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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엘라 Jun 20. 2017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하다

어린 시절을 지방 소도시의 면 단위 동네에서 보냈다. 동네를 거닐며 마주치는 어른들께 인사를 하며 "어~ ㅇㅇ네 큰 손녀구나"하고 대답을 들을 만큼 시골이었다. 초등학교 한 학년엔 두 학급이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 중학교 입학 즈음 엄마 아빠는 도에서 제일 큰 시로 이사를 결정하셨다.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그다음 해였다.  아파트 베란다를 내다보면 신축 월드컵 경기장이 우리 집 마당처럼 보이는 광경에 참 신이 났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한 학년에 12 학급이 있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학교가 정신 없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시 생활이 즐거웠다. 하지만 진짜 대도시에, 대학교 입학과 함께 상경하였다.


2009년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conch97/60088591366)

전주시는 전라북도에서 최대 도시이지만 지하철이 없다. 타본 적이 없는 지하철이 10개의 노선도 더 있는 서울에 오니 지하철 노선도처럼 정신없고 복잡한 생활이었다. 수많은 한 없이 바삐 걷는 사람들로 가득찬,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서울의 활기참이 당시의 나는 좋았다. 지하철 환승을 3호선에서 3호선으로 하던 어설픈 새내기는 꽤 빨리 적응을 해 그 복잡하고 복작대는 도시가 익숙해졌다. 서울이 내 집처럼 익숙해질 무렵, 졸업을 전 후로 캐나다 토론토에 우연히 가게 되고, 석사 2년+근무 2년 그렇게 4년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캐나다 토론토 지하철 노선도 (이미지 출처:http://i.imgur.com/UEtze3W.jpg)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에 비하면 단출한 토론토의 지하철 노선도 마냥 내 생활도 서울보다는 조금 단조롭고 한적해졌다. 광활한 땅과 낮은 인구밀도 덕에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돌았지만, 세계 어떤 곳이든 대도시의 특징은 똑같다; 모든 것들이 빠르게 바삐 움직이고 거대한 빌딩 숲 속에서 각박한 혹은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공통점. 아무튼 그렇게 나는, 성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다. 시골에서 도시로 더 큰 대도시로, 또 그곳에서 비행기 13시간을 타고 가야 하는 캐나다의 최대 도시로.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 도시에서 또 해외에서 홀로 생활을 한 지가 벌써 십 년의 세월이다.


정신없이 지나간 도시 탐험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조그마한 마을에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 작년 여름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하셨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지방의 소도시에 땅을 사고, 집을 지으셨다. 주중엔 서울에서 지내지만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려 매주 금요일, 주말마다 2시간 반의 고속버스에 오른다.

우리집, 2017

엄마 아빠는 상가도 높은 건물도 없는 주로 노년층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마을에 100평 땅을 사셨다. 그리고 나와 남동생이 출가한 이유로 청소하기 쉽고 두 분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아담한 집을 지으셨다. 살면서 처음 갖는 우리 가족의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이다. 이 곳에서 매 주말을 보내며 느낀 점을 기술해 보겠다.


1.  집에서 할 일이 많다.

아빠는 원래부터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런 부지런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다. 전원주택에 살면 할 일이 많다. 작게는 음식물 쓰레기나 분리수거부터 시설적으로 잘 마련된 아파트보다 고민해야 하고 번거롭다. 집 내외부의 직접 관리와 함께 유지 보수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눈이 오면 마당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하고, 날이 좋으면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뽑아야 한다. 예초도 해야 하고 마당의 나무와 꽃들에 물도 주어야 한다.


2. 아무래도 자연과 가깝다.

뒤뜰에 자그마한 텃밭이 있는데 별 것이 다 있다. 상추, 케일, 깻잎, 고추, 파, 양파부터 방울토마토, 딸기, 블루베리까지 거의 뭐 없는 게 없는 수준이다. 그래도 어떻게 생겨 땅으로부터 나에게 오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눈으로 코로 알게 되니 참 신기하다. 동시에 여태 이런 것도 몰랐다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는 창이 많은데, 누워서 하늘이 보이고 해 넘어가는 순간 아름다운 석양도 볼 수 있다. 티브이나 스마트폰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않을 테지만 그래도 아파트에 살 때보다는 더 많이 자연스레 해를 달을 별을 보게 된다. 또 집이 목조주택이다 보니 집안 곳곳에 나무의 흔적이 있다. 밖을 보면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의 녹색이 주중 동안 피로했던 눈을 치유해주는 듯하다.

뒷뜰에 작은 텃밭
2층에서 1층


3. 집이 조용하다.

아파트에 있으면 알게 모르게 생활 소음에 노출된다. 윗집 아이 뛰는 소리, 바깥에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차의 경적 소리, 철없는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시시비비를 가르는 소리 등. 주택에 사니 티브이를 틀지 않는 이상 고요하다. 주택 사이의 공간들도 널찍하니 옆집이나 앞집이 무얼 하고 무슨 소리를 내는지 차단된다. 고로 우리 집 소음이나 냄새도 다른 집으로 갈 영향이 적다는 생각에 자유롭다. 나만 조용히 하면 집에 있는 동안 고요하다. 골똘히 생각할 기회도 많아지는 것 같다.


4. 다시 인사를 한다.

동네에서 누군가를 마주치고 인사를 하는 것을 도시에 살면서는 별로 한 적이 없다. 귀촌을 하여 다시 주택가들이 모인 작은 동네에 오니 강아지를 데리고 산보를 나가면 마주치는 분들이 강아지가 귀엽고 순하다며 칭찬해 주신다. 그럴 때 자연스레 오고 가는 대화와 함께 이웃을 알아가고 그렇게 인사를 하고 지낸다.


5. 천천히 걷는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바쁘게 걸으면 나도 모르게 같이 바쁘게 걷게 되기 마련이다. 반면 이 동네에서는 나가면 조용하고 대체로 사람이 없어서 혹은 주로 농사를 지으시는 어르신들 뿐이라, 남의 속도 의식하지 않고 천천히 걷게 된다. 천천히 걸으면서 나무 냄새도 맡고 바람 소리도 듣고 강아지한테 말도 걷고 혼잣말도 해본다.


6. 계절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집 나무에서 꽃봉오리가 생기가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잎새가 자라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잎이 떨어지고 눈이 쌓이는 날도 올 테지. 마당에 푸르렀던 잔디도 색을 잃고 푸석해지겠지. 물론 아파트 살아도 나무고 잔디고 다 보이지만, 참 웃긴 것이 우리 집 나무 우리 집 잔디라서 더 눈에 많이 들어오는 듯하다.  

막 심은 잔디 무성하게 자라기 전
매일 달라지는 공사중인 앞 집
계절의 변화, 꽃 피는 봄

7. 가족들 간 보내는 양질의 시간이 많아졌다.

주로 가족끼리의 시간은 외식이나 동네 호프집에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젠 집에 모여 앉아 큰 소리로 음악을 틀기도 하고, 마당에서 그네를 타기도 하고, 같이 노동을 하기도 하고,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외식보다는 집에서 바비큐를 하고 무언가 만들어 먹는 횟수가 늘어난 것 같다. 집으로 손님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마당에서 골프, 배드민턴, 탁구를 즐긴다. 주변에 타인들이 없이 오롯이 가족끼리 밤바람 맞으며 별 보면서 보내는 시간이라 그런지 대화의 퀄리티 또한 높아졌다. 감성적인 환경이 속에 있는 마음과 생각을 꺼내는 데 있는 장벽을 허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테라스에서 가지는 스낵타임
마당에 놓은 꽃들
외할머니와 탁구대, 강아지



홀로 큰 세상으로 나아갔던 나에게,

자꾸 나아가느라 지치고 힘들었을 나에게,

작은 동네에 아담한 우리 집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해 전혀 모르던 더 큰 세상을 내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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