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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Aug 10. 2022

자연재해 불감증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에 대한 단상

지난 8월 8일 단 하루 동안 쏟아진 폭우로 서울이 말 그대로 정말 쑥대 밭이 되었다. 190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라고 한다. 강남 도로 일대가 물에 잠기고 테헤란로에 사람들이 침수된 승용차를 버리고 간 모습은 정말 서울에 4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생소한 광경이었다.   


이번 일을 두고 천재(天災)다 인재(人災)다 말이 많지만 이런 재난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재난을 당해도 그냥 재수가 없었겠거니 생각하고 추후 비슷한 재난이 발생할 것에 대한 대비를 잘하지 않는 것은 정부나 개인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아마도 "이번에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당분간은 안 일어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다른 분야에 대한 인식은 세대가 지남에 따라 많이 개선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유독 이러한 자연재해에 대한 인식만큼은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군대를 막 전역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기 직전인 2011년 2월에 친한 후배와 호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시드니에서 3일 정도 있다가 케언즈(Cairns)로 이동을 했다. 첫 이틀 동안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레이트 배리어리프(Great Barrier Reef)에 가서 스쿠버 다이빙도 하고 털리강(Tully River)에 가서 5시간짜리 래프팅도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래프팅을 하면서 중간 지점에서 잠시 내려서 점심을 먹고 다시 래프팅을 한다).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다시 시드니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싸이클론(Cyclone)이 왔다. 풍속이 최대 시속 250km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야시(Yasi)라는 이름의 싸이클론이었는데, 당시 현지 뉴스에서는 2005년에 미국 남동부를 강타해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던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에 버금가는 호주 역사상 최강의 싸이클론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싸이클론으로 인해 시드니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은 당연히 취소가 되었고, 후배와 같이 싸이클론이 무사히 지나가기 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호주에서 재난을 겪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일단 재난 경고가 발령되면 호텔 체크 아웃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아무리 체크아웃을 해달라고 해도 해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강제 투숙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마도 체크아웃을 해주었다간 돌아다니다가 사고가 날 우려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회사는 물론 상점이나 음식점들도 모두 문을 닫는다. 싸이클론이 지나갈 때까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호텔 객실이 만실이 되어 투숙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호텔 로비에서 지냈다). 자연재해로 인해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정말 철저히 대비를 하는 느낌이었다.


나 역시 4인용 호텔 객실에서 후배와 영국인 그리고 콜롬비아인 이렇게 4명이서 뉴스를 보면서 싸이클론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미리 마트에서 장을 봐온 것으로 호텔 식당에서 요리도 만들어 먹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도 같이 하고 하면서 3일 동안 나름 즐겁게 지냈다. 그 당시에는 타지에서 재난을 당해 무서웠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특별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취소된 비행기표도 절반 이상 환불받고 무사히 시드니로 돌아갔다).


2011년 2월에 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싸이클론이 오기 전에 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렇게 외국에서 난생처음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든 생각이 우리나라와는 자연재해를 대하는 자세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 태풍이 왔다고 해서 학교를 쉬거나 회사를 가지 않았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모두들 비바람을 뚫고 등교를 하거나 회사에 출근한다(이를 풍자한 'K-직장인의 애환'이라는 짤도 있는 것 같다). 상점이나 음식점 등도 대부분 정상영업을 하고 재판도 그대로 진행된다. 심지어 2003년에 대한민국에 상륙해서 많은 피해를 주었던 역대급 태풍 매미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태풍 매미 때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교정에 걸려있던 현수막이 강풍을 못 이겨 풀려서 떨어져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던 배달원을 강타해서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것을 본 기억이다. 그 날씨에도 배달을 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태풍이 오거나 폭우가 쏟아질 때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번 폭우처럼 도로나 지하철이 침수가 될 수도 있고 강풍에 간판이나 물건이 날아와 부딪힐 수 있다. 누군들 비바람을 뚫고 돌아다니고 싶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사고 발생을 오로지 재수에 맡기면서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하던 일을 멈추면 안 된다는 사고가 아직까지는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생각해 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아이가 감기나 독감에 걸려도 학교에 보내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과 같이 이번 침수 사태를 계기로 자연재해에 대한 인식도 보다 개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표지 사진 출처 - NASA Worldview  - https://worldview.earthdata.nasa.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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