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이야기
요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뉴스는 단연 지난 4월 25일 실종되었다가 6일 만에 한강에서 시신이 발견된 故손정민씨의 사망에 관한 이야기다. 사망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있고,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친구가 침묵을 하고 있는 관계로 온갖 추측과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아들이 어떻게 사망하였는지조차 모른 채 떠나보낸 故손정민씨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 답답할까 싶다.
아마 수사기관이 수사를 통해 여러 가지 증거를 수집하겠지만 사건 현장을 촬영한 CCTV나 블랙박스 영상 등이 확보되거나 사건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한 사건 당일에 있었던 일을 완전히 재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변호사로서 사건을 접해보면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남아 있는 증거는 대부분 사건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볼 수 있는 파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아있는 증거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구성된다. 그건 법원의 판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 방영된 <알쓸범잡>에서 정재민 판사의 이야기처럼 영화 속에서는 퍼즐 몇 개 맞추면 진실이 드러나지만, 현실의 증거의 경우 시간적 공간적으로 궤도에 찍힌 ‘점’ 정도이고, 그 ‘점’들 사이의 틈을 촘촘하게 메꿔 주는 것은 결국 사건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인 피해자 또는 피의자의 진술 밖에는 없다.
故손정민씨 사건의 경우 사건을 경험한 두 사람 중 한 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남은 한 명은 침묵을 하고 있고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긴 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 중에 디즈니-픽사에서 제작한 <코코(CoCo)>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미구엘이 저승세계에서 겪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망자(亡者)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지면 그 망자(亡者)는 영원히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 존재한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것을 함께 공유하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증명되는 것이다. 만약 그 경험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면 그건 이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나’ 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온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어떤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고 그 결과 내 이야기의 일부분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故손정민씨의 부모님도 아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꼭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발생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표지 사진 출처 - 다음(DAUM) 영화 코코 소개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