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우리가 사는 방법
“심각한 질병은 우리를 삶의 경계로 데려간다.”
<아픈 몸을 살다>의 저자 아서 프랭크의 문장. 이 문장 앞에서 숨을 고른다. 나를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만난 것 같아서다. 몇 년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나는 자꾸만 삶의 경계에 선다. 자살과 자해 사고를 비롯해서, “이런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반복되다 보면, 일주일 뒤에 살아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심각한 질병은 우리를 삶의 경계로 데려간다고 했다. 나는 경계에 서서 늘 묻는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할까.”
내가 겪고 있는 삶
내가 겪고 있는 삶은 무엇일까. 우선, 정신질환자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예를 들어, 우울증은 뇌에 기분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생긴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은 뇌 질환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는 병의 실체와 거리가 멀다. 중2병, 고뇌하는 청춘의 열병, 힘든 것 없이 자라서 걸리는 병. 나는 이것이 정신질환에 대한 타자화라고 생각한다.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지만, 특정한 병을 특별하거나 이상한 이미지로 가두는 것. 그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그 병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비춰지고, 정신질환자는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존재가 된다. 비질환자는 정신질환에 대해 무지한 채로 살아가고, 정신질환자는 그들에게 자신을 늘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되곤 한다. “나 그렇게 이상한 애 아니야”라고.
게다가 아픈 사람의 삶에 대해 가장 위험한 무지는 따로 있다. 아픈 사람을 ‘아직 다 낫지 않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픈 사람은 ‘쾌차’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것은 이분법에 가깝다. 질환자와 비질환자, 건강하지 않은 사람과 건강한 사람, 정상인과 비정상인. 여기에서 아픈 사람들은 어서 ‘정상인’이 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들에게 삶은 아직 유예된 것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정신질환의 재발률은 높고, 평생을 이렇게 병에 시달려야 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나로서는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이미 몇 번이나 재발과 악화를 반복한 내 병은 아마도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평생을 유예해야 하는 삶인 것일까. 아픈 사람들의 삶은 ‘아직’ 삶이 아닌 걸까. 나는 경계에 서서 늘 묻곤 했다.
아픈 사람으로서 삶
그 경계에서, 아직 유예된 삶에서, 평생을 “다 나으면”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삶에서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에 걸린 후, 많은 것들을 잃어야 했기 때문이다. 십 대의 나는 정신 질환에 시달리며 고등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는 자살 결심을 반복하면서 20분에 한 번씩 도서관 옥상에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다. 모든 생각이 자살 사고로 연결될 만큼 병이 심해져 글자를 읽어낼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검정고시 문제집을 풀어내려고 애썼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결과는 당연히 기대 이하. 합격은 했지만, 대학 진학을 노릴 수 있는 점수는 아니었다. 가족은 그런 나를 보고 노력하지 않았다며 욕을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된 해, 또래 친구도, 돌봐주는 가족도, 입학할 수 있는 대학도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속에서 내가 한 선택은 자살 기도였다. 어느새 나는 사회의 가장자리이자 삶의 경계로 밀려나 있었다.
그 후, 나는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학을 다니고, 여행과 연애를 즐기고, 콘서트장에 가는 스무 살을 바랐지만, 내 삶은 그런 ‘힙한’ 삶이 아니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무엇을 잘 해서 그런 삶을 누리고 있는 거야“라고 따지듯 묻고 싶었다. 나의 모습은 사회가 권장하는 ‘청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삶에는 취업 준비를 계획하는 것보다, “일주일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익숙했다. 여행을 떠나기보다, 방 안에서 자해하는 것이 더 나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청춘’보다 ‘정병러(정신질환자를 일컫는 말)’라는 호칭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사회의 언어 속에서 문법이 틀린 삶.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는 점점 커져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거 완전 미친놈이라니까, 미친놈이라고” 그 말을 듣고 흠칫했다. “나도 저런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지”하고. 이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혹시나 나를 주목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사람들이 욕으로 쓰는 그 ‘미친놈’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조금은 웃겼고, 많이 서글펐다. 아픈 사람이 소수자가 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알았다. 질병으로 인해 잃어버려야 했던 기회, 도저히 기획되지 않는 삶, 어느새 소수자가 된 나의 모습. 아프다는 것은 극복하는 일이기보다, 그것들을 살아야 하는 일에 가까웠다.
경계를 허무는 일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픈 사람으로서 느낀 것을 말하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을 찾았다. 그곳에서 서로 경험한 폭력을 말하는 글을 나누기로 한 날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 속엔 말하지 못한 폭력의 경험이 산재했다. 다른 사람이 겪은 폭력의 경험을 읽으며, 속으로 조용한 고백을 해야 했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고.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아팠다.
불우하고 아픈 사람은 나고, 다른 사람들은 운 좋게 평범한 삶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모두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사는 생존자였다. 아픈 사람으로서의 기억이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 나와 닮은 상처를 그들에게서 발견한다. 폭력의 경험으로 연결된 나와 타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 비슷한 아픔이 담긴 글이 그렇게 내게 스며드는 것 같았다. 부정하고 싶고, 부끄럽고, 미안한 고백 끝에 모두가 아픈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모두가 아플 때, 모두가 아픈 세상에서, 나는 무엇일까. 요즘엔 장애 인권과 청소년 인권, 그리고 퀴어 이론을 공부한다. 아픈 몸으로 인해 소수자가 된 경험들을 통해,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를 다시 보고 싶어서다. 아픈 사람은 다 나을 때까지 유예된 존재로 비춰지는 것에 느꼈던 부당함. 그것은 늘 ‘덜 성장한 사람’이라고 지목되는 청소년에 대한 생각으로 가닿는다. 정신질환을 겪으며 사회가 권장하는 삶의 모습에서 탈락된 나는 이제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소수자로서 삶. 어쩌면 그 삶의 이름은 ‘퀴어한 삶’이다.
그렇게 나는 자꾸만 투명해진다. 경계를 넘어 타자에게 가닿는다. 모두가 아픈 사회. 그 속에서 아픈 사람의 삶은 다른 아픈 이와 연결된다고 믿는다. 심각한 질병은 우리를 삶의 경계로 데려간다고 했다. 그 일이 아픈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라면, 나는 그렇게 조금은 더 살아보고 싶다. 여성학자 나영정의 말마따나 “이제는 도저히 나와 다른 이들을 골라낼 수가 없다.” 그 속에서 한 계절 더 살아도 좋겠다.
글. 서아람(aramstudio@daum.net)
특성이미지 ©웹툰 ‘아만자’ 캡쳐
*이 글은 고함20(www.goham20.com)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