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스마트 모빌리티의 그림자
퇴근길에 인도를 걸어가는데 뒤쪽에서 전동 킥보드를 탄 남자가 빠른 속도로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가서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역시나 헬멧은 착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길을 조금 더 걷다 보니 아까 그 남자가 얼굴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인도를 걷고 있던 사람을 피하려다 넘어진 것 같다.
전동 킥보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 도로교통법이 2021. 5. 13.부터 시행되었다.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개정 도로교통법에 의하면 “개인형 이동장치”라고 불린다)를 타려면 원동기 면허를 보유해야 하고(이에 따라 원동기 면허를 취득할 수 없는 만 16세 미만은 전동 킥보드를 탈 수 없다), 인도에서 탈 수 없으며, 2인 이상이 같이 탈 수도 없고(동승자 탑승 금지) 그 밖에 안전모도 착용해야 한다. 사실 진작에 규율했어야 하는 내용이었는데 다소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라도 규율을 한다니 다행이다.
그동안 전동 킥보드로 인해서 인도를 보행하는 사람들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 스마트 모빌리티를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미명(美名)하에 정부를 비롯한 지자체는 보행자의 안전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다.
전동 킥보드가 인도에서 활개 치고 다니기 시작한 1년 정도 전부터는 인도를 걸을 때에도 혹시 뒤쪽에서 전동 킥보드가 오고 있지 않나 확인하기 위해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게 되고, 의식하지 못한 순간 전동 킥보드를 탄 사람이 빠른 속도로 옆을 스치듯이 지나갈 때면 순간적으로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특히 귀에 이어폰이라도 꼽고 걸을 때면 이런 긴장감은 배가 된다. 말이 시속 25km 지, 시속 25km로 운행하는 전동 킥보드를 탄 사람과 부딪히는 것은 100m를 전력 질주하는 사람과 부딪히는 것과 같다. 게다가 사람뿐만 아니라 전동 킥보드 하고도 같이 부딪히니 그 충격은 훨씬 크다.
이렇게 전동 킥보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오늘 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개정 도로교통법이 실제 집행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단 법 위반을 한 전동 킥보드의 탑승자를 적발하기 위해서는 전동 킥보드에 고유의 번호판이 있어야 한다. 번호판이 없는 킥보드의 탑승자를 무슨 수로 식별해서 검거할 수 있을까? CCTV나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을 식별해 낼 수 있을까? 결국 경찰이 상시적으로 단속을 하지 않는 이상 지금과 같은 인도에서의 무법적인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비단 전동 킥보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배달 수요가 급증하다 보니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급증하여 그야말로 오토바이 천지가 되었다. 배달을 한 건이라도 더 해야 수당을 더 받을 수 있어서 그런지 이들은 대부분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나 인도에서도 버젓이 다닌다. 그야말로 무법적인 운행을 통해 보행자와 차량의 안전을 위협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단속을 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2015년 12월에 베트남 하노이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사실 베트남은 1995년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봤던 곳이었는데 딱 20년 만에 다시 가게 되었다. 당시 하노이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수많은 오토바이였다. 차도에서 자동차를 제대로 운전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오토바이가 정말 많았고, 4인 정도 되는 가족이 하나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모습도 심심찮게 봤다. 그리고 교통신호를 지킨다는 개념도 거의 없어 횡단보도가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처음에는 길을 건널 때 오토바이를 피해서 건너는 게 너무 어렵고 오토바이에 치일까 봐 겁이 났는데, 그쪽 사람 얘기로는 그냥 걸어가면 오토바이가 알아서 피해서 가고, 오히려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한다. 이상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 사실이었다.
요즘 도로와 인도에서 활개 치고 다니는 오토바이와 전동 킥보드를 보고 있자면 베트남 현지 사람이 했던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 특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 길을 건너는 사람들 사이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와 전동 킥보드를 피할 때는 더 그렇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미명(美名) 하에 사람의 안전은 뒷전으로 취급하는 교통 후진국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 스마트 모빌리티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치인들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34조 제6항의 의미를 한 번 되새겨 보고, 하루빨리 인도를 보행하는 사람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그리고 오토바이나 전동 킥보드를 운행하는 사람도 모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