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하고 찬란해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절
어제까지만 해도 낮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는 푹푹 찌는 동남아 날씨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선선하다 못해 쌀쌀해졌다. 정말 올해 여름은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여름은 정말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고 하더라도 늘 여름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했었는데 올해는 8월부터는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양복은 사무실에 비치해 놓고 통풍 잘되는 면바지에 피케티를 입고 출퇴근을 했다. 올해가 앞으로 맞을 여름 중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들 하던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핸드폰으로 올해 여름에 찍은 사진들을 본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름에 찍은 사진들은 빛을 잔뜻 머금고 있어서 화사하고 찬란하다. 그 사진 어디에도 무더움, 축축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나이가 4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가끔 20대 시절의 내가 그리울 때가 있다. 특히 요즘 들어 Y2K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방송이나 SNS에서 그 시절 영상들이 많이 나와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20대 시절의 사진을 보면 정말 어리고 젊었다. 20대 시절까지 가지 않아도 2~3년 전에 찍은 사진만 봐도 참 젊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거울로 보는 내 얼굴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사진을 보면 세월의 흔적이 확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20대 시절은 젊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불안하고 힘든 시기였다. 20대 초반에는 근 10년 넘게 목표로 삼고 달려온 대학에 입학했다는 행복도 잠시뿐 이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살아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서 불안했고, 20대 중반부터는 합격할지 여부가 불확실한 사법시험 준비를 하면서 혹시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불안함을 늘 가슴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젊었다는 것 빼놓고는 이뤄놓은 것도 없고 가능성으로 포장한 불안함만 가득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20대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그런 불안함, 힘겨움, 치열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젊고 생기 있는 모습만 보인다. 마치 여름에 찍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
아마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옷깃으로 찬가운 바람이 스며들게 되면 올해 여름의 이렇게 무덥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어느새 모두 망각해 버리고 어서 빨리 다시 여름이 되기를 소망하게 될 것이다. 마치 20대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그때를 그리워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