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한 여행자 Jan 05. 2021

로드 킬(Road Kill)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죽음

얼마 전 강화도에 갔을 때 고양이가 로드 킬(road kill)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고양이는 차도를 뛰어서 건너고 있었고, 그 고양이를 향해 차량 한 대가 오고 있었다. 난 그 장면을 본 순간 그 고양이가 차에 치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고양이는 차바퀴에 치였고, 조금 발버둥을 치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또 얼마 전에는 성수대교에서 도산공원 쪽으로 넘어오는 왕복 8차선 정도 되는 도로 한 복판에서 고양이가 한 마리가 앞서 지나간 차에 치었는지 누운 채로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이지 마지막 힘을 다해 버둥거리는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얼마 동안 고통에 겨워 버둥거리는 고양이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무척 괴로웠다. 아마도 왕복 8차선의 도로 한복판이었다는 것을 핑계로 그 녀석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오는 괴로움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죽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로드 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명이 깃들어 있는 어떤 존재가 차에 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구원의 손길도 받지 못한 채  사체가 치워질 때까지 오고 가는 차바퀴에 짓이겨진다. 언젠가는 도로 가에 놓인 사체가 몇 달 동안 치워지지 않고 겨울 동안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내가 어떤 동물을 직접 친 적은 없다. 예전에 일본 홋카이도에 갔을 때 밤에 산길을 운전을 하던 중에 사슴이 튀어나왔고, 놀라서 운전대를 틀어서 다행히 부딪히지는 않은 경우는 한 번 있었다. 당시 옆자리에 타고 있던 친구는 이런 경우에 운전대를 틀게 되면 옆 차선에 차량이 있는 경우 사고가 날 위험이 있으니 동물과 부딪히더라도 운전대를 틀면 안 된다고 했고, 그 이후 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남은 길을 운전해서 오면서 혹여나 로드 킬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될지 엄청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고양이 천국이었던 2019년 2월에 간 그리스 히드라섬




지금은 사회적으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동물들을 보호하는 법률들도 제정되고 있지만 동물은 생명이 깃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민법상 물건(동산)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예전에 변호사 생활의 초창기 시절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의뢰받아 수행했던 소송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당시 ‘초롱이라는 이름의 유기묘를 동물보호단체에서 임시 보호하다가 어떤 사람에게 분양을 했다. 과정에서 분양받는 사람으로부터 일종의 준수사항에 대한 동의를 받았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주기적으로 분양받은 동물의 사진을 사이트에 올려서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일정기간 동안 사진이 올라오지 않을 경우 가택 방문을 하여 해당 동물이  있는지를 확인을 시켜줘야 하며, 만약 키우기가 어렵게  경우에는 반드시 동물보호단체에 돌려주어야 하고 임의로 3자에게 해당 동물을 넘기면  된다는 등의 내용으로 이에 동의를 해야 분양을 받을  있다.


한편, ‘초롱이’를 분양받은 사람은 원래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초롱이’와 합사 하는데 실패하였고(고양이는 원래 합사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초롱이’를 친구에게 넘겼다. 동물보호단체는 ‘초롱이’에 대한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자 분양받은 사람의 집에 방문을 했고, ‘초롱이’를 동의 없이 제3자에게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초롱이’를 넘겨받은 사람에게 연락을 하여 ‘초롱이’의 반환을 요청하였는데, 그 사람은 그 사이에 ‘초롱이’와 정이 들어 반환을 해줄 수 없다고 거부하였고, 이에 ‘동산 반환청구소송’이 제기되었다.


먼저 소송을 제기하려면 인지대를 납부해야 하고, 인지대는 소송 목적의 값, 일명 ‘소가’에 따라 산정이 되는데, 유기묘인 ‘초롱이’의 경우 가격을 알 수 없어 소가를 5만 원으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다. 생명이 깃든 생명체의 값이 5만 원이라는 사실도 웃기지만, 5만 원짜리 유기묘의 반환을 구하기 위해 그 동물단체에서는 변호사 선임료로 500만 원을 지불하였고, ‘초롱이’와 정이 들어 반환을 거부하는 상대방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하였다.


보기에는 간단한 소송 같지만 동산의 경우에는 선의취득이라는 것이 인정되는 관계로 만약 ‘초롱이’를 양도받은 상대방이 '초롱이'를 양도한 사람이 무권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고, 모르는데 과실이 없었다면 반환청구가 인용이 안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다행히 당시 재판을 맡은 재판장님께서 조정기일을 열고 사건 당사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우리 다 같이 초롱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사건을 해결해보자.”라고 하시면서 일단 현재 ‘초롱이’를 키우고 있는 상대방이 ‘초롱이’를 아끼고 잘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초롱이’를 동물보호단체를 돌려보낸다고 해도 더 좋은 주인을 만나기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일단 ‘초롱이’를 상대방에게 키우게 해 주고, 대신 상대방은 동물보호단체에서 요청한 준수사항에 동의하고 이를 어길 경우 ‘초롱이’를  반환하는 안을 제안하였고, 이에 모두 동의해서 사건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난 당시까지만 해도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 고양이 한 마리 가지고 왜 이리 법석을 떠는지 무척 의아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반려견을 키우게 되면서 왜 동물보호단체 사람들이 그렇게 동물 보호에 열심인지, ‘초롱이’와 정이 든 상대방이 변호사까지 선임해가면서 반환을 거부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반려견은 말만 하지 못할 뿐 가족이나 다름없다. 아마 누가 우리 에디를 뺏어가려고 한다면 나 역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막을 것이다.  


비록 법적으로는 물건(동산)인 ‘초롱이’를 생명체로 대해주고, 단순히 법리적인 판단이 아닌 ‘초롱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준 그 재판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생명이 깃든 동물들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기를 기도해본다.


그리스 히드라섬에서 친해져서 무릎까지 내주었던 고양이 녀석



     

작가의 이전글 변호사와 챔피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