자기 성찰적이면서 동시에 역겹다. 그냥 그때 그때 드는 생각을 입 밖으로 다 내는 무례함이 아니라, 진정 자신의 민낯을 내보일 줄 아는 솔직함이 영국의 7부작 드라마에 담겨있다. ott 시리즈답게 관객을 단숨에 이야기 안으로 끌고 들어가다가 서사를 구축하느라 지지한가 싶더니 중반부에 이르러 주인공 자신이 왜 스토킹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는지에 대해 고백하며 극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는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극 중 마사 스콧(제시카 거닝)이 스토킹 하는 남자 도니 던(리처드 개드)을 부르는 자신만의 애칭이다. 도니가 경찰서에 가 “신고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말로 막을 열어 범죄스릴러의 형태를 띠지만, “왜 여태 신고 안 하셨어요?”라는 물음에 주저하는 모습에서 당초의 각오가 그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1화가 시작할 때, 이 이야기가 실화라고 했다. 실화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실화라고 했다. 보고 있노라면 이게 정녕 실제 일어난 일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수위가 강하다.


<스포트라이트>(2015)처럼 외부의 시선으로 점차 다가가는 것이 아닌, 가장 깊은 내부, 근원지에 존재하는 본인의 내면을 조명하다 보니 여타 범죄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한다. 나는 이게 이 작품의 가장 큰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만 언급을 피할 수가 없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리처드 개드는 작품의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을 맡았으며, 실화라고 밝힌 이 이야기의 실제 당사자이다. 그렇기에 <베이비 레인디어>만이 할 수 있는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고, 고백하는 방식이기에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실제 기록을 다루기 때문에 동시에 객관성을 갖고 깊은 곳까지 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이 작품만의 힘이다.


이 작품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건, 피해자인 주인공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가에 대해 스스로도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 문제가 있는 범인이 피해자에게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 어떻게 경찰이 수사를 해서 범인을 잡았는지,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에게 복수하고 그 거미줄에서 벗어나는지가 아니라, 도니 스스로 마사가 자신을 스토킹 하게끔 문을 열어줬다는 것, 왜 문을 열어줬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스토킹이란 게, 누가 누구를 쫓아다니는 것만이 스토킹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꿈을, 성공을 좇고, 본능과 욕망을 좇는다. 욕망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며, 도니는 연속된 실패에, 기회란 것이 주어져 본 적이 없는 삶에서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 그런 와중 자신을 좋게 봐주는 마사의 손길이 싫지 않았던 것이다.


도니는 긴 시간 마사에게 시달렸고, 그런 와중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끝내 답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조금 더 힘을 얻게 된다. 도니는 부모님에게 자신이 남자에게 강간당했음을 고백하는데, 남자로서 제대로 처신하지 못한 스스로 “모자란 아들이 되기 싫었어요”라 말하는데, 아버지는 바로 이어서 “넌 날 모자라게 볼 거냐? 난 가톨릭 교회에서 자랐다”고 답한다. 가톨릭 신부들이 아동성추행을 벌인 사례는 앞서 언급했던 <스포트라이트>에서도 긴히 다뤘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인간이 지닌 욕망과 집착, 자의식의 과잉 등을 조명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주변인들과의 연대를 말한다. 도니의 아버지는 아들의 무거운 고백을 듣고는 “그 트랜스젠더와 잘해봐!”라고 지지해 주었으며, 그의 소식을 들은 킬리와 킬리의 어머니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혼자서 이 모든 것을 뚫고 나아가기엔 벅차다.


#베이비레인디어 #리처드개드 #제시카거닝 #나바마우 #샬롬브룬프랭클린 #니나소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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