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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Aug 12. 2018

#44.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엄마를 이제 그만 길들여다오

한 달도 되지 못해 새로 사준 핸드폰의 액정을 또(그렇다! 한 번이 아니다) 깨 먹었다. 쌍둥이 두 아들이 똑같이 삼성 갤럭시 엣지를 사고 나서 깨뜨린 폰이 벌써 몇 개인지. 커버가 있어도 떨어지면 화면의 액정이 잘 나가는 품종이기도 하지만, 이 두 녀석들은 폰의 겉멋에 집착해 남편과 나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겁도 없이 커버를 사지 않았다. 지들의 손바닥에 무슨 접착제라도 붙어있는 줄 알았나? 그렇게 다니더니만 핸드폰이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수난을 당하더니 깨뜨리기를 수차례. 이번 여름 방학에 와서 구입해 준 새 폰도 마찬가지. 이번에 웬일로 재빨리 커버를 아마존에서 구입하길래 이제 정신을 차린 줄 알았는데, 구입한 커버라는 게 멋만 잔뜩 부렸지 전혀 보호되지 않는 것을 골랐다. 모서리 한 귀퉁이가 깨져 화면에 불만 들어올 뿐 버튼을 눌러도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아들은 폰이 망가진 것을 전에 없이 “공손하게” 남편에게 알려왔다. 물론 새 폰을 사달라 할 염치는 없었는지 폰의 상태를 알리는 통보가 전부였다. 사달라고 떼를 썼어도 또 사 줄 마음은 (아니 여력이) 없다. 아들에게 내 오래된 폰을 대신 쓰라고 통보를 했다. 족히 4-5년은 쓴 폰이니 디자인에서부터 사이즈며 화면의 선명도에 이르기까지 속도는 또 얼마나 느린지 엣지를 쓰던 아들에게 이 폰을 쓰라는 건 극형에 처한 것과 흡사했을 것이다. 


걸어갈 때도 폰을 들고 다니고, 밥을 먹을 때도 폰과 이어폰으로 무장하고 밥을 먹던 녀석이 폰이 없는 생활을 며칠째 이어가고 있다. 워낙 액정이 깨져버려서 데이터를 하나도 복구하지 못하는 점도 있었겠지만, 구닥다리 폰을 쓸 마음이 영 생기지 않았을 게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게 애지 중지하며 폰과 밀착된 생활을 하던 아이가 폰에 전화가 울려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을뿐더러 녀석의 폰은 아예 녀석의 방을 빠져나와 떡 하니 부엌 식탁에 어제 그제 내내 그대로 그 자리에 주인 없는 폰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루 이틀 가만히 보고 있자니 기가 찼다. 이건 분명 녀석의 말 없는 농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들을 불러 세우고 나는 협박을 했다. 폰 안 쓸 거면 전화를 끊겠다고. 사실 화가 난 건, 아들이 구닥다리 폰에 부리는 소심한 농성도 아니었고, 폰을 수차례 깨 먹은 아들의 부주의함도 아니고, 내 말대로 튼튼한 커버를 구입하지 않은 아들의 고집도 아니었다. 


나를 진정 화나게 했던 건, 아들이 자기 일에 보이는 무관심한 태도였다. 아무리 폰이 구닥다리라 해도, 액정이 깨져 데이터를 쉽게 옮기지 못한다 해도, 어떻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폰을 내팽개치고 아무렇지도 않을까 하는 그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던 거다. 폰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고칠 마음도 들지 않았던 건지, 데이터를 옮기는 그 자체가 어렵고 수고스러운 일이니까 하지 않고 있었던 건지. 후자일까 봐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매사에 아들이 그런 식으로 인생의 문제들을 대하는 게 아닐까 바로 그 점이 걱정스러웠다. 대화로 풀어보려니, 이상하게 꼬여서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논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경향도 있고, 워낙 아들과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가 아닌지라 우리의 대화는 늘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떠밀려 가고 말았다. 그 이후로 폰은 그렇게 아들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이후 탁자에서 아들 폰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아들이 폰에 있는 데이터를 복구하고 있는지도 이미 복구했는지도 아니면 포기하고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러면서도 못 미덥고 불안하며 아들이 실망스럽다. 아들에 대한 이런 불안감은 언제까지 나를 쫓아다닐까 싶다. 아들이 든든해지는 때는 언제쯤 돼야 오는 걸까? 오기나 하는 걸까? 아들이 하는 일은 왜 그렇게 못 미덥고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부족하고 기대에 못 미치게 일 처리를 한다. 어떤 일이든 수행 능력이 지극히 뒤떨어진다. 딸이 아니고 아들이라서 그런가? 화성에서 온 남자라서? 남편을 보면 화성 남자만의 탓은 아닐 것 같은데, 성인이 되면 괜찮아지는 걸까? 엄마에게 아들이 언제쯤 되어야 든든한 아들로, 기대볼 만한 아들로, 심지어 의지할 만한 존재로 성장하게 되는 건지, 나는 이 순간 정말 궁금하다. 대학생이 됐고, 지난 일 년간 집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왔으니 많이 성숙해지지 않았나 했는데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저 내 눈에 안 띄었을 뿐이었음을 허탈하게 깨닫는다. 


어제는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탁자에 앉은 아들의 손이 텅 빈 것을 발견했다. 귀도 이어폰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식사하러 나가도 우리의 얼굴보단 폰 화면을 더 쳐다보던 아들인데, 빈손과 뚫린 귀로 레스토랑 탁자에 끌려 나와 불편하게 앉아 있는 거다. 오죽 폰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제 단짝인 폰을 데리고 외출하지 않았을까 싶어 딱한 생각도 들었다. 더 딱했던 건, 폰이 없으니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개 숙여 탁자만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워낙 우리와 눈을 마주쳐 가며 식탁에서의 대화를 나누는 아이가 아니기도 하고, 쌍둥이 형제가 없어 혼자서 오랜만에 우리를 독대하려니 힘든 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폰이 없으니 아이가 주리를 틀며 식사 시간을 버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차라리 아들에게 새 폰을 안겨줘서 아들의 괴로운 모습을 보지 않는 게 낫겠다는 엉터리 부모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누구는 이런 나를 보며 식탁에서 폰을 허락하며 자식 교육을 잘못한 나를 비난할지 모르겠다.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수밖에. 


나도 아들 교육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뭐가 부족했던지 나는 아이를 잘 잡지 못했다. 안다. 다 안다. 교육에 있어 일관성을 지켜야 하며, 내가 귀찮다는 이유로 아이의 훈육을 위해 끝까지 참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했다는 것 안다. 더 독해야 했고, 아들을 바로잡기 위해 내가 아들보다 더 노력했어야 했음도 안다. 부족했다. 나 자신에게였다면 더 철저했을 수 있었을까? 아들에게는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이 요구되었다. 한마디로 길들이기에 실패한 거다. 남들이 말하듯 어렸을 때 아들의 기를 잡아야 했는데 그렇게 모질게 못 했다. 아들들은 내게 평범 이상의 모진 엄마가 필요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모짐은 한계가 있었다. 아들이 나보다 훨씬 강적이었으니까. 이 대목에서 내가 무른 엄마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절대 그렇게 만만한 엄마는 아니다. 예전엔 더더욱 아니었다. 변호하자면, 우리 아들들이 평범 이상의 모진 아들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굉장히 파워풀한 아이들. 자아가 강한 아들. 어려서 일찌감치 눈치를 채긴 했지만, 아들은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엄마 앞에서 절대 굴복하는 여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으니까. 맞을지언정 절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아이. 손바닥을 자신 있게 내밀며 때리려면 때려라 그래도 나는 전혀 끄떡하지 않을 거야 하는 고집으로 눈을 꽉 감아버리던 아이. 그 아이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차라리 엄마 잘못했어요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으면, 아니 최소한 살살 때려주세요 하며 아니 움찔대기라도 했다면, 나는 지금 전혀 다른 아이의 전혀 다른 엄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의 길들이기에 성공했다고 그래서 다른 부모를 왜 그렇게 못 했냐고 비웃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아들에게 자유롭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들아, 나를 놔 주렴. 이제 그만 나를 길들여도 괜찮아. 엄마는 이미 네게 충분히 길이 들었단다. 너를 더 이상 혼낼 기운도 기력도 바람도 없단다. 나도 이만 자유로워지고 싶어. 아들이라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엄마는 이쯤에서 그만 접고 싶단다. 기꺼이. 네가 내게 당당히 손바닥을 내밀었듯이 나도 네게 이제 너를 향한 내 손을 그만 거두고 싶어. 내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는 나보다 훨씬 크고 파워풀한 아들. 너희들만의 리그로 가 보렴. 엄마는 네게 너무 작은 그릇이었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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