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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Oct 03. 2020

변호사와 챔피언

말과 글로 의뢰인을 대신해서 싸우는 직업

2011년부터 작년까지 HBO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을 보다 보면 종종 '명예 결투'를 신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명예 결투'란 결투에 의한 재판(Trial by Combat)'이라고도 하는데 재판을 통해 불리한 판결을 선고받은 자가 결투를 신청해서 이길 경우 처벌을 면해주는 제도로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제도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명예 결투'에는 유죄 판결을 받은 자가 직접 결투에 나설 수도 있고 대신 싸워줄 자를 내세울 수도 있는데 그자를 챔피언(Champion)이라고 부른다. 한편 이렇게 자신 또는 자신이 내세운 챔피언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이길 경우 그자는 처벌을 면하게 되는데 이는 결투 결과를 신의 뜻이라고 보고 이를 따르는 것이다.


사진 출처 : HBO 왕좌의 게임 시즌4 화면 캡쳐




변호사 업무를 하다 보면 가끔 변호사가 명예 결투에서의 챔피언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형사재판을 하게 되면 변호인으로 선임된 변호사는 피고인을 대신해서 무죄를 다투게 된다. 칼 대신 말과 글을 통해 싸울 뿐 이겨야 하는 절박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내가 무죄판결을 받아내지 못하게 될 경우 피고인이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될 위기에 있을 경우에는 그 압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이 느끼는 불안함이 전이되어 늘 초초하고 불안하게 되기도 하고 판결 선고일이 다가오면 일주일 전 정도부터는 잠도 설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법원에서 발행하는 <사법연감>에 의하면 1심 형사공판 무죄율은 2016년 3.72%(243,781명 중 9,080명), 2017년 3.65%(244,489명 중 8,916명), 2018년 3.41%(220,123명 중 7,496명)이라는 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기는 매우 어렵다. 마치 '명예 결투'를 신청한 자나 그가 내세운 챔피언이 대결해야 하는 상대가 왕이 지정한 최고의 기사여서 이기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형사사건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대응해서 불기소 처분을 받는 것이 제일 현명한 방법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가까운 사람이 기소된 후에 형사재판을 진행해 달라고 부탁하면 직접 담당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무척 고민하게 된다. 가까운 사람의 사건을 진행하게 될 경우에는 일면식 없는 사람의 사건을 의뢰받아 진행할 때 보다 스트레스를 10배 정도는 더 받는 것 같다. 특히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에 그 사람은 물론 그 사람과 관련된 주변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받거나 관계가 망가질 것을 생각하면 수임료를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에 1년 가까이 진행해왔던 정말 친한 20년 지기 친구의 아버지 형사판결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처음 의뢰받았을 때는 무죄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양형기준상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큰 사건이어서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그 친구의 원망 어린 시선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드리겠다고 하면서 몇 번이나 거절했었는데, 결과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겠으니 맡아 달라고 거듭 부탁하셔서 진행한 사건이었는데 재판 진행 중에 여러 가지 유리한 변수들이 생겨 다행히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선고기일이 두 번이나 연기되면서 두 달이나 더 피를 말렸었는데, 무죄판결을 선고받는 순간에는 정말이지 지금껏 8년 넘게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진행한 사건들 중에서 제일 기뻤던 것 같다. 결과를 기다리면서는 심지어 내 인생에 남이 있는 운이 차감되어 내가 좀 더 불행해지더라도 무죄판결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간절하게 원하던 결과가 나와서 정말로 다행이다.

    

2019년 2월에 갔던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온 뒤에 나타났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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