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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Dec 26. 2022

모든 것은 결국 용기의 문제

행운은 용기를 뒤따른다


대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학교 수업을 가는 길에 동대문운동장역(지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온 직후 갑자기 멀리서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어떤 여자분이 선로에 떨어져서 엎드린 채로 있었다(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으로 뛰어내린 것 같다).


너무 놀라서 보고만 있었는데 몇몇 남자분 들이 선로로 뛰어들어 멀리서 들어오고 있는 지하철이 멈추도록 두 팔을 휘저으면서 신호를 보냈고, 다행히 진입하던 지하철 운전기사가 제동거리 밖에서 상황을 확인하여 끔찍한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선로에 뛰어든 사람을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어서 놀라기도 했지만 당시 내가 제일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 찰나의 순간에 본인도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 최악의 경우 본인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한치의 망설임 없이 선로에 뛰어내려 구조활동을 할 수 있는지였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에게도 구조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누구도 비난을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선로로 뛰어든다.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영화 <가을의 전설(Legend Of The Fall)>을 보면 몬태나 주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삼 형제인 알프레드, 트리스탄 그리고 새뮤얼은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참전을 하려고 한다. 남북전쟁을 통해 전쟁 참혹함을 몸소 겪었던 아버지 러드로우 대령은 이를 말리지만 "독일의 침공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세계 역사의 전환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결국 참전을 하게 되고, 결국 막내아들 새뮤얼은 목숨을 잃게 된다.


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를 보면 세계 제2차 대전 중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게 되자 주인공인 데스몬드 T. 도스가 살고 있는 마을의 청년들은 군대에 지원을 한다. 도스는 제7안식교도로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해야 하지만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자원해서 입대하는 모습을 보고 본인도 입대를 결심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우들을 잃은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술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아버지는 도스에게 전쟁에 나가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말리지만, 도스는 "전쟁에 나가지 않으면 후회할에요."라고 하면서 총을 잡지 않는 의무병으로 지원을 하고, 그렇게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핵소 고지 전투에서 75명의 부상병을 구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굳이 다른 나라들의 전쟁에 목숨을 걸고 참전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강제로 징집이 된 것도 아닌데 굳이 자원해서 전쟁터에 나가야 할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마도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입대를 한 것은 어떤 거창한 신념 때문이었다기보다는 비겁한 사람, 즉 용기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늘을 걷는 남자(The Walk)>라는 영화가 있다. 거리에서 외줄 타기 공연을 하는 주인공인 필리페 페팃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지어진다는 소식을 두 개의 타워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이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임을 직감하고 이를 감행하는 과정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높이 412m의 건물 사이에서 외줄을 탄다는 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집념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목숨을 걸고 저렇게 무모하고 위험한 도전을 굳이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표지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The Walk, 2015)> 공식 홈페이지 영상/포토>




인류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간 용기 있는 사람들 덕에 인류의 거주지가 확장될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의 밥상에 올라 아무런 생각 없이 먹고 있는 음식들도 처음에는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먹어 봤기 때문에 우리가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굴을 처음으로 먹은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실 생각해 보면 자동차 운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하고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 삶에서 나에게 발생할 위험을 굳이 추가시키고 싶지 않다면 자동차를 운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딱히 불편하지도 않을뿐더러 일단 운전을 하게 되면 운전을 하지 않았으면 전혀 감수할 필요가 없는 교통사고를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이 매일의 내 삶에 추가된다. 더욱이 교통사고라는 것이 나만 운전을 잘한다고 해서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험 발생 가능성을 무릅쓰고 자동차 운전을 시작하고 몇 번의 아찔한 순간을 넘기게 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반경이 열리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에는 다소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성형수술을 하는 일, 이혼, 연애 예능 같은 방송에 출연하는 일, 유튜브를 하는 일 같은 것도 어쩌면 불만족스러운 현재의 상태를 타개하고 그게 무엇이 되었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지평을 열기 위한 용기 있는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선택을 한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라틴어 격언 중에  Animum fortuna sequitur(행운은 용기를 뒤따른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뤄 놓은 것을 보면서 그건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자신은 왜 그 사람들처럼 운이 없는 걸까라고 한탄하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 사람들에 비해 내가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왕좌의 게임>의 프리퀄작인 <하우스 오브 더 드래곤>을 보면 평화로운 시절에 왕위에 올랐던 비세리스 1세가 노년에 수관에게 "나는 훌륭한 왕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비세리스가 "크게 패망한 적은 없지만 전쟁에서 이긴 적도 없다."라고 하자 수관은 "관점에 따라서는 복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대답한다. 이에 비세리스가 "수백 년간 칭송할 업적을 세우지는 못했으니 노래로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라고 하자 수관은 "평온한 세월을 보냈다면 노래가 없은 들 대수겠습니까."라고 대답한다.


결국 인생의 끝자락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더 용감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닐까?


  


<표지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The Walk, 2015)> 공식 홈페이지 영상/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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