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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Feb 06. 2022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딜레마에 빠진 소셜 네트워크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인해 생긴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세상에는 나랑 비슷한 생각, 취향, 특징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오이를 못 먹는다. 오이에서 나는 그 특유의 물 비린내가 싫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오이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았고, 김밥 같이 오이가 들어가 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오이를 제거한 후 먹는다. 신기한 건 우리 집에서 오이를 못 먹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족들 모두 오이를 무척 좋아한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중에도 오이를 못 먹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어릴 적 친구들은 모두 나를 "오이를 싫어하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난 어릴 적에 오이를 못 먹는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만 먹는데 나만 왜 못 먹을까? 계속 먹다 보면 익숙해져서 먹을 수 있게 되는데 먹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근데 2000년 즈음에 다음 카페가 활성화되면서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카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서 보니 오이를 못 먹는 사람들의 숫자가 우리나라만 해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김밥에 오이를 젓가락으로 일일이 빼느라 김밥이 흐트러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냉면을 주문할 때 "오이 빼 주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 같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선언' 같은 것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쓴맛에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생 살아가면서 매우 한정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제한적인 경험만 하면서 살아간다. 문제는 그런 1%의 제한적인 경험으로 인하여 형성된 사고방식을 너무 쉽게 보편화시켜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99% 사람들도 나와 같을 거라고 단정하고 내 생각과 다른 것을 너무 쉽게 틀린 것으로 규정해버린다.


인터넷은 우리가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데 있어 인류가 발명한 그 어떤 것 보다 큰 기여를 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의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거대 테크 기업의 초창기에 개발자나 경영자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출연해서 자신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회사가 어떻게 천문학적인 광고 수익을 얻고 있고, 이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점 등에 대해서 폭로를 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다.


그들에 따르면 거대 테크 기업들은 주 수입원인 광고수익 극대화를 위해 이용자들을 자신들의 사이트나 앱에 최대한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정교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알고리즘 개발의 핵심은 이용자들의 관심사, 취향, 인간관계 등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이용자들의 관심사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해서 추천 사이트나 추천 영상을 지속적으로 제공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용자별로 추천 영상이 다르게 뜨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진 출처 - Netflix <소셜 딜레마> 영상 캡쳐


이와 같은 알고리즘 개발과 관련해서 수집한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아무런 규제나 비용의 지불도 없이 무제한 사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 제일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추천 알고리즘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제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게 되었고,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지 못하게 된 결과 이제는 온라인에서 조차 각자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어 시각의 지평을 넓혀 준 인터넷이 광고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사람의 관심을 붙잡아 두려는 거대 테크 기업들의 이기적인 상술에 의해 변질되어 이제는 알고리즘을 통한 편향된 정보의 제공을 통해 사람들의 사고를 고착화시킴으로써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말미에 "이런 현상으로 인해 당신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질문에 대해 "내전(Civil War)"라고 대답한 출연자의 말이 무척이나 섬뜩하게 다가온다.


<표지 사진 출처 - Netflix <소셜 딜레마>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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