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대신 채워지는 것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은 아이스크림일 것 같다.
지금도 나는 회사에서 아이스크림만 먹는다. 하루에 먹는 개수를 정해서 먹는다. 폭식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3개, 아침에는 두유 3개, 주말에는 오전 커피 또는 두유 3개.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에서 2+1 행사만 먹다 보니, 계산하기 편하게 3으로 맞추어지게 되었다.
나처럼 폭식하는 사람은, 폭식하지 않는 시간에는 내 몸에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한다.
폭식하지 않는 그 시간에는 정상인처럼 보이고 싶어 하거나,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저 내 몸을 챙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사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몸에 나는 너무나도 가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같아서?
직장인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점심을 같이 먹어본 적이 없다. 회식을 나가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갈까 하는 정도이다. 대신 좋아하는 친구들이나 지인을 만날 때는 꼭 늦은 점심이나 저녁에 만난다. 그 약속 시간은 나의 폭식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처음 폭식을 시작했을 때,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그때부터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었다.
씹기는 싫고, 고체는 더더욱 싫고, 그렇지만 액체 같은 형태의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그런 음식. 그때는 롯데리아 셰이크나, 맥도널드 맥플러리, 투게더 같은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2개, 많게는 5개도 더 먹었다. 매일매일 집 근처 마트에서 큰 투게더, 쿠앤크 같은 아이스크림을 사가니깐 계산원이 나에게 '그렇게 먹고도 살이 안 찌시네요?'라고 하는 말에 솔직히 '다행이다'라는 안도를 느꼈던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뚱뚱한 것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그대로 '조금은 말라 보인다는 것'이겠지? 나는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나도 평범한 갓 스무 살 대학생일처럼 보이는 것이겠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내가 폭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 지금의 나를 만든 그 사람. 그 모든 것을 이제는 이곳에 다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 당신만은 절대 몰랐으면 좋겠다.
그럼 또다시 당신은 나를 죄책감에 가득 찬 사람으로 만들 테닌 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